“골절됐어요. 한 달 동안은 깁스를 해야겠습니다.” 컴퓨터 화면에 띄운 엑스레이 사진엔 왼쪽 엄지발가락 앞쪽의 뼈가 자로 잰 듯 금이 가 있었다. 계단을 헛디뎌 넘어졌는데 발가락이 골절됐다. 깁스란 보통 격하게 운동하다 다치거나 교통사고로 어딘가 부러졌을 때 하는 게 아닌가! 믿고 싶지 않았다. 정형외과 의사는 뒤이어 “그래도 이쪽은 뼈가 잘 붙는 곳이에요. 통깁스하거나 목발 짚을 정도는 아니고 반깁스를 하면 될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큰 위로는 안 됐다.

발가락 골절 이후 반깁스를 한 모습 / 유선희 기자
간단하게 진료를 받은 뒤 절차가 착착 진행됐다. 석고 안에 발을 넣어 굳히고는, 파랑과 진분홍의 현란한 색깔 반깁스가 씌워졌다. 발보다 두 배는 큰 데다가 석고 무게까지 더해져 어정쩡한 걸음걸이가 됐다. 퉁퉁 부은 발가락이 아파서인지 무거운 반깁스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너무 답답하면 반깁스를 잠시 벗고 있어도 되는데, 웬만하면 계속 착용하세요. 많이 움직이지 마시고요.” 물리치료사가 말했다. 이렇게 한 달이라니….
울적한 마음을 안고 물리치료를 받은 후 집까지 돌아오는데 흘금거리는 주변 시선이 느껴졌다. 반깁스(아마 색상이 더 큰 문제였을 거다!)를 한 불편한 걸음걸이 때문이었다. 횡단보도를 지나면서, 버스에 오르고 내리면서 이전에는 몰랐거나 쉽게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걸음걸이를 재촉하지 않으면 신호등은 금세 빨간불로 바뀌었다. 신호등은 횡단보도 길이와 보행시간에 맞춰 바뀌도록 설계했다는데 정말 맞는가 하는 슬픈 의구심마저 들었다. 하루는 아슬아슬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다 옆을 봤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도 힘주어 걷고 있었다. 반깁스 탓에 마지막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다보니 마주친 얼굴이었다. 아마 그분에겐 언젠가부터 일상이었으리라.
교통약자에 관심이 많아 대학교 때 저상버스 도입현황을 조사한 일이 있다. 기자가 된 이후에도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에 대한 사연을 기사로 쓴 일이 있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다. 반깁스하고 계단을 올라야 하는 일반버스를 탔다. ‘저상버스가 전면 도입된 건 아니었지…’ 그제야 보였다. 다치기 전에도 일반버스를 탔을 텐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어 무심하게 지나쳤다. “출퇴근 시간에 저상버스를 타는 건 사실 상상하기 어렵죠. 저희가 피해를 주는 것처럼 느껴져요.” 취재했던 한 장애인의 이야기가 스쳐갔다. ‘교통약자’가 된 나 역시 병원을 오갈 때 출퇴근 시간에 버스 타는 일은 피했다.
깜빡이는 녹색 신호등에 미처 건너지 못하고,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는 일도 많았다. 조금만 뛰면 됐는데 빨리 걷지 못하니 번번이 ‘다음’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조급한 마음이 물리적 한계 때문에 저절로 가라앉혀지는 기분이었다.
또렷하게 간 금이 잘 붙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한 달이 지난 뒤 찍은 엑스레이 사진은 깨끗했다.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준 것이다. 별다른 치료도 없었다. 반깁스 상태로 한 달 동안 재택근무 신세를 졌을 뿐이었다. 다치고서야 보이는 것들이 그제야 위로가 됐다.
<유선희 정책사회부 기자 y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