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품으로 전락한 불멸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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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불멸의 삶을 가정한 대부분의 작품이 말하는 것은 결국 필멸하는 인간에 대한 제고다. 그래서 불로불사의 존재가 오히려 인간이 되길 바라기도 하며, 그 영원한 삶 역시 대개는 영원한 고통과 고독으로 점철됐거나 아예 무미·무취한 것으로 묘사되기 일쑤다. 애초에 불사의 존재란 인간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조망하게 하는 효과적인 장치인 셈이다. 물론 처음엔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생물이라면 죽음은 누구든 두려워하는 것인데다 영원불멸에 대한 동경은 인류의 보편적인 욕망이기도 하니 말이다.

에드워드 애슈턴의 <미키7>. 황금가지

에드워드 애슈턴의 <미키7>. 황금가지

SF소설 <미키7>이 상정한 불멸의 존재는 그래서 더 독특한 느낌으로 읽힌다. 인체를 복제하고 기억마저 그대로 이식해 만든 인간이라고 하니 곧 죽음을 초월한 선망의 대상으로 여겨질 법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죽어도 죽어도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복제인간 ‘익스펜더블’은 소모품이란 뜻 그대로 늘 죽음에 앞장서야 하는 가장 보잘것없는 최하위 노동자에 불과하다.

<미키7>은 ‘죽음을 전제한 불멸’이란 역설을 중심에 둔 채 그간 불사의 판타지를 전복한다. 더불어 끊임없이 우주를 정복해나가는 인류의 이기를 풍자한다.

익스펜더블은 동량의 단백질만 있으면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기 때문에 늘 가장 위험한 일에 동원된다. 익스펜더블로서 얼음 행성 니플하임을 개척하는 데 투입된 주인공 미키 반스는 신약 임상실험에 참여하고, 일촉즉발의 순간 원자로에 들어가 피폭된다. 그렇게 사망한 횟수만 벌써 여섯 번. 그래서 현재는 일곱 번째 미키인 ‘미키7’이다. 작품 시작부터 그는 실수로 얼음 구덩이에 떨어져 부상을 입고 고립된다. 그럼에도 동료들, 그것도 미키의 절친이라는 이마저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하기보다는 기지에서 되살리는 편이 훨씬 간편하다며 그를 내버려둔다. 그러다 미키는 행성의 토착 생명체인 크리퍼와 맞닥뜨린다. 이상하게도 적대는커녕 오히려 안전한 곳까지 안내한 덕에 그는 무사히 생환한다. 문제는 그사이 이미 ‘미키8’이 만들어졌다는 것. 이 사실이 알려지면 깐깐한 사령관은 하나 이상 반드시 제거할 게 뻔하다. 살아남으려면 비밀을 숨기고 공존하는 수밖에 없다.

얼핏 심각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톤은 시종 유쾌하다. 2명의 미키가 공생하기 위해 칼로리에 맞춰 배급되는 음식을 나눠먹지만 이마저도 벌점이 추가되면서 점점 줄어들기만 한다. 매일 온갖 임무를 수행하는 와중에도 어쩐지 미키8은 방금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매번 게으름을 부린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테세우스의 배’의 역설, 즉 배의 모든 부분이 교체됐더라도 여전히 그 배일까 하는 고민을 온갖 돌발 상황 속에 녹인다. 미키에게 죽음은 늘 기억을 업로드한 다음 찾아오는 탓에 새로이 갱신된 육체에 죽음의 기억만큼은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에 익숙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늘 모두를 위해 희생하면서도 인간으로조차 취급받지 못하는 미키에게 있어 생존과 실존은 하나인 듯 별개로 보인다. 무한한 소모품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초라한 현실이 결국 또렷한 기시감을 자아낸다.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을 냉소와 우화로 빚어낸 이 작품은 봉준호 감독이 차기작으로 낙점해 얼마 전 크랭크인했다. 그간 계급주의나 계층 간 불평등을 여러 번 힘줘 이야기했던 만큼 우주 시대의 여러 볼거리에 더해 부조리한 진실과 쓴웃음이 마구 뒤섞인 영화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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