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과 미스터리 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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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살인

청춘 미스터리라고 하면 보통은 살인사건과는 무관한, 상대적으로 안온한 미스터리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중고등학생 주인공을 내세워 학교를 배경 삼아 펼치는 미스터리라면 결국 ‘청춘’에 방점을 찍어야 고유의 매력을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나 학생이라고 해서 살인과 무관하리란 법은 없다. 다만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순간 학교와 친구라는 작고도 깊은 세계를 파헤치는 청춘 미스터리의 색채는 그만큼 옅어질 게 뻔하다.

아오사키 유고의 <도서관의 살인> / 한스미디어

아오사키 유고의 <도서관의 살인> / 한스미디어

그런 면에서 아오사키 유고의 일명 ‘관 시리즈’는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여겨질 만하다. ‘관 시리즈’라고 하면 대개는 괴상한 건축물을 무대 이상의 주역으로 삼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아오사키 유고가 선택한 관은 차례로 체육관, 수족관, 도서관이다. 명백히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제목을 사용해놓고는 일상에 밀착한 공간과 학원물 배경을 본격 미스터리의 뼈대와 그대로 접목했다. 시종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살인사건의 해답에 접근해가는 고등학생 탐정의 사건 일지에는 이렇듯 온갖 상충하는 요소들이 한데 뒤섞여 익숙한 듯 낯선 재미를 준다.

<도서관의 살인>은 천재 고교생 우라조메 덴마를 앞세운 세 번째 작품이다. 제목처럼 구립 가제가오카 도서관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피살자는 도서관 단골 방문객으로, 그가 폐관 후 한밤중에 어떻게 도서관에 무단출입해 누구에게 살해당했는지가 수사의 키포인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피살자는 죽기 전 묘한 암호를 남겼다. 바닥에 자신의 피로 ‘く(쿠)’자를 썼으며, 옆에 놓인 책 표지의 한 캐릭터에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이른바 ‘다잉 메시지’다. 물론 정말로 피살자가 남긴 메시지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다잉 메시지는 굉장히 낡은 기법 중 하나로 최근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사망자가 죽기 직전 사력을 다해 남긴 메시지라기엔 너무 함축적인데다 애초에 창작자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자유자재로 주무를 수 있는 작위적인 작법에 불과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반가움도 잠시, 경찰의 조력자로 수사에 참여한 우라조메는 이를 처음부터 완전히 부정한다. 굳이 작품에 다잉 메시지를 동원해놓고는 오히려 추리에는 혼란만 가중시키니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우라조메는 그보다는 상황 증거나 각 인물 간 관계와 동선에서 해답을 찾는다. 깜짝 놀랄 만한 통찰력과 추리로 형사들을 압도하며 진실을 내다보는 과정은 영락없는 고전적인 명탐정의 모습 그대로다.

그와 동시에 마치 살인 따위 먼발치에서나 바라보라는 듯 내내 유쾌한 기운을 북돋기 일쑤다. 형사 여러명이 백방으로 뛰어 알아낸 결과를 앉아서 간파한 우라조메의 장황한 설명에 몇몇 경찰은 매번 자격지심으로 속을 끓인다. 게다가 우라조메는 애니메이션과 라이트노벨에 빠진 일명 ‘오타쿠 탐정’으로 평소에도 서브컬처의 여러 배경 지식을 섞어가며 이야기한다. 이 외에도 서로 묘하게 어긋나면서도 대화를 이어가는 만담 같은 장면이나, 연심의 향방을 알고픈 청춘들의 수줍은 호기심과 시험 기간의 여러 해프닝 또한 곳곳에서 작은 재미를 더한다. 살인자의 음험한 동기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애하지 않는 면 또한 작품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한다. ‘청춘’과 ‘미스터리’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는 이 균형감이야말로 이 작품의 특별한 인장이라 할 만하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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