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용수 스님 “행복을 찾지 말고, 행복으로 존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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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티베트 불교 전파하는 용수 스님

티베트 불교를 한국에 전파하는 용수 스님(57)과의 인터뷰는 지난 7월 15일 인천 강화도 연등국제선원에서 3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그는 이곳에서 그를 따르는 회원들과 함께 ‘마음을 고요히 하기’ 여름 집중 명상을 인도하고 있었다. 5박6일간 이어지는 수련이다. 참여한 회원들은 이곳 선원의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정갈하고 담백한 식사, 명상의 고요함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거동은 진중하지만 웃음 또한 잃지 않았다. 좌선과 기도, 그리고 휴식과 산책, 요가와 만트라 명상을 반복했다. 이어 스님의 법문과 회원의 토론이 이어지는 코스다.

용수 스님은 티베트 불교의 가장 중요한 특질은 ‘보리심’에 있다고 설명했다. / 주미영 작가

용수 스님은 티베트 불교의 가장 중요한 특질은 ‘보리심’에 있다고 설명했다. / 주미영 작가

티베트 불교의 위대한 스승 초청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 부탄, 북인도, 네팔, 몽골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 지금은 전 세계인이 감화하는 불교 신앙으로 자리매김했다. 10여년 전부터 티베트 불교가 한국에 고요하게 확산한 데는 용수 스님의 역할이 컸다. 그는 2010년 <티베트의 즐거운 지혜>의 저자인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와 그의 형 둡왕 촉니 린포체를 초청했다.

티베트 불교의 위대한 스승이면서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종사르 키엔체 린포체가 용수 스님의 초대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큰 화제가 됐다. 그밖에도 티베트의 위대한 스승들이 용수 스님이 이끄는 세첸코리아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용수 스님의 은사 뻬마 왕겔 린포체가 이끄는 ‘닝마파’는 티베트 불교 4대 종파 중 하나로 ‘세첸’은 ‘닝마파’의 중심적인 법맥을 계승하는 분파다. 스승은 세첸코리아에 다섯가지 지침을 내렸다. 세계평화 기여, 티베트 불교와 문화의 올바른 소개, 청소년 평화 교육, 가난한 이웃돕기, 환경보존 노력이 그것이다.

2012년에는 티베트 세첸사원의 주지 랍잠 린포체와 프랑스 과학자 출신 티베트 승려 마티유 리카르 스님을 초청했다. 마티유 리카르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승려와 철학자>의 저자이자 사진작가다. 미국 위스콘신대 뇌과학 연구팀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선정된 불교인이기도 하다.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됐을 때 열렬한 독자가 많이 나왔다. 이 책을 무려 12번씩이나 읽고, “나에겐 성경과도 같은 책”이라며, “읽고 또 읽어도 새로움이 묻어난다”고 고백했던 독자도 있다. 책에서 마티유 리카르는 이렇게 썼다.

“정신적 가치가 더 이상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기를 멈출 때, 물질적 진보는 보람 없는 삶을 감추는 일종의 포장이 된다.”

용수 스님이 명상 회원을 향해, 그의 유튜브 채널을 보는 시청자에게 반복해 전하는 법문의 본질도 마티유 리카르의 그런 진단과 맥을 같이한다. 실상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진보’의 대비는 진부한 주제다. 그러나 그 주제가 진부하면 할수록 그 문제의식의 절실함은 더 깊어지고 있다. 물질 속에서 압살당하는 가엾은 정신과 영혼을 우리가 매일 목도하기 때문이다.

7월 25일 경기도 양주시 소재 회암사지에서 세첸코리아 회원들이 용수 스님과 함께 ‘맨발 걷기’ 명상 수련에 나섰다. / 주미영 작가

7월 25일 경기도 양주시 소재 회암사지에서 세첸코리아 회원들이 용수 스님과 함께 ‘맨발 걷기’ 명상 수련에 나섰다. / 주미영 작가

용수 스님의 탁월한 점은 물질과 정신의 대립을 ‘인간의 행복’과 ‘내면의 고통’이란 관점에서 실천적으로 극복하려는 인식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그 인식은 촌철살인의 기지를 보여주면서도 매우 쉬운 언어로 이뤄졌다는 점 또한 매력이다. 그렇다. 그의 법문은 짧아서 매혹적이고, 아름다워서 힘이 있다. 강요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풀어놓지도 않는 경계에 그의 인식은 걸쳐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티베트 불교의 역사와 전통, 가르침의 본질과 그 현대적 전개를 소상하게 설명했다. 책 한권에도 다 담기 어려운 광대한 언설이다. 스님의 말을 요약하자면 티베트 불교의 특질은 ‘보리심’에 있다. 일체중생을 자신의 아이들처럼 귀하게 여기며, 그들을 한명도 빠짐없이 고통에서 구제하려는 대비심(大悲心)이다. 보리심이야말로 “대승불교의 입문인 동시에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용수 스님은 가족과 함께 미국 유타주로 이민, 유타주립대를 다녔다. 2001년 유타를 방문한 달라이 라마의 법문을 듣고 티베트 불교에 매료됐다. 2003년 네팔에서 닝마파의 법맥을 계승한 뻬마 왕겔 린포체의 제자로 정식 티베트 승려가 됐다. 뻬마 왕겔 린포체가 운영하는 프랑스의 티베트 불교 사원에서 4년 동안 무문관(無門關) 명상 수행을 한 뒤 2007년 10월 한국에 왔다.

4년간 사원의 울타리 안을 벗어날 수 없는 무문관 수련은 혹독했다. 각자의 방에서 하루 9시간의 금강승(밀교) 수행에 정진했고, 아침저녁으로 1시간씩 법당에 모여 기도했다. 식사와 약간의 산책이 유일한 휴식이었다. 용수 스님은 비자 연장을 위해 1년에 한 번씩 미국으로 돌아가는 달콤한 휴가를 겨우 받을 수 있었다. 용수 스님은 이 무문관 수행을 통해 근본 불교부터 시작해 대승불교, 금강승 불교, 마지막으로 족첸(참선)을 수행했다. 보리심의 진실한 경지를 얻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에게 보리심은 무엇이며, 어떻게 획득하는가를 물었다.

“우리에겐 흔히 이기심 또는 흔히 ‘에고(ego)’라고 하는 아집이 있다. 이 ‘아집’을 어루만지는 단련이 보리심 수행이다. 보리심 수행자들은 항상 아집을 알아차리고, 아집에 주의하고, 아집에 대처해야 한다. 보리심은 그런데 상대적인 것과 궁극적인 것이 있다. 궁극의 보리심이 우리의 참 본성인데, 그것을 우리는 ‘지혜’라고 부른다. 티베트 불교에는 밀교 수행이 있다. ‘족첸’ 또는 ‘마하무드라(마음의 본성)’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한국 불교의 선 수행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궁극적인 수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이 마지막 단계로 수행하기까지 티베트 불교에는 굉장히 정교한 체계가 정립돼 있다. 아무리 근기가 강한 사람이라도 이 체계를 차근차근 밟아야 한다. 깨달음이 깊은 스승일수록 고차원의 관념적 수행보다 기초 수행을 더 중시한다. 수행도, 교학도 체계적이다. 점진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수행을 강조한다는 점이 티베트 불교의 가장 중요한 특질 중 하나다.”

서툴기 때문에 유창한 한국어

그는 아직도 한국말이 서툴다. 역설적으로 서툴기 때문에 유창하다. 좀 느리긴 해도 가장 적확(的確)한 한국어의 구절과 단어를 용케 찾아내고야 만다. 적절한 비유도 날카롭게 구사하는데, 그 날카로움은 신기하게도 어눌한 말투에서 나온다. 점층(漸層)과 점강(漸降)의 수사법을 적절히 사용하는 기술이다. 예컨대 이런 식의 언어 구사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교학 없이 수행할 수 없다고 보고, 교학 없이 수행한다는 것은 배우지 않고 수행하는 것이고, 그것은 마치 가파른 암벽을 팔다리 없이 오르는 것하고 똑같다고 볼 수 있다.”

2011년 프랑스 낭트 법회 때 달라이 라마 존자(왼쪽)를 친견하고 있는 용수 스님 / 세첸코리아

2011년 프랑스 낭트 법회 때 달라이 라마 존자(왼쪽)를 친견하고 있는 용수 스님 / 세첸코리아

서울에서 태어난 스님은 약사인 아버지를 따라 아홉 살 때 미국에 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가 세 살 때 헤어졌다. 그는 그때부터 친모의 손을 떠나 아버지를 따라 살았다. 미네소타주에서 2년간 살다가 유타주의 주도(州都) 솔트레이크시티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아버지를 따라 모르몬교도가 됐다.

로스앤젤레스에 가서 2년 동안 선교사로 활동할 만큼 독실한 모르몬교도였다. 이어 유타주립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고, 작은 방송국에서도 일했다. 2001년 유타대 농구장에서 달라이 라마의 강연을 처음 듣게 된다. 스님이 31세가 되던 해다. 그때 그의 영혼은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달라이 라마 존자의 강연 내용은 평범한 것이었다. 그는 두가지를 말했다. 인간은 누구나 다 똑같은 존재라는 것, 그러니까 누구를 만나도 친해질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비심이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비심이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말씀이었는데, 그게 제게 그렇게 깊이 각인됐다는 점이 놀랍다. 달라이 라마를 통해 처음 불교를 접했고, 그때부터 저는 불교적 자기 구원의 삶을 추구했다. 그 이후 한 번도 그 마음을 놓은 적이 없다.”

달라이 라마가 강연에서 뿜어내는 기(氣)와 활력은 놀라운 것이다. 굵고 힘찬 목소리에서 나오는 그 에너지는 사람의 가슴으로 단박에 스며든다. 구사하는 영어는 단순하고 소박해 더 유창하게 느껴진다. 그의 대범하고 호쾌한 유머, 편안한 표정, 부드러운 웃음에 용수 스님은 감화됐으리라.

달라이 라마가 전하는 불교의 진리는 어렵지 않다. 그래서 더 심오하게 다가온다. 누구를 만나든 “저는 그저 70억 인류 중 한사람입니다”라는 말로 자신을 겸손하게 소개한다.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마음의 빗장을 푼다. 티베트 불교에서의 스승과 제자 관계에 대해 용수 스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매우 중요한 가치다. 그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금강승(金鋼乘)의 가르침, 다시 말해 밀교적 전통에서 비롯됐다. 스승과 제자의 약속은 ‘사마야’라고 부르는데 ‘신성한 약속’이란 의미다. 성불할 때까지 스승으로 모셔야 하며, 그 인연을 깨면 안 된다. 제자는 스승을 순수한 눈으로 봐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마치 부처님을 보는 것처럼 스승의 허물에 주목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제자가 발견한 스승의 허물은 제자 자신을 투사(投射)한 결과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 또는 신성한 존재로 보는 게 금강승의 요체 중 하나인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스승은 말할 것도 없이 부처님의 현현이다. 이런 스승관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그 또한 하나의 방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티베트 불교에서 스승은 굉장히 인자하고 따뜻한 존재로 인식된다. 스승을 만나면 아이가 어머니를 보는 것처럼 흠뻑 사랑을 받는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신도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

티베트 불교를 한국에 전파하는 일은 지난하다. 서울에 센터가 10개 정도 들어섰지만 신도수는 좀처럼 늘지 않는다. 티베트 불교가 세계 불교계의 주류로 성장하고 있는 현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매년 정초 인도 부다가야(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지역)에는 10만명 이상이 모여 법회를 연다. 최근 들어 세가 약간은 줄었지만 수만명이 모이는 것은 다를 바 없고, 그 절반은 티베트 출신의 스님과 신도들이다. 나머지 반은 전 세계에서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다. 달라이 라마는 이 법회에서 며칠에 걸쳐 대승불교의 주요한 논서를 강의한다.

용수 스님은 은사스승인 뻬마 왕겔 린포체(왼쪽)를 통해 티베트 불교 스님이 되었다. / 세첸코리아

용수 스님은 은사스승인 뻬마 왕겔 린포체(왼쪽)를 통해 티베트 불교 스님이 되었다. / 세첸코리아

미국과 유럽에 건립된 티베트 사원에는 불교 수행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진다. 그들은 티베트 말을 배우고 경전을 읽으며 명상한다. 대승 보살의 길을 걷겠노라고 서원한다. 용수 스님은 조금도 서두는 기색이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신도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 규모가 커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진정한 자비심을 키우려는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된다. 그들과 함께 명상하고 서원하며 각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세첸코리아의 회원은 6400명이지만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회원은 200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명상 모임에 참여했고, 또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유튜브를 통해 내가 전하는 티베트 불교의 진리를 공부하고 있다. 그것으로 족하다. 외양이나 물질적인 규모를 쓸데없이 확장하려는 욕망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반하는 일이다.”

요컨대 이 순간에 있는 그대로 온전히 늘 만족하는 마음가짐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신도수가 적다고 애면글면하는 태도는 부처의 경계가 아니다. 여유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 행복을 찾지 말고 행복으로 존재하는 것, 자유를 찾지 말고 자유에 머무는 것,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 그저 쉬는 것에 익숙해지라고 그는 매일 당부한다.

세첸코리아는 다양한 명상, 수행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당일 프로그램이 있고, 3박4일 또는 5박6일 간의 집중명상 프로그램도 있다. 올 여름에는 네팔과 인도 라다크를 각각 방문하는 열흘 일정의 해외 명상순례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8월 9일까지 이어지는 라다크 순례의 의미는 각별하다.

자원이 빈약하고 기후가 혹독한 라다크는 생태적 지혜를 발휘해 1000년 이상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했다. 최근에는 서구식 개발 붐으로 환경이 파괴되고 사회적으로 분열되는 위기를 겪고 있다.

위대한 자연과 티베트 불교의 지혜가 살아 있는 라다크, 또한 사회적·생태적 재앙에 직면한 라다크가 공존한다. 상반된 지향의 이 두 라다크를 용수 스님과 그 순례단이 어떤 지혜의 눈으로 돌아보고 올까 궁금하다.

<한기홍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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