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클래식 기타리스트 허원경 “속도 경쟁에 내 음악 매몰하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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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기타리스트 허원경(48)의 연주를 지난 7월 5일 예술의전당에서 처음 들었다. 이날 현대음악연구모임 ‘운지회’의 30주년 기념연주회가 열렸다. 박상연 예술감독과 지휘를 맡은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11년째 기획하고 있는 ‘Joy on the Strings’ 무대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허원경은 “음악의 본질, 연주의 기본에 충실한 자세를 견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 주미영 작가

클래식 기타리스트 허원경은 “음악의 본질, 연주의 기본에 충실한 자세를 견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 주미영 작가

허원경은 이날 한국 현대음악의 거목 백병동의 작품을 연주했다. ‘기타와 현악합주를 위한 운(韻)-8’이란 곡이다. ‘운’ 시리즈는 백병동의 악기에 대한 애정의 산물이다. 1번부터 6번까지는 초기에, 7번(해금)과 8번(기타)은 2014년 무렵 만든 곡이다.

허원경은 이 곡을 강력한 집중력을 발휘해 연주했다. 그의 연주는 선이 굵고, 기교를 탐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색 중심의 접근이나 포장을 내려놓고, 작곡한 사람의 음악적 본질을 끝까지, 그리고 단단하게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이날 연주에서 허원경은 짧은 카덴차(cadenza)를 스스로 만들어 삽입했다. 기타의 독주(카덴차)와 현악 체임버가 화답하는 형식의 연주에서, 연주자는 무반주로 자신의 기교를 최대한 발휘한다. 화려하고 자유롭게 그 대목을 연주하게 된다. 작곡자 백병동이 연주자 허원경에게 특별히 부탁해 만들었다고 한다. 투명하고 단정한 기타의 울림이 오래 지속됐다. 현악오케스트라는 기타에 사유의 무게를 얹었다.

윤이상을 사사한 백병동은 한국 현대음악계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서정성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날 연주곡에 대해서도 그는 ‘현대음악의 논리중심주의에 대한 반발이며, 서정성을 되찾기 위한 고민에 대한 나의 해답’이란 평가를 스스로 내놓았다. 닷새가 지나 서울 서초동 연습실에서 허원경을 다시 만났다.

엄격했던 스승이자 아버지 “어린 시절부터 스승은 내게 엄격했다. 기교적인 측면보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예를 들어 악보 위에 물건을 얹는다거나, 기타를 함부로 다루거나 케이스를 넘어 다니는 행위를 금했다. 작곡가를 존중하는 마음을 먼저 배웠다. 기본에 충실하고 멋을 부리지 말라는 가르침을 자주 들었다. 음악을 예쁘게 포장하기 전에 ‘걷고 뛰는 것’부터 배웠다. 스승은 내게 음색적인 접근, 스타일을 만들고 장식하는 일은 스스로 개척하라고 하셨다. 어디에 가서 연주하든 강인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여류’라는 말에 안주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아홉 살 때 클래식기타를 전공하기로 한 그는 20대 중반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한 스승에게 배웠다. 한국 클래식기타계의 대부인 부친 허병훈(72)이다. 허병훈은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을 장학생으로 입학해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음악원 졸업 콩쿠르 때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상을 수상했다. 1973년 데뷔 독주회 이후 국내외의 수많은 연주회를 통해 명성을 얻었다. 그 유전자(DNA)가 딸 허원경에 각인된 것이리라. 아버지의 음악세계를 그는 이렇게 기억한다.

“마치 고행하는 수도승처럼 기타에 몰두했다. 거의 매일 새벽까지 연습하셨는데, 뭔가 벽에 부딪혔을 때는 며칠을 고민해 해답을 찾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는 내게 왜 힘들게 음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과 목표를 제시해주며 설명해주셨다. 아버지만의 동기 부여 방식이었는데, 음악이 인생에 있어 가장 순수한 만남이라는 것이었다. 음악은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갈고닦은 기예는 언젠가 큰 보답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셨다. 왜냐하면 음악은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고, 청중에게 베풀어야 하기 때문에… 그 소명은 지엄하다고 했다.”

스페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기타 스승인 부친 허병훈씨와 함께한 허원경 / 허원경 제공

스페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기타 스승인 부친 허병훈씨와 함께한 허원경 / 허원경 제공

어릴 때부터 허원경은 음악을 암기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부친의 연주곡을 한 번 들으면 금방 외워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된 동생 허대욱도 비슷했다. 한 번 들은 음악은 머릿속에 각인됐다. 음조와 멜로디를 정확하게 외워 휘파람을 불었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 거기에 내재한 가치를 강조했고, 자식들이 강인한 인간이 되기를 기대했다. 특히 삶의 ‘영속성’에 주목했다. 그것은 수많은 좌절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속하는 태도로 요약된다. 아버지의 그런 단단함이 허원경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된 듯하다.

“어릴 때부터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강하다는 것은 ‘인생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태도’를 말한다. 지금은 흉내만 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처음에는 부친이 무서워 쫓아갔지만 끝까지 튕겨나가지 않았다. 그 가르침의 본질과 목표를 이해하고 따르고자 했기 때문이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에 입학했다. 당시 서울대 음대는 매년 1명의 기타 전공자를 뽑았다. 음대 전체에 고작 4명의 기타 전공자가 있을 뿐이었다. 교수도 대체로 1명이었다. 간혹 2명일 때도 있었다. 대학에 와서도 그는 서울대 교수였던 아버지에게 기타를 배웠다. 부친의 후광으로 서울대 음대에 진학한 게 아니냐는 질시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당시 허원경의 기타 연주를 들어본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연주적인 측면에서 아버지와 나를 감히 비교할 순 없다. 음악적 해석에서 나는 아버지와 다르다. 그는 선이 굵은 해석을 장기(長技)로 한다. 강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연주를 들려준다. 나는 기타가 가지고 있는 다채로움을 그 강인함 안에서 끌어내려고 한다. 부드러움보다 강인함을 추구한다. 그 점이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부드러움을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세계가 있다는 얘기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나 조성진의 연주를 보면 굵은 선 안에 굉장한 섬세함이 깃들어 있다. 거장의 연주에는 그런 모순된 것들이 함께 들어 있다. 그것을 모두 가져야만 진정 음악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에 입학한 사연 중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 피바디 음대의 쿠바 출신 교수 마누엘 바루에코가 한국 방문 중 그의 재능을 간파했다. 그의 문하로 두고 싶다고 했지만 아버지가 반대했다. 어린 딸을 유학 보내려니 걱정이 앞섰다. 서울대 음대 재학 중 허원경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고 교수였다.

한국을 방문해 연주회와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는데, 단박에 허원경의 재능을 알아봤다. 당장 스페인으로 가자고 했다. 허원경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에 입학한 계기다. 기타 전공 최고 과정을 졸업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전문연주자, 최고(Superior) 교수 학위를 따냈다.

마드리드 음악원은 스페인 최고의 음악 학교다. 스페인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몰려든다. 특히 기타 전공 분야의 파워는 막강했다. 한 학년에 20명 이상의 기타 전공자가 있었다.

부드럽고 열린 분위기에서 허원경은 자유를 구가하며 기타를 쳤다. 아버지가 강조한 기타 연주자로서 강인한 기질, 기본에 충실한 단단함에 마드리드의 자유로운 공기가 그의 기타 인생을 감쌌다. 스페인에 간 지 1년 만에 허원경은 아버지의 틀을 깨기 시작했다. 항상 기본을 중시하는 아버지의 견고한 세계를 바탕으로 하되, 여러 스승이 갖고 있던 다양한 자양분을 흡수했다.

허원경은 기타가 가지고 있는 다채로움을 자신의 강인함과 조화를 모색하고 있다. / 허원경 제공

허원경은 기타가 가지고 있는 다채로움을 자신의 강인함과 조화를 모색하고 있다. / 허원경 제공

“기타의 음색은 피아노와 닮았다. 현을 손으로 퉁겨주는 악기인데, 그게 피아노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기타는 또한 사람의 목소리와 음조가 비슷하다. 요즘은 개량돼 볼륨이 큰 기타가 등장했지만, 방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쳐도 매혹적이다. 손끝으로 뜯어내는 악기이다 보니 다른 악기들보다 그 음색이 너무도 다채롭다. 인간의 목소리 다음으로 가장 친화력 있는 악기가 아닐까 한다. 베토벤과 파가니니, 슈베르트도 기타를 애호했다. 베토벤은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줄리아니의 연주에 매료돼 3곡 정도의 기타 편곡작을 남겼지만 소실됐다고 한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의 곡 수만큼 기타 곡을 썼다. 때로는 한곡에서 기타와 바이올린을 번갈아 가며 연주하는 신출귀몰함을 보이기도 했다. 중산층의 성장과 함께 연주장은 커졌지만, 소리로 채우기에는 음량이 따라가지 못했다. 슈베르트는 가곡 반주부에 나오는 많은 아르페지오(분산화음) 등 기타에 어울리는 주법을 활용했다. 그가 기타를 사랑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허원경은 피아노나 바이올린, 첼로 등을 ‘열강(列强)의 악기’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들 악기가 클래식 음악의 주류를 이룬다는 표현이다. 대형 연주회장에서 기타가 이 ‘열강의 악기’를 따라갈 순 없다. 하지만 음악을 애호하는 소수의 커뮤니티가 형성하는 트렌드가 있다. 그런 흐름 안에서 기타의 위치는 독보적이다. 살롱의 음악으로 기타만큼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악기는 드물다고 그는 설명한다.

“기타는 손톱을 길러서 친다. 그 손톱에서 나오는 소리, 살과 손톱이 함께 작용해 나는 소리, 맨손으로 뜯어서 나는 소리, 조금 뒤쪽에서 나오는 딱딱한 소리, 좀더 부드러운 소리 등 그 다양한 소리의 갈래가 현란하다. 기타는 현악기지만 한 번에 최대 6개의 음을 낼 수 있다. 반면 바이올린, 첼로 같은 현악기는 기본적으로 ‘단 선율’ 악기로 볼 수 있다. 기타는 단 선율 외에도 6개의 줄에서 화음으로 움직인다. 또한 여러 줄에 걸쳐 같은 음들이 있다. 각각 다른 음색을 지닌다. 때문에 운지가 어렵다. 포지션, 타점 별로 다 달라 기타가 내는 소리가 다채롭다.”

기타는 고대 그리스의 악기 ‘키타라’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그 연원과 전통이 깊다.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치며 여러 형태로 변화했다. 현재의 보편적인 기타와 가장 유사한 모델은 1850년 스페인의 안토니오 토레스 후라도가 제작했다. 그는 가에타노 비나치아가 1779년에 만든 만돌린을 수정해 기타를 디자인했다고 한다. 스페인과 기타의 친화성은 그래서 역사적이고 운명적이다.

지난 해 재즈 피아니스트 허대욱과 협연하고 있는 허원경 / 허원경 제공

지난 해 재즈 피아니스트 허대욱과 협연하고 있는 허원경 / 허원경 제공

“기타 음악의 발전은 뛰어난 연주자에 의해 이뤄졌다. 스타 연주자들이 나오면서 그 연주자에게 헌정하는 뛰어난 곡이 작곡됐다. 안드레스 세고비아(1893~1987)를 빼고 현대의 기타 음악을 논할 수는 없다. 그는 바흐, 라모 등의 고전 명곡을 기타 곡으로 편곡해 예술적으로 연주한 거장이다. 기타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이 악기에 생명을 부여했다. 최고의 기타 연주가일 뿐 아니라 기타의 부활을 이끈 영웅이라 할 수 있다. 때로는 과감하고도 자유롭게 곡을 해석했다. 형식과 표제를 뛰어넘어 자유를 추구했다. 연주가 너무도 출중해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영국 태생인 줄리안 브림도 비슷한 경우다. 벤저민 브리튼, 윌리엄 월튼, 레녹스 버클리 등 영국의 뛰어난 작곡가들이 그(줄리안 브림)를 위해 기타 곡을 헌정했다.”

허원경은 클래식과 대중음악은 수준과 우열을 분별할 수 없다고 본다. 다만 효용이 다를 뿐이다. 완성을 향한 ‘절치부심’에 있어서, 이미자나 조용필의 음악이 지향하는 바는 클래식 음악과 진배없이 ‘고귀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주자로서 그는 이 절치부심의 가치,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의 외로운 자기단련을 중시한다. 다시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돌아와 음악의 본질, 연주의 기본에 충실하자고 말한다.

“빠른 속도로 곡을 연주하며 박수를 받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빠른 속도는 여러 테크닉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천천히, 그러나 더욱 단단하게 연주하기를 즐긴다. 알레그로, 비바체는 메트로놈이 정해주는 빠르기로 가늠할 수 없다. 그 음악이 탄생했던 시대의 속도 감각을 존중하려 한다. 이 시대의 공허한 속도 경쟁에 내 음악을 매몰하고 싶지 않다.”

동생은 재즈 피아니스트 그에게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동생 허대욱(44)이라는 ‘소중한 자산’이 있다. 그는 클래식 피아노에서 작곡으로, 다시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현재 프랑스에 머물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허대욱은 즉흥연주와 리듬 그리고 화성에 반했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된 배경이다. 곧바로 ‘투 더 웨스트(To the West)’가 타이틀곡인 첫 음반을 냈다. 그의 음악은 이미지부터 출발한다. 종국에는 소리로 그 이미지를 표현한다. 음반 <트라이그램(Trigram)>에서 시작해 가장 최근작인 <셰르파(Sherpa)>에서 그 성격이 더욱 짙어졌다. <셰르파> 음반은 프랑스의 손꼽히는 재즈 레이블에서 발매해 큰 호평을 받았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이 허대욱의 곡을 부른 트랙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앨범(Aire de Espana) 발매 기념으로 동생과 함께 로드리고의 ‘아랑페즈 협주곡’ 2악장을 연주한 적이 있다. 오케스트라의 역할을 동생이 피아노로 대신했다. 나는 나대로 악보에 충실한 연주를 했고, 동생이 피아노로 산책하듯 내 연주를 따라왔다. 자신만의 스타일과 화성을 발휘했다. 피아노가 현란해 기타 연주가 죽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게 명곡인 ‘아랑페즈 협주곡’ 2악장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동생의 차기작은 더욱더 강한 스토리텔링과 이미지 묘사를 통해 새로운 장르를 모색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 크리에이션에 내가 어떤 영감을 받을지 궁금하다. 연주자라면 끊임없는 공부와 연구가 필요하다. 언제나 겸손하게 공부하는 사람으로 청중의 사랑과 신뢰를 받고 싶다.”

<한기홍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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