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석(52) 충북대 축산학과 교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청소년 시절에는 농업과 축산을 전혀 알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축산에 대한 관심은 그런 성장 과정에서 비롯됐다. 경북대 낙농학과에 입학했다. 공부를 할 때마다 새로운 세상과 조우했다. 생명 현상을 다루는 그 세계는 풍요로웠다. 그 분야의 여러 이슈에 대한 지적 호기심은 무한대로 늘어났다. 그가 시골에서 자랐다면 축산학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김 교수는 1997~2003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 과정을 밟았다. 박사학위 전공은 분자유전학이다. 가축의 성장, 에너지 대사, 면역형질 등을 연구했다. 쉽게 말해 비만과 식욕과 관련된 유전자에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돼지의 사료 효율성에 주목했다. 사료를 적게 먹고, 분변도 적게 배출하는 유전자에 관한 연구다.
동물의 사료 효율은 종돈회사로선 큰 관심사다. 사룟값을 포함한 생산비가 수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 비용을 10%만 줄여도 상당한 절감이다. 돼지는 사람과 생리적으로 유사하다. 돼지의 비육과 식용에 관계하는 유전자는 사람에게도 있다.
돼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비만 치료와 연결되는 지점을 그는 찾아냈다. 미국의 제약사 화이자에서 그의 연구 성과에 주목해 그 효능을 테스트하기도 했다. 유력한 학술 저널에 좋은 논문도 여럿 게재했다.
“사람과 동물의 공통점은 3가지다. 유전자(DNA)를 갖고 있고, 생식 활동을 수행하며, 환경에 적응한다는 점이다. 분자유전학은 생명체를 이해하기 위해 유전자를 들여다보는 학문이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유전자의 구조와 형태가 밝혀진 것이 이 분야 연구에 폭발적인 진보를 가능하게 했다. DNA가 규명됨으로써 인간은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게 됐다. 분자유전학의 길이 열린 것이다. 개체 간의 차이를 DNA 수준에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생명과 연구 윤리 등 민감한 이슈가 제기되지만, 인간은 생명 현상을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을 갖게 됐다. 내가 택한 학문의 길이 바로 그런 이슈와 맞물려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마주하다 그는 경북대를 졸업하고 양돈장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그때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목도했다. 동물복지와 환경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축산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그는 생각한다. 동물복지 운동가들과 독서모임을 갖기 위해 직접 차를 몰아 경기도 지역을 방문하기도 한다.
해럴드 맥기는 그의 책 <음식과 요리>에서 이렇게 썼다. 동물로부터 고기를 얻는 데는 2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생의 동반자로서 그 동물이 가진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온전히 살리는 방식이다. 황소와 말은 들판에서 부리기 위해, 닭은 알을 얻기 위해, 암소와 양과 염소는 우유와 털을 얻기 위해 키웠다. 그들이 고기로 변하는 것은 오로지 더 이상 본래의 가치를 생산할 수 없을 때다.
동물로부터 고기를 얻는 두 번째 방법은 그 동물을 오로지 고기를 목적으로 사육하는 것이다. 잘 먹이고, 불필요한 활동을 억제해야 한다. 또한 연하고 맛이 순하고 기름진 살코기를 얻기 위해 어릴 때 도축한다.
김 교수에게 축산은 산업 이전에 인류 문명의 과제가 응축된 하나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토종 소와 돼지에 대한 연구도 그의 이런 문제의식과 연결돼 있다. ‘생의 동반자로서 동물의 고유한 특성과 가치를 온전히 살리는 방식’의 축산을 그는 꿈꾸고 있다.
“유전자 정보와 표현형의 관계를 오래 연구했다. 어떤 유전자가 어떤 표현형을 만드는지, 그 기작(機作·생리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기본 원리)에 대한 연구다. 2004년 충북대에 임용된 직후부터 6년간 토종돼지 연구에 골몰했다. 고기의 품질은 맛으로 결정되는데, 제주도 흑돈 등 재래 돼지고기는 맛이 확실히 달랐다. 여기에는 단순히 느낌이 아니라 유전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이 연구를 통해 학문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산업으로서의 양돈은 결국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다. 토종돼지는 성장이 느리고 몸이 작으니까 돈이 되기 쉽지 않다. 성장이 더디고 지방이 많다는 것이 약점이다. 그 유전학적 원인을 장기간 연구를 통해 규명했다. 유전자 정보를 보면 그 종의 뿌리를 알 수 있다. 그 종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다른 종의 특성에 대한 연구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비교가 가능한 기준점을 확보하는 것이니까. 연구결과 우리 토종돼지는 만주의 민피그(min-pig)와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했다. 만주를 거쳐 사람과 가축이 한반도로 넘어온 게 아니냐는 추론을 뒷받침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김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집단을 유전학적으로 분리할 때는 뿌리와 함께 현재의 상태를 관찰해야 한다. 예컨대 제주라는 섬 지방에서 적응한 흑돼지는 내륙의 흑돼지와 유전자 구성에 차이가 있다. 섬 환경의 적응에 유리한 유전자가 선발돼 대물림한다. 같은 원리로 만주의 ‘민돼지’와 우리 토종돼지는 유전학적으로 거의 동일하지만 지역적 차이가 DNA에 반영돼 있다.
한우의 털은 왜 황갈색인가 김 교수는 토종돼지를 연구하면서 2005년부터는 한우 연구를 병행했다. 황갈색 털을 가진 누렁 소를 보통 한우라 부르는데, 그 한우의 유전학적 기원과 특성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도대체 왜 한우의 털은 황갈색일까, 그의 연구 출발점이었다.
“2개의 유전자형을 결합했을 때 그 표현형의 양상을 과학적으로 규명해보자는 시도였다. 누런색 한우와 검은색 소를 교배하면 검정소가 태어난다. 포유류는 통상 검정 털 색깔이 우성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무렵 일부 농가에는 젖소와 한우를 교배했다. 그러면 놀랍게도 새까만 송아지가 나온다. 젖소의 얼룩무늬는 실제로는 검정 바탕에 흰 반점의 유전자가 박히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송아지는 성장 속도가 다소 빨랐다. 여기서 태어난 검정소는 다시 황갈색 한우와 교배하면 검은색과 황갈색 송아지가 반반씩 나온다. 신기하게 여겨지지만 실은 멘델의 유전법칙이 정확하게 작용한 결과다. 한우의 특성을 밝히려면 이런 기본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데, 연구 차원에서 시도하는 것조차 잘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한우만 들여다봐서는 뭐 나올 게 없었다. 한우의 단점은 젖소에 비해 체구가 작고 젖이 적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 유전적 차이를 논문으로 써서 발표하러 갔더니 농림부 관료 한사람이 ‘이런 연구는 해선 안 된다’면서 면박을 주더라. 이런 열악한 연구 풍토에서는 업계 종사자 모두에게 유익한 정보를 축적할 수가 없다.”
국내의 양돈업계에선 대체로 모계는 랜드레이스종을, 부계는 두록저지종을 쓴다. 랜드레이스는 덴마크의 재래종과 영국의 라지화이트종을 교배해 얻는다. 한국의 재래 돼지와 3개의 외국산 종자가 잡종을 만들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런 맥락에서 “재래종의 가치를 탐구해 먼저 시도해야 하고, 그런 다음에야 그 가치를 더욱 높일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수행한 돼지 연구는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연구 과정에서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는 재래 돼지 개체가 상당수 확보됐다. 이 돼지들은 축산진흥원에서 수집에 공을 들여 보존과 함께 발전을 모색하고 있는 단계다.
“한우는 과거보다 연구가 굉장히 활발해졌다. 그런데 고민도 많다. 연구자들은 많은데, 주제는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테마 선정과 관련해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다. ‘한우의 고유한 특징이 무엇인가’라는 접근법이 산업적으로 중요한 연구 이슈가 됐다. 외국산 소고기 수입이 본격화되면서 학계에서는 미국산 소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미국 소는 한우와 마찬가지로 북방계에 속하고 맛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남방계로 분류되는 호주 소는 상대적으로 맛이 덜하다 보니 관심도가 떨어졌다. 미국 소를 함께 연구하면서 한우를 깊게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그때의 연구 성과가 한우를 유전학적으로 규정하는 기준으로 채택됐다. 유전자 마크를 통해 한우를 판별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편리한 방법을 고안했다. 보람을 느낀다.”
와규(일본의 육용소종) 연구에 대한 일본 학자들의 열정적인 노력도 배워야 한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일본 학계는 와규의 정체성을 파악하기 위해 전 세계의 소를 폭넓게 연구했다. 한우와 몽골 소도 집중 연구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한우와 일본 와규는 유전적 차이가 거의 없다. 역시 유전적 차이라는 것은 거리에 비례한다는 상식적인 추론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하겠다. 와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우에 대한 여러 가지 유전적 특질도 규명됐다. 우리도 와규를 포함한 다른 나라 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유학 기간 축적한 미국 내 네트워크가 큰 도움이 됐다. 2010년대 이후 유전자 정보를 해독하는 기술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 연구 환경도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다. 한우를 연구하면서 중국 소와도 비교해봤다. 유전 정보를 비교해보니 한우는 중국 소의 조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드러났다. 한우가 동북아시아 소의 기원이라는 설이 성립하는 셈이다. 이런 점을 너무 국수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는 없다. 한민족이 매우 이른 시기에 소를 가축화했고, 그 전통과 역사가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황하문명의 뿌리가 되는 지역의 유물을 찾아보면 출토된 소의 뼈에서 찾아낸 유전자가 한우와 거의 같다. 가축을 처음 기른 곳이 동아시아이며, 그 문화가 유럽과 아프리카로 전파됐다는 점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칡소의 현실과 한우업계의 상황 칡소에 대한 김 교수의 관심도 한우 연구의 연장선에서 시작됐다. 칡소는 고구려 안악3호분 벽화에 나타난 3마리의 소 중 1마리라는 설이 제기된 적도 있다. 그렇지만 그 그림에 나타난 소가 과연 지금의 칡소인가에 대해서는 확증하기 어렵다.
사실 칡소를 과도하게 조명하며 호들갑을 떤 측면도 부인하기 어렵다. 정지용의 시 <고향>에 나온 ‘얼룩백이 소’를 칡소라고 한다거나, 동요에 나오는 <얼룩 송아지>가 칡소라는 주장도 있었다. 칡소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얼룩소가 곧 칡소’라는 예단에 빠진 측면이 있었다.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5년 <칡소를 묻다>라는 책을 낸 서울대 축산과 출신 출판인 김진수씨는 ‘모든 얼룩소를 칡소’로 보는 시각을 하나의 ‘도그마’로 간주한다. 그는 또한 “이 땅에는 각양각색의 소가 존재했고, 칡소는 그 하고많은 얼룩소 가운데 하나”라고 부연한다.
칡소와 토종을 신비화하는 것에 대한 반박으로 읽힌다. 김 교수가 한우 중에서도 칡소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칡소를 묻다>라는 책을 읽고 난 후다. 김 교수는 칡소가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음을 이렇게 지적했다.
“일제강점기부터 황갈색 털을 가진 소만을 한우로 인정하는 잘못된 관행이 지속됐다. 다른 색깔의 털을 가진 소는 한우가 아니라는 차별을 겪었다. 이모색(한우의 본래 털색과 다른 털색) 송아지는 제값을 받기도 어렵고, 새끼를 낳지 않게 하고 도태를 시켰다. 지금 현실은 어떤가. 국가기관의 정책은 칡소끼리의 근친교배를 권장한다. 칡소끼리 교배를 해야 칡소로 인정하고, 아니면 교잡우가 된다. 근친교배를 계속하면 칡소라는 집단의 장점과 건강성은 퇴화할 가능성이 크다. 황갈색 한우는 점점 더 개량되는데, 칡소는 보존이라는 이름으로 퇴화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칡소를 장려하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이런 부작용을 눈여겨봐야 한다.”
칡소의 현실은 우리 한우업계가 처한 전체적인 상황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마블링이 적고 성장 기간이 길며, 몸집이 작은 칡소를 가지고 현재의 등급제 안에서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마블링 중심의 육질 등급제가 한우산업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측면도 물론 있다. 그러나 현행 등급제는 칡소 등 개체수가 적은 ‘특별한 소’의 유통과 소비에 한계로 작용한다.
현재의 등급제는 축산물품질평가원이 틀어쥐고 있고, 여기에 축협과 사료업계가 이해관계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생산자가 자신만의 한우 브랜드를 개발해 당당하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여건이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다양성이 사라진 소고기 시장이 판을 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한우산업에는 국가 차원의 전략이 전혀 없다. 그러니까 평가원의 등급판정제도 역시 손질하기 어렵다. 마블링 소고기에 익숙해진 대중은 비싼 돈을 주고라도 높은 등급의 소고기 소비를 원한다. 생산자가 주도해 자신만의 고유한 브랜드 개발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등급에만 목을 매는 구조다. 미국은 ‘패커(Packer)’라고 불리는 프로 육가공업자들이 전 세계 소비자를 상대한다. 유럽은 각 지역의 음식문화가 자생적인 종자와 사육방식과 결합해 고유한 육식문화 형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중간상, 유통업자의 현실은 어떤가. 전문성이 떨어지고 취약하다. 이들에게는 수입육을 들여와 파는 것이 이익을 남기는 최상의 방법이다. 이제는 소비자 요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생산자 중심의 중간업자가 나와야 한다. 보조금을 받고 소를 키우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그런 특혜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개발하는 생산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유통업자가 여기에 힘을 보태는 방식이어야 한다.”
<한기홍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