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모자이크 같은 베트남의 소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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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는 수많은 종류의 쌀국수가 있다. 한국에서 흔히 ‘베트남 쌀국수’라고 부르는 ‘퍼어(Pho)’도 있고, 가락국수처럼 굵은 면발에 얼큰한 빨간 국물이 일품인 중부 지방의 ‘분 보 후에(Bun Bo Hue)’라는 쌀국수도 있다. 또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진 ‘분 짜 하노이(Bun Cha Hanoi)’도 있다.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 완자가 담긴 육수에 쌀국수를 비벼먹기도 하고 찍어먹기도 한다. 이처럼 베트남에는 수십가지의 쌀국수가 있다. 한국 사람들은 고깃국물에 면을 말아 먹는 퍼어만이 베트남 쌀국수라고 생각한다. 물론 퍼어가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이긴 하지만 베트남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다.

베트남 20대들의 코스프레 모습 / 유영국 제공

베트남 20대들의 코스프레 모습 / 유영국 제공

다양한 종류의 쌀국수처럼 베트남은 다양한 현상과 모습이 겹쳐져 있는 모자이크 같은 모습의 나라다. 이런 베트남 시장을 알려면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 어느 하나 두드러진 일부분만을 베트남 전체라고 오인하고 사업을 무리하게 전개하다 보면 실패를 맛보게 된다. 베트남에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는 이유는 본격적인 개방이 불과 20여년밖에 안 되고, 급속도의 변화 속에서 사람들의 연령대별 성향이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베트남 20대들의 코스프레 모습 / 유영국 제공

베트남 20대들의 코스프레 모습 / 유영국 제공

베트남은 1975년 미국과의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국토를 빨리 재건해 세계경제에 편입하기 위해 1986년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머이를 선언했다. 1995년 미국과 수교하고, 2007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시장으로 각광받으며 말 그대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미국과 베트남이 수교할 당시 양국 간의 교역액은 4억5000만달러였다. 26년 만인 2021년 1115억6000만달러를 달성해 246배나 증가했다.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베트남을 단순하게 규정하기는 어렵다. 베트남 소비자들은 어떠하고, 어떤 성향의 소비를 하는지 근본적으로 살펴보고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생=한국 6·25전쟁 세대 베트남의 1970년대생은 한국의 6·25전쟁 세대와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1975년 미국과의 전쟁이 끝났지만 곧이어 킬링필드의 대학살을 일으킨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과 1977년까지 전쟁을 지속했다. 그리고 1979년 베트남을 침공한 30만 중국군과 한달간 전쟁을 벌였다. 이처럼 베트남의 1970년대생은 전쟁을 직접 겪었거나 전쟁 직후의 물자가 부족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국의 6·25전쟁 세대가 먹을 게 없어 꿀꿀이죽을 먹고 뒷산에서 칡을 캐먹으며 굶주린 배를 채웠던 시절의 경험을 이들도 고스란히 겪었다.

1980년대생=한국의 베이버부머 1980년대생은 전쟁 직후의 평화와 안정 속에서 태어난 사람들로, 형제가 8~10명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1988년까지도 식량 부족으로 해마다 쌀을 수입해 먹어야 할 정도로 베트남의 경제는 어려웠다. 흥부네 대가족처럼 어린 시절에는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이런 1980년대생에게 형제끼리 나눠쓰고 아껴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 직후 보릿고개를 겪은 한국의 베이비부버 1958년생들과 성장환경이 비슷했다.

중국에서는 1980년부터 산아 제한 정책으로 1명의 아이만 낳을 수 있었다. 동일한 나이대이지만, 전혀 다른 상황이 중국과 베트남 시장을 확연히 구분 짓게 한다. 중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2000년대에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집안에 있는 귀한 아이 하나를 위해서만 집중적으로 소비했다. 중국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더욱 높아졌고 고급 시장이 빠르게 성장했다. 베트남은 앞서 언급한 대로 부족한 환경에 수많은 자녀에게 소비가 분산됐다. 저렴하게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이 주를 이뤘다.

지난 15년간 30~40대 연령자로서 베트남 전체 소비시장의 주축이었던 1970~1980년대생은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돈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대신 미래를 위해 자녀들의 교육비는 아끼지 않고 썼다.

[우리가 모르는 베트남](25)모자이크 같은 베트남의 소비층

1990년대생=한류·스마트폰 세대 1992년 베트남과 수교 이후 대우를 필두로 수많은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한국 드라마와 노래도 함께 유행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한류가 중국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베트남에서도 한류가 시작됐다. 베트남의 1990년대생은 개방·개혁의 태풍 속에서 성장하며 한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세대다. PC와 스마트폰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며 베트남의 온라인 시대를 열어나간 세대이기도 하다. 저가항공의 열풍으로 해외여행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또한 이들은 성인이 되자마자 결혼해 곧바로 아이를 낳은 1970년대생의 자녀들이다. 미래를 위해 자녀들의 교육에 헌신적인 부모들 덕에 사교육과 본격적인 해외 유학을 시작한 세대들이기도 하다. 한국으로 치면 1980년대생과 비슷한 유년기를 보낸 세대다.

2000년대생=MZ세대 베트남의 2000년대생부터는 한국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한국 MZ세대의 고민과 성향이 베트남 MZ세대에서도 고스란히 풍기기 때문이다. 물론 절대적인 경제력과 해외여행의 경험 차이로 인한 사고의 차이가 분명 존재하지만 큰 차이는 못 느낀다.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한국 돈으로 40만~60만원의 급여를 받으면서도 100만원이 넘는 아이폰과 갤럭시 신형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소비성향을 보인다. 베트남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베트남 사람들의 소득과 구매력의 상관관계를 모르겠다며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한국처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넘는 경제력의 국가들은 연령별로 소비성향과 구매력이 어느 정도 평준화를 이루는데 베트남은 이처럼 확연히 달라진다. 베트남에는 모자이크처럼 성향이 다른 10년 단위의 소비층이 확연히 구분돼 있다. ‘베트남은 30년 전의 한국과 같은 곳이니 과거에 한국에서 팔던 제품을 베트남에 수출하면 된다’라는 타임머신 방식의 접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려는 회사들이 있다면 베트남의 사회, 역사적 상황 때문에 연령별로 사람들의 소비 성향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하게 파악해 현명하게 접근하기를 바란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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