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베트남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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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싸라 있네!”

2년 만에 베트남에 출장 온 모 업체 대표가 꽉 막힌 도로에 갇히자 기분 좋게 영화 대사를 흉내 내며 탄성을 질렀다. 호찌민의 오토바이는 800만대가 넘는다. 출퇴근 러시아워뿐 아니라 도로는 오토바이 물결로 정체됐다. 그러던 도로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동안 한산했는데 팬데믹이 마무리돼가는 시점이어선지 막히기 시작했다. 일상의 회복과 함께 베트남에 활기가 넘치는 듯하다.

소비대전을 중계하는 베트남 방송국 모습 / 유영국 제공

소비대전을 중계하는 베트남 방송국 모습 / 유영국 제공

하늘길 열리자 외국인 입국자 급증

지난 2년 4개월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굳게 닫혔던 베트남 하늘길이 열리면서 나라 전체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 베트남 관광 산업은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기준 베트남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9.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소득원이다. 베트남 입국이 가능해지자 가장 많이 찾은 이들은 역시 한국 사람들이었다. 5월 30일 베트남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5월 현재 베트남을 찾은 외국인은 17만2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84% 증가했다. 전월 4월보다 71% 증가했다. 그중 한국인이 2만8600명으로 전체 방문객 중 1위를 차지했다. 지난 4월 27일 모든 외국인 입국자에 대한 의료 신고 요건을 폐지하고 베트남 입국 항공편이 늘어나면서 베트남으로 향하는 외국인 입국자들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아직 관광객들보다 베트남에 사업체를 운영하는 기업의 출장자들과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으려는 사업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킨텍스 같은 호찌민 최대규모 전시장인 SECC(Saigon Exhibition & Convention Center) 역시 2년 6개월 만에 재개장했다. 한국 기업들이 선점했다.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지난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벤처기업부와 공동으로 ‘스마트 시티 아시아 2022(Smart City Asia 2022)’를 기획했다. 스마트 홈, 스마트 에너지,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모빌리티 등 스마트 시티 산업 전반의 전시회를 열었다. 개막식에 베트남 외교부 차관과 정보통신부 차관이 함께 참석할 정도로 베트남 정부가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냈다.

2018년 1월 베트남 정부는 ‘2018~2025 지속 가능한 스마트 시티 개발 사업’을 승인하고 2030년까지 하노이, 호찌민, 다낭, 껀터 등을 스마트 시티 네트워크 핵심 도시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별다른 진척이 없던 해당 프로젝트가 하늘길이 열리고 일상을 되찾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스마트 시티 사업 박람회를 열었다. 세계은행 홈페이지에 공유된 베트남의 도시화율은 2000년 24.4%에서 2020년 37.3%로 빠르게 발전했지만, 아세안 국가 중에는 7위로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와 함께 여전히 아세안 최하위 그룹에 속해 있다. 베트남의 무선인터넷 보급률이 70%에 달하고 스마트폰 보급률은 63.1%로 세계 9위인 것을 감안하면 2030년 도시화율 50% 달성과 스마트 시티 사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가 마냥 불가능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스마트 시티 아시아 박람회에 이어 지난 6월 2일부터 5일까지는 한국의 코엑스가 무역협회와 함께 ‘프리미엄 소비재’, ‘베이비&키즈 페어’ 등을 동시에 개최했다. 한국의 화장품, 유아용품, 건강기능 식품 등 다양한 소비재 기업들이 베트남 바이어 찾기에 나섰다. 여기에 대전, 충남, 충북의 50여개 기업까지 ‘K벤처 페어’라는 테마로 박람회에 가세했다. 행사 관계자는 “참여 기업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비대면으로 바이어 상담을 했을 때는 계약 성사 가능성이 쉽지 않았던 반면 직접 제품을 소개하고 상담을 하니 성사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호찌민 전시회까지 찾아온 한 바이어 역시 같은 의견을 나타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화상으로 미팅을 하다가 얼굴을 마주 보고 공급자와 이야기를 하니 신뢰도가 높아져서 좋다”라고 말했다.

SECC 스마트 시티 행사장 모습 / 유영국 제공

SECC 스마트 시티 행사장 모습 / 유영국 제공

역동적으로 회복 중인 베트남 경제

베트남에서 사업을 이끌고 있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들도 속속 베트남에 들어와 신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5월 17일 신한은행의 진옥동 행장은 호찌민에서 디지털 사업 강화를 위한 ‘퓨처 뱅크 그룹’ 출범 선포식을 가졌다. 2019년 취임한 이후 ‘조직의 명운이 걸려 있다’며 끊임없이 외치는 ‘디지털 사업’의 일환이다. 해외 사업장 중 가장 크고 수익이 좋은 베트남에서 더 적극적으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시화율이 낮고 농어촌 지역에는 오프라인 은행 점포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베트남의 스마트폰과 무선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상위권이어서 빠른 사업 적용이 가능하다.

또한 신한은행과 신한카드는 베트남의 3대(TOP3) 온라인 쇼핑몰인 티키(Tiki) 지분 10%를 취득하고 티키와 고객데이터를 활용한 협력사업에 함께 나서기로 했다. 또한 베트남의 3대 온라인 쇼핑몰인 티키 지분을 신한은행이 7.44%, 신한카드가 2.56% 각각 취득하고 티키와 고객데이터를 활용한 협력사업에 함께 나서기로 했다. 인수합병 전문 미디어 딜스트리트아시아(DealstreetAsia)의 1월 보도에 따르면 애초 신한금융그룹은 미화 4000만달러 투자를 고려했지만, 9000만달러(약 1130억원)로 대폭 확대하고 지분 10%를 확보했다.

티키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이다. 팬데믹 기간 중인 2021년 11월 ‘시리즈 E’를 통해 2억5800만달러(약 3200억원)를 투자 유치했다. 신한은행이 이번에 추가로 투자한 금액까지 합하면 티키는 누적 4억5050만달러(약 5700억원)의 투자금을 확보했다. 신한은 금융기관으로서는 이례적이고 적극적으로 베트남에서 사업 방향을 넓혀가고 있다.

2022년 1~4월(누적 기준) 전년 동기 대비, 베트남의 대외교역액은 15.9%, 외국기업투자액은 14.9%, 국내기업투자액은 18.1%, 수산물수출액은 43.7% 성장했다. 베트남 하늘길이 본격적으로 열린 지난 5월과 2021년 5월을 비교하면 산업생산지수는 10.4%, 상품 및 서비스 소매판매지수는 22.6%, 외국인 방문자 수는 1184.1% 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시장이 침체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경제 전반이 암울하지만, 베트남은 역동적으로 회복 중이다. 베트남은 살아 있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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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준비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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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뒤척인다. 겨우내 마음 편히 잠을 자지 못해 머리에 스모그가 낀 듯 무겁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이상기온이 일상이 돼간다. 기후변화의 징후인 3월 중순 눈 쌓인 풍경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고 불길하다. 자연 시스템의 불안정성만큼이나 정치와 사법 시스템 또한 아슬아슬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둘러싼 사회적 긴장은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일만 년간 이어온 기후 안정성과 40여 년이 채 안 된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간으로는 비할 데 아니지만, 우리 삶에 당연히 주어지는 조건으로 여겨졌던 점은 흡사하다. 이번 겨울 기후환경이든 정치체제든,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기후위기와 정치위기라는 무관해 보이는 두 위기는 사실 그 원인 면에서도 맞닿아 있는데, 효율과 성과가 최우선시되는 과정에서 다른 중요한 가치는 간과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산업화하는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법을 배웠지만,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구조를 전환하는 데 게을렀고, 정치적 다양성과 세대 간의 이해를 구현하지 못했다. 우리는 경쟁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방식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