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베트남 현대사 고스란히 담은 음식 ‘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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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미국 뉴요커들의 인기 점심 메뉴인 바게트 샌드위치 반 미(Banh Mi),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먹어 유명해진 분 짜(Bun cha) 등 먹음직스러운 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단연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베트남 음식은 우리가 흔히 ‘베트남 쌀국수’라 부르는 퍼어(Pho)다. 젓가락질을 잘해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임에도 젓가락질 서툰 유럽과 북미인들 사이에서 소울 푸드로 자리 잡은 뜨끈한 베트남 쌀국수 퍼어에는 베트남 현대사가 한가득 담겨 있다.

베트남 퍼어 판매상 사진 / 유영국 제공

베트남 퍼어 판매상 사진 / 유영국 제공

쌀국수 퍼어의 기원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으나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던 1898년 북부 남딘(Nam Dinh) 지역에서 시작됐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남딘 지역에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큰 섬유 공장 건설이 시작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몰려든 수만명의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음식장사가 성황을 이뤘다. 당시 남딘 지역에서 먹던 쌀국수에는 각종 채소와 논에서 잡은 민물 게가 들어 있었다. 섬유 공장 건설을 위해 파견 온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쌀국수에 소고기를 넣어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농경 국가인 베트남은 소를 함부로 도축할 수 없었는데 프랑스인들이 먹는 방식을 따라 소 살코기를 고명으로 얹어 먹어보니 새로운 세상의 맛이었다. 소고기 퍼어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퍼어, 프랑스 식민지배의 산물

베트남 쌀국수 이름인 퍼어도 프랑스인들이 늘 먹던 소고기 채소 수프인 포 토 푀(pot au feu)라는 음식에서 파생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베트남 북부지역에 살고 있던 중국 광둥 지역 출신 화교들이 먹는 넓적한 쌀국수 ‘河粉(허펀·중국 광둥 지역 발음)’에서 파생돼 퍼어라고 표기했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베트남에 사는 화교들이 운영하는 쌀국수 식당에는 한자로 ‘河粉’이라고 표기돼 있다.

사실 베트남 사람들은 퍼어 명칭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별 관심이 없다. 식민지 시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든 뼛속 깊은 불신 국가 중국에서 유래됐든 상관없이 전 국민이 즐겨 먹는 음식이면 그것 역시 또 하나의 베트남이기 때문이다. 실용적이고 개방된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베트남 사람들의 자세가 여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베트남 퍼어 판매상 그림 / Maurice Salge의 Ganh pho rong o Ha Noi

베트남 퍼어 판매상 그림 / Maurice Salge의 Ganh pho rong o Ha Noi

퍼어의 대유행

현존하는 기록물 중 ‘퍼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06년 응웬 반 빈(Nguyen Van Vinh)이라는 사람이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이다. “파리에서 물건을 파는 소리를 들을 때면 아침마다 퍼어를 팔던 소리가 생생하다”며 고국을 향한 그리움의 매개체로 쌀국수를 언급했다. 향수에 젖은 한국인이 해외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퍼어가 이미 베트남 북부 사람들에게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솔푸드였던 모양이다.

1913년 프랑스인 화가 모리스 살게(Maurice Salge)가 하노이 길거리에서 쌀국수를 판매하는 행상의 모습을 그린 모습도 이채롭다. 쌀국수 식재료와 숯불이 담긴 통을 긴 막대에 연결해 어깨에 메고 다니는 행상들이 1920년대까지 활동을 하다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전문 쌀국수 식당을 하나둘 열기 시작하면서 퍼어는 말 그대로 베트남 국민 음식으로 등극하게 된다.

1954년 베트남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으로 분단된다. 공산정권을 피해 수많은 사람이 남쪽으로 피란을 가면서 북부의 국민 음식 퍼어가 본격적으로 남부에 대유행하는 계기가 된다. 남부에서 퍼어의 인기는 북부에 비해 뜨뜻미지근했는데 아이러니하게 국토 분단이 퍼어를 남부 곳곳으로 유행시킨 계기가 됐다. 마치 한국의 남북 분단과 6·25전쟁으로 피란민을 통해 평양냉면이 남한 곳곳에 퍼진 것과 꼭 같은 상황이 펼쳐지게 된 셈이다.

남북 베트남 쌀국수 차이를 설명한 그림 / giaitri.vn

남북 베트남 쌀국수 차이를 설명한 그림 / giaitri.vn

1650km의 남북이 길게 늘어진 나라인 베트남이다 보니 겨울이 있고 대륙의 기질이 있는 북부와 1년 내내 덥고 동남아 특유의 개방성이 있는 남부는 식생활이 판이하다. 남부로 내려온 쌀국수는 남쪽의 특성에 맞게 바뀌었다. 북부의 쌀국수는 맑은 고깃국물에 간단하게 파와 고기를 얹어 내오는 반면 식재료가 풍부한 남부는 뼈를 잔뜩 우려낸 기름진 국물에 숙주와 향이 진한 고수 등 다양한 향채를 넣어 먹는다. 한국 사람들이 라면을 끓일 때 수프만 넣고 끓이는 전통파와 치즈와 달걀 등 다양한 식재료를 넣어 먹는 개혁파의 논쟁을 들먹이듯 북부 사람과 남부 사람들은 서로의 방식이 더 맛있다고 자존심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베트남 사람들은 각 지역의 다양성을 널리 수용한다.

1975년 미국이 전쟁에서 패하고 베트남이 통일되자 보트피플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베트남을 도망 나왔다. 약 100만명이 미국으로, 호주로, 프랑스로 작은 보트나 뗏목을 타고 피란민이 됐다. 이들이 세계 곳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시작한 일이 쌀국수 식당이다. 워낙 부지런하고 성실한 베트남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일했다. 북미, 유럽 곳곳에 쌀국수 식당이 늘어났고, 현지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베트남 남부에서 다양한 식재료를 개방적으로 사용하던 사람들답게 미국, 프랑스 환경에 맞게 다양한 식재료를 추가하며 현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지역 언론에는 자신의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 쌀국수 식당이 어디인지를 다루는 특집 기사를 낸다.

퍼어는 베트남 현대사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음식이다. 프랑스 식민지 영향으로 탄생한 퍼어는 베트남 북부지역에서만 유행하던 음식이었다. 그후 전쟁으로 남부지역까지 확산했다가 전쟁이 끝나자 전 세계로 퍼졌다. 이제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인기 메뉴로 자리 잡은 모습이 세계 곳곳에서 맹활약하는 베트남인들의 머지않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음식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사람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까 말이다.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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