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알못’이었던 그가 ‘식물광’이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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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가드너

<크레이지 가드너>는 식물을 키우는 일에 관한 만화다. 화분을 선물 받는 족족 죽게 만드는 ‘식알못’이 200개의 다채로운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식물에 미친’ 사람이 돼버린 후의 이야기다. 다양한 몸을 가진 식물은 서로 다른 생육환경을 요구한다. 까다로운 조건에 맞춰 식물을 키우는 기쁨과 고난, 어렵게 길어 올린 노하우를 마일로 작가 특유의 유머가 담긴 화법으로 전달한다. 그렇다 보니 식물을 돌보는 독자들이 작가와 주고받는 다양한 고민 상담이 쏟아졌고, 그 이야기들이 본편만큼이나 흥미를 자아냈다.

마일로 작가의 <크레이지 가드너> 한 장면 / DAUM 웹툰

마일로 작가의 <크레이지 가드너> 한 장면 / DAUM 웹툰

누구라도 <크레이지 가드너>의 대열에 동참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힘이 있는 이 만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식물을 의인화한 표현이다. 식물이 상황에 따라 인간의 표정과 몸으로 표현되면서 독자는 식물을 보다 ‘친근하게’ 느끼게 된다. 인간은 무심결에 ‘얼굴 없는’ 식물을 동물보다 열등한 지위에 놓는다. ‘식물인간’이나 ‘식물국회’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식물을 보는 방식과 태도다. 식물을 그 자리에 결박된 채 아무런 일조차 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긴다.

<크레이지 가드너>에 등장하는 ‘식물인간’들의 캐리커처가 큰 웃음을 자아내는 건 그저 귀엽고 재미나게 표현돼서만은 아니다. 식물에 대해 으레 그러할 것이라 기대하는 모습과 전혀 다르게 묘사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간화된 신체를 통해 박력 있는 존재감을 드러낸 식물들의 ‘말’은 아주 제한적으로만 그려진다. ‘말이 없음’을 식물에 매혹된 여러 이유 중 하나로 말하고 있어서일까? 그렇다고 작가가 식물이 말하는 존재임을 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식물생태학자가 쓴 책 <향모를 땋으며>에는 대화하는 식물 이야기가 나온다. 식물에 관한 최근 연구는 식물들이 ‘화학물질’이라는 ‘말’을 통해 서로 대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령 사탕단풍나무는 곤충의 공격을 받으면 특정 화학물질을 방출해 이웃 나무들에 위험을 알린다.

<향모를 땋으며>의 저자는 “식물을 나와 상호적 책임으로 연결된 스승이자 동반자로 여기는 경험의 자연사를 벗어나 과학의 영역”에 들어섰을 때의 당혹감을 이렇게 말한다.

“과학자들의 질문은 ‘당신은 누구인가요?’가 아니라 ‘저건 뭐지?’다. 아무도 식물에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나요?’라고 묻지 않았다.”

인간중심 세계에서 식물은 “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환원”됐다. 가드닝(정원을 가꾸고 돌봄)의 관점에서 식물은 말이 없어야 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인간의 관점에서 ‘아름다운’ 특정한 무늬를 만들어내면 입이 떡 벌어지는 고가에 팔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무늬를 만들어내기 위해 예민하게 조절된 빛과 온도는 식물에 최적화된 환경이 아닐 수 있다. 이것은 식물을 돌보는 일이라기보다는 기예의 세계에 가깝다.

경계란 강력하고도 연약한 것이므로 식물의 세계와 만난 이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될 개연성이 높다. 무언가를 돌본다는 건 일정 정도 그 대상의 말에 귀 기울이는 행위를 포함한다. 중요한 것은 이미 내가 말을 듣고 있음을 깨닫는 일이다. 그가 말하는 존재임을, 그렇기에 이미 들은 만큼 듣지 못한 말이 있음을 인식하기, 화분의 식물이 내 세계 너머를 상상하는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 기후위기의 시대는 인간에게 비인간 존재의 말을 듣는 능력을 갖추길 촉구하고 있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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