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이것은 사직인가 해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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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2019년 1월 제과·제빵업체 I사에 제빵 생산관리 책임자로 입사했습니다. 대표 B는 A가 본사에 반품 문의를 했다고 거짓말을 한 점을 질책했습니다. 2019년 5월 B는 A에게 “이렇게 거짓말하면 같이 일 못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A는 B에게 “그럼 내가 그만두면 되겠네요”라고 했습니다. A는 그러면서 제빵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B는 제빵실로 와서 다시 A에게 “나간다고 그러지 않았나요. 일을 왜 하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A는 그 뒤 집으로 갔고,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A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내가 그만두면 되겠네요?”

법원은 “설령 A가 B의 첫 번째 질책에 대해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라는 의사를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를 떠나 제빵실로 가서 근무하고 있었다면, 앞서 한 발언이 진정으로 사직의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B는 다시 A에게 일하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는 A가 짐을 챙겨 I사를 떠난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B의 주장과 같이 A가 자발적으로 사직 의사를 표시했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A의 의사에 반해 I사 측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따라 A와 근로계약 관계가 종료됐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해고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았으므로 절차적으로 위법한 해고라고 보았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0구합54647, 대법원까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즉 (1)‘해고’이고, (2)‘부당’해고라고 본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내가 그만두면 되겠네”라는 근로자의 말이 사직 의사표시인가 아닌가 여부가 쟁점입니다. 노동위원회에서는 그 말 한마디를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그 말 한마디뿐만 아니라 ▲근로자가 그후에도 자리를 옮겨 계속 일을 하려고 했던 사정(근로자의 의사), ▲사용자가 “나간다고 하지 않았냐. 왜 일을 하고 있느냐”라고 한 점(일방적 퇴사 요구), ▲근로자가 퇴사 직후 전화로 “그런 이유로 해고하냐”라는 질문을 던지자 사용자가 “해고가 아니다”라고 하지 않았던 점(사용자의 의사), “거짓말이 결정적 이유가 됐다”고 해고 사유만 설명한 점(구두 해고 통보는 무효입니다) 등을 종합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근로관계 종료에서는 말 한마디가 중요합니다. 교과서적으로는 ①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그만두세요” 하면 해고, ②근로자가 “네. 알겠습니다”라고 받아들이면 권고사직, ③근로자가 먼저 “이번 달까지 출근하고 그만두겠다”고 하면 사직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②와 ③은 그 효과가 거의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일은 그렇게 정석대로만 돌아가지 않습니다. 위 사건처럼 “내가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라는 말은 묻는 말인지 아니면 답하는 말인지 애매하기조차 합니다(물음표는 필자가 붙였습니다). 그 해석을 위해 대법원까지 가는 사건도 있습니다.

“내가 그만둘 거니까요”

C차장 아, 네. 지금 제가 양 반장님이랑 통화하다 보니까 그만두겠다고 말씀하셨다고 그래서, 그게 본인 의사가 맞는지 좀 확인하려고 전화 드렸거든요.

D근로자 아, 네. 그만둘 거예요. 아이.

C차장 아, 왜냐하면….

D근로자 그거. 왜 이리 검사하는데 저녁에서 오고, 간호사들이 뭐라 그러잖아요. 지금.

C차장 아. 죄송한데 왜냐하면 저희가 회사에서 그만두게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이 그만둔다는 걸 제가 정확히 알아야 제가 그다음 조치를 하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거거든요. 본인의 의사로 그냥 그만둔다는 거죠. 그러면.

D근로자 아. 내가 그만둘 거니까요.

C차장 네. 네. 알겠습니다. 네. 네. 하여튼 쾌차하시고요. 네. 네. 빨리 나으셔서 좋은 직장 다니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중앙노동위원회는 “회사 C차장이 전화로 사직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자 D근로자가 “아, 네 그만둘 거예요.”, “아, 내가 그만둘 거니까요”라고 2회에 걸쳐 사직의 의사를 표시했다. 또한 이 사건 사용자는 이 사건 근로자의 사직의사를 신뢰해 대체인력을 채용했다”라고 하면서 근로자가 구두로 한 ‘사직’을 인정했고, 해고로 보지 않았습니다(중앙2018부해695).

일반적으로 ①근로관계 종료 분쟁 이전에 근로자의 사직의사 표시가 있었던 경우, ②동료직원과의 작별인사나 송별회, ③물품 정리 및 반납, ④출근거부, ⑤부당해고였다면 당연히 했을 법한 항의나 이의제기 등이 없는 경우, ⑥퇴직금·전별금 등 수령, ⑦타 직장 취업, ⑧해고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한 사람이 권한이 있는지 여부 등을 종합해 이러한 사실이 좀더 있을수록 사직의 의사표시가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직이냐 해고냐

사장 (회의 석상에서 갑자기 근로자에게) 공사 업무를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이 사장은 행사를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다 약속을 하고 다니는데 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모르고서야 어떻게 믿고 같이 일하겠어요?

근로자 (큰소리로) 제가 뭘 모른다는 겁니까? 사장이라는 타이틀만 갖고 있으면 답니까? 그렇게 무소불위로 해도 됩니까? 직장이 없어서 여기 와 있는 줄 압니까? 도와달라고 해서 다른 데 마다하고 여기 와서 어려울 때 도와주고 했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믿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같이 일할 수 없습니다.

사장 관둬! 관둬! 싫으면 그만두면 될 거 아냐. 이런 상황에선 나도 같이할 수 없어. 나가라고! 나가라고!

근로자 어려울 때 온 힘을 다해 도와주곤 했는데….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는 줄 알아(근로자는 그대로 귀가해 버리고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사직이 아니라 해고라고 보았습니다. 근로자가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화를 내며 큰소리로 대응한 것과 무단결근한 데 대한 징계사유는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질책에 돌발적으로 그와 같이 대응한 점, 근로자가 제3자인 임원을 통해 중재를 요청하고 서신으로 해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던 점, 근로자로서는 출근을 계속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회사가 아무런 소명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사직의사 표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해 근로자를 사직 처리한 점, 근로자가 그동안 성실하게 근무한 점 등을 고려할 때 부당해고라고 봤습니다(대법원 2005두8474의 하급심).

사직이냐 해고냐, 결국은 이기는 쪽이 ‘Winner takes all’입니다. 지는 쪽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노동법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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