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채용비리는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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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삼계탕 가게에서 한국고속철도 기장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하고 계열사 회사의 경력직 기장 채용절차에 지원 예정인 사람이 회사의 노사업무 담당자 A와 만났습니다. 지원자는 “나를 꼭 뽑아달라”는 말과 함께 노사담당자에게 500만원을 건넸습니다. A는 그렇게 12명의 채용과 관련해 6630만원을 받았습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돈을 건넨 사람 중에는 경력직 기장 B도 있었는데, ‘B가 2016년 3월 초 A에게 딸이 지원했고 잘 부탁한다고 했더니, A가 사람들을 만나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고 했다. 이에 자신이 A에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해 2016년 3월 18일 200만원을 입금했고, A가 술을 한잔 더 마셔야 한다고 해 2016년 3월 23일 230만원을 추가로 입금했다’고 인정됐습니다.

청탁을 한 B는 해고됐고, 해고를 다투는 재판에서 법원은 “채용비리 행위가 참가인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큼에도 사전에 적발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이 사건 비위행위와 같은 방식의 채용 청탁은 회사 소속의 다수 임직원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행위에 대해 엄중히 대처함으로써 채용비리에 관한 경각심을 제고해 재발을 방지하고 회사의 직장 질서 및 대외적 신용을 회복할 필요도 크다”면서 정당한 해고라고 보았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0누68426).

‘부모의 마음이니까’

2012년 KT 구조조정과 관련해 국회 야당에서는 이석채 당시 KT회장의 증인채택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여당 의원인 김성태 전 의원이 증인채택에 반대했습니다. 검찰은 증인채택을 막아준 대가로 KT가 딸을 정규직으로 채용해줬다고 봐 기소했습니다. 지원서를 직접 내지 않았고 일부 시험은 아예 보지 않았다는 사실, KT회장이 인사담당자에게 “무조건 입사시키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1심은 채용 특혜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김 전 의원의 청탁이나 이 전 회장의 부정채용 지시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항소심(2심) 법원은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국정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국감의 증인채택 여부에 관한 권한이 있는 국회의원이 딸의 취업기회를 뇌물로 수수하는 범행은 그 자체로 매우 부정한 일이다. 다만 이 사건 범행은 약 8년 전의 것으로 당시에는 자녀의 부정채용만으로도 뇌물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은 2022년 2월 17일에 유죄 판결을 확정했습니다(대법원 2020도16829).

자녀 취업기회가 뇌물인지 아닌지 쟁점이 된 사건에서, 2012년 당시에는 자녀 취업이 뇌물죄로 처벌될지 몰랐다고 인정한 판결이 인상적입니다. 자녀의 취업기회를 위해 기장 A는 돈을 줬고, 김 전 의원은 ‘힘을 써준’ 것으로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소위 유력자의 자제들과 관련해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채용 기회제공과 청탁과 비리가 있었는지 알 수도 없고, 알아도 그대로 묵인해왔다는 겁니다. ‘부모의 마음’이라는 이유로 널리 용인해왔던 듯합니다.

2015년도에는 광주은행 신입행원 채용과정에서 인사·채용 부문 총괄 임원이 2차 면접에 들어가 자신의 딸에게 최고점을 줬습니다. 해당 지원자는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가 광주은행에 근무한다고 적었고, 인사담당자는 이 자소서에 만점을 주기도 했습니다. 부모, 자녀, 형제자매의 학력·직업·재산정보를 물어볼 수 없다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조항을 만든 게 불과 3년 전인 2019년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C하나은행장(현 부회장)은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의 아들이 하나은행 공채에 지원했다는 말을 듣고 그 내용을 인사부에 전달하면서 서류전형 이후 합숙면접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합격시키라는 지시를 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공채를 앞두고 남녀 비율을 4 대 1로 하라고 지시했다는 혐의도 있습니다. 검찰은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채용비리와 법의 아귀

이러한 사건에서 서울서부지방법원(1심)은 2022년 3월 11일 “C은행장이 지원자들에 대한 추천 의사를 인사부에 전달한 사실은 있다”면서도 “따로 합격권에 들지 못한 이들이 합격할 수 있게 어떤 표현을 했다거나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했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도 “하나은행의 남녀 차별적 채용이 적어도 10년 이상 관행적으로 지속됐다고 보인다. 은행장들의 의사결정과 무관하게 시행돼 피고인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은행장이 ‘특정 지원자를 추천하니 잘 살펴보라’는 지시를 인사담당자에게 반복했다면 “인사업무 담당자에게 불합격자가 합격할 수 있게 하라는 표현을 했다거나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한 법원의 판단이 조금 이상해보이기는 합니다.

한편 서울고등법원은 2021년 12월 22일 신입사원 채용과정에서 점수를 조작해 외부로부터 청탁을 받거나 소속 임직원 자녀 등 특정 지원자에게 특혜를 준 혐의로 기소된 D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0노269). 유죄를 선고한 1심을 파기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채용비리만을 제재하는 명확한 법이 없어 아귀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 무죄판결을 한 법원조차 “고용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층 중심의 ‘지원자’를 피해자로 하고, ‘공정한 채용절차’ 자체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부정채용죄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업무방해죄로 채용비리를 다스리는 게 현실이다”고 했습니다.

정리하면, 채용비리는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으나 회장이 인사담당자를 속이거나(위계), 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압력을 넣어야(위력) 처벌되고, 사장이 인사담당자와 짜고 채용비리에 가담한 정도라면 사장을 처벌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직 채용비리죄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실무자들만 처벌을 받는 사례가 많습니다. 위 신한은행 사건에서 인사담당자는 같은 재판에서 유죄를 받았습니다.

2021년 1월 19일 류호정 의원 등 10명의 국회의원이 채용비리처벌특별법을 발의했습니다. ①부정채용을 하거나 요구·약속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그 이익을 몰수하며, ②채용과정에서의 채용비리가 확인되고 그 채용비리가 채용에 영향을 미친 경우 구직자 채용을 취소할 수 있으며, ③채용비리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은 단계를 합격한 것으로 보아 그다음 단계의 응시기회를 부여하며, 구인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놓고 사기업 내부 채용에 국가가 과도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만, “현행법은 보호법익이 맞지 않고 일반적인 법 감정에 어긋나는 문제가 있다”는 일선 재판장들의 탄식도 경청할 만합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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