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사내 고충처리위원회에 상사의 성추행 피해 신고를 했습니다. 상사는 회사의 실세였습니다. 회사는 갑자기 한 달간 A에게 업무를 거의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다른 근로자들에게는 하지 않는 근태 감시를 A에게만 실시하고, 꼭 해야 할 외부 취재업무도 금지했습니다. 회사는 그렇게 A에게 업무상 불이익을 주다가, A의 의사에 반해 가해자와 같은 층에 있는 부서로 이동시켰습니다. 회사는 A를 기존 입사 때 선발한 직군인 ‘기자’와 무관한 ‘연구원’으로 바꿔 전보했습니다. 급여가 낮아졌고 보너스도 깎였습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신고에 대처하는 회사의 자세 ‘남녀고용평등법’이 있습니다. 1987년에 제정한 이 법에는 ‘누구든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해당 사업주에게 신고할 수 있습니다. 회사는 피해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이 경우 사업주는 피해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됩니다. 법은 불리한 처우의 여러가지 예시를 들고 있습니다. 파면, 해임, 해고, 징계, 정직, 감봉, 강등, 승진 제한, 직무 미부여, 직무 재배치, 성과평가 또는 동료평가 등에서 차별, 임금 차별지급, 교육훈련 기회의 제한, 집단 따돌림·폭행·폭언 방치 등 피해근로자의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우를 상당히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피해근로자 A의 의사에 반해 직무 미부여와 재배치를 했던 점이 확인됐습니다. 회사는 어떻게 됐을까요? 회사와 대표이사는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근로기준법 위반(임금체불)으로 기소됐습니다. 회사는 그와 별개로 성희롱 행위자를 징계하라는 법원의 명령도 위반해 과태료 부과 결정을 두 번이나 받기도 했습니다. 끝내 회사는 해결방안을 내놓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왜 공교롭게 남자만 합격했을까 가스안전공사 P사장은 평소 남성 직원을 선호하는 자신의 업무 스타일을 고수했습니다. 상반기 직원채용 과정에서 지원자들의 면접점수를 임의로 변경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인사담당자가 면접위원들에게 이미 작성한 면접 평가표 순위를 바꿔 재작성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응시자 31명의 면접점수가 조작됐습니다. 그런 다음 평가표를 인사위원회에 상정했습니다. 인사위원회 위원들은 면접점수가 진정한 것으로 오인·착각한 상태에서 심의했습니다. 기존 불합격자였던 13명이 합격하고, 합격 순위에 들었던 여성 응시자 7명이 불합격됐습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여성을 남성과 차별해 최종합격자로 선정하지 않았다”라고 봐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가스안전공사 인사위원회 위원들의 직원채용에 관한 심의업무는 독립된 업무로서 업무방해죄에서의 업무에 해당한다. 사장이 위계로써 채용업무를 방해했다”라고 봐서 업무방해죄를 인정했습니다(2018도12691). 아직도 심심치 않게 “남자만 뽑자”, “이번에는 여자만 뽑자”라는 등의 말을 듣곤 합니다. 실제 사례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P사장은 징역 4년이 확정됐습니다(다른 뇌물사건도 있어서 특별히 형이 가중됐습니다).
채용에 문제가 없더라도 직급차별을 해서는 안 됩니다. 지역 택시조합에서 남성을 6급으로, 여성들을 7급으로 각 채용한 사건에서, 법원은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다만 남성 근로자 E가 여성 근로자들과 달리 외근업무를 맡게 됐고, 법인에 채용되기 이전부터 조합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면서 조합원들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해왔으며, 여성 근로자들과 달리 별도의 수습기간 없이 조합업무에 투입된 점 등에 비춰 그 직급을 올려 채용한 것이 합리적 이유는 없다고 하더라도, 보는 시각에 따라 ‘어느 정도는’ 차별의 근거가 일부 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부산지법 2007노4889). ‘어느 정도는’이라는 표현이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동일노동을 수행했다면 동일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에어컨을 생산하는 G회사의 같은 생산라인에서 남녀 근로자가 동일노동을 수행하고 있는데, 여성 근로자들에게 남성 근로자들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한 경우는 어떨까요? 이러한 행위도 1심 법원에서 차별로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법원은 남녀 근로자가 같은 생산라인에서 동일노동을 수행한 것이어서 직무가치의 동일성이 인정되므로 근로자들한테 임금을 지급할 때 남녀를 차별했음이 인정된다고 봤습니다(광주지법 2001고단2938 등: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고용상 성차별 성희롱 관련 새 제도 1987년에 제정한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성희롱’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습니다. ‘성차별’ 역시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규정만 있었습니다. 아무런 제재 제도가 없었습니다. 이 법은 사회 분위기에 맞게 그때그때 보완됐고, 제정한 지 약 35년이 지난 2022년 5월 19일 성희롱, 고용상 성차별에 대해 강력한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노동위원회를 통한 시정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26~30조).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서 ①고용상 성차별을 당한 경우, ②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부적절한 대처를 하는 경우(사업주가 성희롱 피해근로자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거나 오히려 불리한 처우를 한 경우)에는 13개 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고용상 성차별’은 앞서 사례로 든 ▲모집·채용 ▲임금 ▲임금 외의 금품 ▲교육·배치·승진 ▲정년·퇴직·해고 등의 차별을 말합니다.
기존에는 고용상 성차별을 해도 사업주에게 벌칙만 있었고, 실제로 달라지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이 제도는 차별받은 근로자가 차별적 처우 등의 중지, 근로조건의 개선, 적절한 배상명령(손해액의 3배 이내) 등의 시정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피해근로자를 실질적으로 구제하기 위함입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확정된 노동위원회의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사업주는 1억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특히 세가지 포인트. ①‘모든’ 사업장에 적용됩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봐준다는 특례조항, 유예조항 같은 게 없습니다(부당해고 구제제도·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고, 직장내 괴롭힘 구제제도는 아직 제도 자체가 없습니다). ②고용상 성차별 시정명령 위반에 대한 ‘1억원’의 과태료(최대)도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부당해고 구제명령 위반은 최대 3000만원입니다). ③고용상 성차별인지 아닌지 입증책임은 ‘사업주’한테 있습니다. 불분명할 때 사업주에게 불리한 판결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고용상 성차별과 성희롱 등의 피해를 입은 근로자들은 어느 기관을 찾아가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잘 알기 어려웠습니다. 실효적인 해결을 기대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새롭게 신설된 제도는 근로자들의 이런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결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사업주 입장에서도 고용상의 성차별 문제를 미리 점검해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만들어가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한용현 법률사무소 해내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