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의학에도 기적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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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소아 뇌사자 수술이 있었다. 장기를 적출하는 수술을 시작하기 전에 기증자를 위해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보통 한국장기기증원에서 준비한 문구로 하지만, 그날따라 뇌사자의 어머니께서 추도사를 써오셨다. 채 만 7세가 되지도 못한 아이였고, 태어나면서부터 아프게 태어나 아마도 평생 대부분의 시간을 병상에 있었던 아이였다. 아이는 7세임에도 몸무게가 겨우 13㎏밖에 되지 않았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소아 뇌사자 어머니의 작별인사 “OO아, 너는 태양 같은 아이였다. 네가 있어 행복했단다. 엄마는 너를 너무 사랑한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엄마 꼭 안아줘.”

수술실에 있던 모든 의료진의 마음이 울컥해 수술을 시작하기가 힘들었다. 반드시 수술에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해졌다.

조심스럽게 췌장과 신장을 적출했고, 이식하기 좋도록 혈관을 다듬었다. 그동안 동료 외과 교수가 수혜자의 수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환자가 매우 비만하고, 혈관이 좋지 않아 수술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어찌어찌 오른쪽 다리로 가는 동맥과 정맥을 박리해 우선 이식될 췌장의 혈관과 연결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식한 췌장의 혈류 공급 상태가 영 시원치 않았다. 아무래도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 쪽이 문제인 것 같아 다시 동맥을 열어 확인해보았으나, 동맥과 동맥을 연결한 문합부가 좁아진 소견은 없었다. 그때가 밤 10시경이었다. 급하게 혈관외과 교수를 호출했다. 혈관외과 교수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수혜자 혈관의 석회화가 심한데, 동맥문합을 하기 위해 잠시 혈류 공급을 차단하면서 혈관이 막힌 것 같다고 했다. 해당 동맥의 혈관성형술을 시행하고, 혈류를 개선했다. 이식한 췌장이 혈류 공급이 좋지 않은 채로 몸속에 너무 오랜 시간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까봐 이 췌장은 포기하고 그 자리에 아이의 신장 2개를 한꺼번에 붙이기로 했다. 다행히 신장이식은 문제없이 잘됐고, 이식한 신장에 혈류를 공급하자마자 소변도 요관을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수술을 중단하고, 수술실 밖을 나와 환자 가족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원래 신장과 췌장을 같이 이식해야 하지만, 췌장 이식이 환자에게 너무 큰 부담이 될 것 같아 신장만 이식하겠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환자의 가족은 상황을 잘 이해해줬고, 수술은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그때가 새벽 3시쯤이었다.

이식된 신장이 이상하다 환자는 마취에서 깨어나 중환자실로 나왔다. 소변이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수술장에서는 잘 나오던 소변이 마취가 깨어도 잘 안 나오는 게 이상했지만, 탈수 등 몸의 수분이 부족해 그럴 수도 있기 때문에 수액을 처방하면서 기다렸다. 여전히 소변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영상의학과 교수를 불렀다. 아침 일찍 초음파로 이식한 신장을 살펴보니, 신장에 혈액공급이 되고 있지 않았다. 신장이식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나와 있고, 그동안의 경험을 돌이켜봐도 이런 경우는 다시 수술하더라도 이식된 신장을 살릴 가능성이 없다. 혈액을 모두 제거한 신장을 장기 보존액에 넣어 아이스박스에 보존하면 길게는 24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이식하더라도 신장의 기능을 회복할 확률이 매우 높으나, 몸속에서 혈관이 막혀 1시간 이상 혈액공급이 되지 않았다면, 그 신장은 거의 기능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외과 의사에게는 이러한 순간이 가장 힘들다. 밤새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수술했는데, 보람은 전혀 없고, 환자에게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소식을 전해야만 하는 그때. 환자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이식한 신장을 다시 떼는 수술을 하자고 말씀을 드리니, 환자는 울음을 터뜨리며 나를 원망한다. 왜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냐고,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수술을 안 받을 걸 그랬다고. 묵묵히 듣고 있는 수밖에….

기적이 일어났다 마취과 선생이 그래도 수술실을 빨리 열어줘 오전 10시경에 재수술을 할 수 있었다. 정말 생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던 일이 벌어졌다. 다시 개복해 이식한 신장을 살펴보니, 혈액이 가지 않아 색이 좋지 않던 신장에 다시 혈액이 공급되면서 예쁜 빨간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서둘러 수술장 내에서 초음파로 다시 신장 내부의 혈관을 살펴보니, 약간의 허혈성 손상 소견은 보였으나, 혈액공급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무엇보다 소변줄을 통해 소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환자분의 배를 닫으면서 환자분의 장과 지방조직에 의해 이식한 신장의 위치가 바뀌는 과정에서 잠시 혈관이 눌렸거나 꼬인 모양이었다. 어린아이의 신장이었기에 약간만 틀어져도 혈액공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에는 신장의 위치를 잘 고정하고 움직이지 않도록 환자분의 장으로 잘 감쌌다. 조심스럽게 배를 닫고, 다시 중환자실로 나왔다. 여전히 소변은 잘 나왔다. 이식한 신장에서 소변이 잘 만들어져 흘러나오는 게 신장을 이식하는 외과 의사한테는 가장 큰 기쁨이다. 신장이 허혈성 손상을 입었고, 환자분에게 수액이 너무 많이 공급됐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기계를 적용해 투석을 시행했다. 주말이 지나고, 투석기계를 제거하고도 이식한 신장에서는 소변이 잘 나왔다. 신장기능을 나타내는 혈액수치도 며칠에 걸쳐 서서히 상승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이후로는 지속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수백건의 신장이식을 시행했고, 이런저런 합병증을 자주 경험했지만, 저렇게 장시간 혈액이 공급되지 않았는데도 신장을 다시 살릴 수 있었던 경험은 처음이다. 굳이 의학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초음파나 CT 등에서는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듯 보였으나 미약한 혈류가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특히 어린아이의 신장이라 허혈성 스트레스를 더 잘 견딘 것 같기도 하다.

기적을 믿지는 않는다. 아이 어머니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들은 그 직후부터 며칠간 일어났던 일들과 상황이 지나고 보니 꿈결 같고, 누군가의 의도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게 내가 선택한 숙명이다. 의학 영역에 기적이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이 기적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앞에서 겪었던 일을 다시 경험해야 한다면, 나는 기적을 원하지 않는다고 외치고 싶다.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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