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인도의 정치적 흐름이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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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9일, 한국의 대통령선거는 유례없는 표차로 접전을 벌이며 야당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대통령선거로 온 국민의 눈이 집중된 기간에 의회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에서도 국가의 정치적 향방과 모디 정부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5개주(State)의 주의회 선거를 치렀습니다. 결과는 5개주 가운데 4개주에서 여당인 BJP가 압승했습니다.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인도 여성 유권자들 / Zee News

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인도 여성 유권자들 / Zee News

전통적으로 콩그레스(Congress· Indian National Congress·국민회의당)의 표밭이었던 펀자브주에서 현재 델리 주총리인 케즈리왈이 당대표를 맡고 있는 암아드미(AAP·보통사람당)가 압승하면서 콩그레스를 대체할 수 있는 정당으로 당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굳혔습니다.

이번 선거결과는 단순히 여당이 압승하며 2024년 다가올 총선에서 모디 총리의 재선을 긍정적으로 기대해볼 수 있다는 의미 이외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주요한 점 2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유권자들이 더 이상 종교, 계층(카스트), 지역으로 구분 지으며 분열의 틈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전략에 동요하지 않으면서 복지를 비롯한 다른 분야에서 효과적 대책을 제시하는 정당에 표를 주기 시작했다는 점과 다른 하나는 여성 유권자들의 영향력이 도드라지게 작용했다는 점입니다.

콩그레스의 몰락

인도의 선거는 하루 만에 치르는 한국과 달리, 투표의 보안성 등을 고려해 여러 차수에 걸쳐 약 한달간 진행됩니다. 2019년 전자식 투표 방식을 전면 도입한 덕분에 결과는 하루 만에 발표합니다. 이번 주의회 선거는 우타르프라데시주, 펀자브주, 우타라칸드주, 마니푸르주, 고아주 등 5개주에서 2월 10일부터 3월 7일까지 28일 동안 7차례(phase)에 걸쳐 실시했고, 약 1억8000만명의 유권자가 참여했습니다. 선거를 여러 차수에 걸쳐 진행하기 때문에 부정투표 및 중복투표를 방지하기 위해 투표자의 손톱 위에 지워지지 않는 잉크를 바릅니다. 5개주 중 우타르프라데시주는 인도 전체 28개주 중에서 가장 인구수가 많고, 총 403석의 의석수가 배정돼 있습니다. 따라서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선거결과는 뉴델리로 상징되는 중앙정부 권력의 열쇠를 누가 갖느냐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번 우타르프라데시주 선거에서는 여당인 BJP(Bharatiya Janata Party·인도국민당) 소속의 힌두 승려 출신 요기 아디티야나스가 주총리로 재선되느냐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집권 기간에 힌두 여성이 무슬림 남성과 결혼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기 위한 ‘강제개종금지법’을 제정하고, 종교 간의 갈등을 암묵적으로 묵인하며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난을 지속적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요기 주총리의 재선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지만, 불가촉천민(인도의 최하층 신분)으로 알려진 달리트(Dalit)를 대표하는 BSP당과 친무슬림 정당인 사마즈와디당(SP·Samajwadi Party)에서 새로운 계층과 성별을 흡수할 만한 정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BJP를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를 끌어들이지 못한 탓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으로 미뤄 인도에서도 새로운 정치적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투표 완료자에게 지워지지 않는 잉크를 바르는 모습 / Outloook India

투표 완료자에게 지워지지 않는 잉크를 바르는 모습 / Outloook India

여성 유권자의 힘

1962년에 인도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성별에 따른 투표율은 남성 63.31%, 여성 46.64%였지만, 2019년 여성 유권자의 투표율은 20.55%p 증가한 반면, 남성은 3.71%p 증가에 그쳤습니다. 2019년을 기점으로 여성의 투표율이 남성의 투표율을 앞섰다는 점이 주목됩니다.

이번 선거가 있었던 5개주 역시 공통적으로 여성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증가했습니다. 유권자 성비 지표인 SRV(남성 유권자 1000명당 여성 유권자 수) 수치가 1960년대 715에서 2000년대 들어 883으로 크게 증가했다는 점을 참고하면, 향후 여성 유권자들의 표심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선거결과가 달라지리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2019년부터 여성 유권자표가 선거 승리의 중요한 요소가 되리란 점을 파악한 정당들은 저마다 여성을 향해 다양한 공약을 내세웠지만, 그중에서도 BJP가 유독 여성 유권자들의 표심을 많이 얻은 요인은 무엇일까요?

가장 주요한 요소는 다양한 정부 지원정책을 통해 여성들에게 경제적 자립 또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기반과 혜택을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아와스 요자나(Awas Yojana)라는 정부 주택공급 정책에서는 여성 단독으로 자신 명의의 주택 소유가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인도 역사상 특히 농촌지역과 저소득층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정책이었습니다. 각종 정부 보조금이 본인 명의 계좌로 입금되면서 혜택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는 점도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 외에 아딸 펜션 요자나(60세 이상에 지급되는 국민연금제도), 무드라 요자나(대출·송금 등의 금융서비스), 잔 단 요자나(복지제도), 지봔 조티 요자나(보험제도) 등과 같은 지원정책에서 여성 수혜자의 비율이 56.84%, 68%, 53.3%, 40%이었습니다. 즉 현 정부가 추진하는 다양한 지원정책을 통해 여성 유권자들이 시스템과 구조 측면에서 혜택을 체감할 수 있게 한 점이 마음을 산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스와치 바라트(새마을 운동과 같은 ‘깨끗한 나라 만들기’ 캠페인)를 2014년부터 실시하면서 2019년까지 우타르프라데시 지역에 전국의 10%에 해당하는 1710만개의 화장실을 설치했는데, 이 역시 여성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한 표면상으로 국방, 군사 부문에 여성 장교를 임명하는 등 여성을 사회의 요직에 더 많이 앉힌 점과 여성 소상공인들을 위한 지원정책 등 여성의 경제활동 기반 구축을 돕는 다양한 정부 정책도 한몫했습니다.

투표 완료를 의미하는 잉크 표시 / News 18

투표 완료를 의미하는 잉크 표시 / News 18

‘선거’라는 사건을 공유한 한국과 인도

이번 인도의 선거에서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가 여당 BJP의 승리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보면서 젠더 갈등을 부추긴 한국의 선거결과가 떠올랐습니다. ‘강간의 나라’라는 오명이 여전하고 낮은 여성 인권 의식을 대표하는 나라처럼 여겨지는 인도에서 여성의 힘으로 여당이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 묘하게 다가옵니다.

더 자세히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인도는 이번 선거를 통해 분명 진화하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국제 역학관계에서 변화한 인도의 위상, 발전해가는 인도 국민의 정치의식과 국민의식을 지켜보며 인도를 더 이상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문 인도로 보지 말고, 진화하는 인도로 재인식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새 정부에서는 한국과 인도의 관계가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더 발전해가기를 기대합니다.

<한유진 스타라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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