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에 거주하는 사람이 애플워치를 차고 나이키 운동복을 입고 조깅을 합니다. 바디숍 제품으로 샤워를 하고 한국식 스킨케어 제품으로 피부를 가꾸며, 환경보호와 건강을 위해 구리로 된 물병에 담긴 물을 마십니다. 또 다양한 건강기능 식품을 챙겨 먹고, 크루아상에 커피 한잔을 곁들이며 아이폰으로 통화를 합니다.

인도 현지에서 생산한 왕라면 / 왕라면 페이스북 갈무리
요즘 인도에서 트렌디한 이미지를 가상으로 조합해 그려본 단면입니다. 어디까지나 메트로폴리탄의 고소득자에 국한한 가상 인물이기에 현실과 좀 동떨어질 수 있지만 아주 없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되는 인도 영화 <우리 이혼합니다(Decoupled)>의 몇가지 장면을 예로 들어볼 수도 있습니다. 영화 배경은 뉴델리 근교의 구르가온입니다. 인도가 맞는지 어리둥절할 정도로 고층 빌딩과 고급 아파트촌이 들어서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사무실을 비롯해 ‘포춘’지가 선정한 500개 기업 중 250개 기업의 지사가 있어서 북부 인도에서 가장 트렌디한 지역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판매 지표의 큰 축이 된 온라인 플랫폼들
주인공들은 유명 작가와 벤처 투자자 커플인데, 구르가온의 고급 빌라촌에 살고 있습니다.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장면을 보면 아이폰을 사용하고, 운동 후 마시는 영양 가득 셰이크부터, 트위터와 왓츠앱으로 소통하며 지구의 날을 맞이해 빌라촌 전체가 소등하는 이벤트도 나옵니다. 이런 영화의 설정은 현재 인도 사회에서 선망하는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지금 인도에서 인기 있는 상품들에 대한 추정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러나 결코 모든 사람이 영화에 나온 상품들을 소비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다양성과 폭넓은 범위가 존재하고, 존중되는 나라, 인도이니까요.
코로나19로 혼란스러웠던 2020년을 보내고, 2021년 초 또다시 2차 파동을 겪으며 인도는 온라인 구매 문화가 광범위하게 정착됐습니다. 단순히 온라인 구매율이 늘었다는 점이 아닌, 300%대 가까운 성장률을 보인 이커머스 산업이 이제 겨우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점이 주목됩니다. 이커머스 산업이 성장하다 보니 이제 잘 팔리는 상품들을 가늠해볼 수 있는 방법은 주요 온라인 플랫폼인 아마존과 플립카트, 쇼피파이, 나이카 등의 판매실적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판매되는 다양한 종류의 라면 / 한유진 제공
물론 온라인 판매는 전체 소비재 판매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판매량과 선호도는 주요 구매층이 다르다는 점에서 오프라인에서 소비하는 제품과는 다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도시지역에 사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할 때 2021년 주요 온라인 플랫폼들의 인기 상품은 의류, 휴대전화, 책과 문구류, 전자제품, 신발, 보석 및 장신구, 화장품 및 퍼스널케어 제품, 장난감 및 게임상품, 홈인테리어, 영유아 제품, 홈 피트니스 제품 등이 꼽혔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활성화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의류제품 판매가 매우 활성화됐고, 재택근무 증가 및 타인과의 단절을 피하려 SNS 사용이 늘어나면서 더 좋은 카메라와 배터리 성능을 가진 휴대전화 수요가 늘어났습니다. 이와 더불어 아마존의 에코, 구글 홈 등과 같은 스마트 가전 디바이스 수요가 높았고, 건강을 생각해 운동하는 사람이 늘면서 운동화 수요도 늘어났습니다. 샌들 위주에서 국제적 트렌드에 맞는 부츠나 힐과 같은 신발 수요가 늘어난 점도 특이점입니다.
집에 오래 머무르며 온라인 검색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신과 집을 꾸미려는 욕구가 늘어난 것 또한 주목할 만한 소비 트렌드입니다. 보석 구매가 늘어나고 스킨케어 및 마스크 시트와 같은 화장품 수요 증가를 비롯해 실내인테리어 관련 제품 소비가 늘어났습니다.
이를 대표하듯, 플립카트와 쇼피파이 등이 선정한 20개 인기 판매 제품은 필오프 마스크팩, 네일 제품, 홈트용 운동밴드, 휴대용 물병, 홈데코 이불, 요가·필라테스 매트, 자전거, 직소퍼즐, 주방가구와 식탁, 러그, 주방 도마, 노트북 커버 스킨, 마스크, 에센셜 오일 및 향초, 티·커피, 홈가든·식물, 전자제품, 애완동물 용품, 의료용품(마스크·소독제·PPE키트 등), 홈베이킹 도구 등이었습니다.

인도 구르가온에 있는 애완용품 전문 매장 / We are guraon 홈페이지
온라인 소비에서 빠질 수 없는 ‘식품’
식품에서 눈에 띈 점은 즉석조리식품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품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는 점입니다. 건강을 중시하고, 식품 성분에 대해 더 많이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저설탕·무설탕 식품과 섬유질과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 지방을 줄인 식품, 천연 및 화학제품 무첨가, 글루텐 프리, (심지어 유제품을 선호하는 나라임에도) 락토 프리 제품이 나오는 등 인도의 식품 분야 트렌드는 급변하고 있습니다.
즉석식품 및 냉동식품 부분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데, 온라인 음식배달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28%, 온라인 식료품 배달은 53% 성장률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인도는 자국의 음식 문화 자체가 워낙 다양하기에 팬데믹 이전에는 인도 음식과 인도화된 중국 음식, 피자와 햄버거가 주류였다면, 이제는 베이커리와 수제 맥주부터 태국, 베트남, 멕시코, 한국, 일본 음식부터 퓨전 요리까지 식문화도 다양해졌습니다.
즉석식품 분야에서는 한국 라면의 선전이 눈에 띕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마트에서 한국 라면은 신라면 정도만 볼 수 있었고, 나머지는 일본, 태국에서 수입된 라면이 전부였습니다. 그 외의 라면은 우리가 아는 국물 라면이 아닌 네슬레가 인도인 입맛에 맞게 만든 볶음면과 비빔면의 중간쯤 되는 매기(Maggi)가 대세였습니다.
이런 라면시장에 한국의 진라면이 ‘채식’ 인증 제품으로 진출한 이후, K팝과 K드라마의 선풍적인 인기와 더불어 삼양의 불닭볶음면 시리즈와 맛있는 라면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고, 인도 현지에서 생산하는 왕라면도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우리가 소비재 부문에서 인도시장에 진출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13억이라는 인구수보다는 연령, 성별, 지역, 소득수준 등과 같은 요소를 고려한 타깃 설정입니다. 인도의 일부 계층에 국한됐던 글로벌 트렌드 선호도가 훨씬 넓고 다양한 층으로 확산했습니다. 한국의 맛은 유지하되 인도인에 맞게 적절한 양으로 중량을 줄인 왕라면의 생산·출시는 시장 특성이 각기 다른 소비재 분야에 진출할 때 마주치는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의미 있는 사례입니다.
<한유진 스타라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