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커뮤니티-이 사회가 안녕한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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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초, 나는 세월호 유가족이 진행자로 나선 팟캐스트의 작가로 활동했다. 다양한 재난과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이 세상의 슬픔과 고통을 줄일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이었다. 4회 때 지금은 고인이 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를 모셨다. 당시는 ‘촛불광장’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새로 선출한 지 8개월쯤 된 무렵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는데 그런 분위기가 유가족들에게 꼭 좋지만은 않았다.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워졌다. 투쟁은 잠시 소강 국면에 들어갔다.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답답함이 퍼져갔다. 그때 방송에서 배은심 여사가 이런 조언을 건넸다.

다드래기 작가의 <안녕 커뮤니티> 한 장면 / 창비

다드래기 작가의 <안녕 커뮤니티> 한 장면 / 창비

“대통령 하나 바뀌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돌아가는 건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이 안 바뀌면 안 되는 거라는 걸 저희는 여러 번 봤습니다.”

1987년부터 무려 7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걸 보아온 민주화 운동가의 말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느냐가 정치의 전부가 아니라는 지적을 담고 있다. 어떤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느냐 보다 중요한 건 시민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전망과 대안을 상상하고 새길을 여는 것이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낙차 크게 진동하지 말고 꾸준히 걸어 나가자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은 대통령선거 투표일 전이다. 거대 양당을 대표하는 두 후보가 박빙의 대결을 벌이고 있어 누가 대통령이 될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글이 독자에게 가닿을 즈음이면 당선인이 결정됐을 테다. 새 대통령에게 권할 만화를 고르다가 두가지 계기로 생각을 바꿨다. 하나는 배은심 여사의 말이었고, 또 하나는 ‘다른 세계로 길을 내는 활동가 모임’의 성명이다. 800여명의 사회운동가가 지금 필요한 것은 ‘정권교체’나 ‘정치교체’가 아니라 ‘체제전환’임을 역설했다. 그렇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대통령이 아니라 서로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새로운 길은 늘 시민들이 만들어왔다.

더 나은 현재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다드래기 작가의 <안녕 커뮤니티>를 함께 읽고 싶다. 이 만화는 재개발 이슈로 들끓는 ‘문안동’이라는 가상의, 그러나 매우 현실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한 노인의 고독사를 시작으로 매일 서로의 안녕을 챙기는 노인들의 이야기는 실은 이 사회가 안녕한지를 묻는 물음이다. ‘스케일 작은 만화가’라고 자칭하는 다드래기 작가는 사회가 주목하지 않은 삶을 드러내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현실에서 만나는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관찰하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피부색 하나도 똑같이 칠하지 않는다. 작가에 따르면 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다.

각 인물의 삶을 디테일하게 드러내면서 자연스레 결혼이주여성, 성소수자, 청년 등 소수자들의 이야기로 넓어진다. 우리의 삶은 연결돼 있다. 이 연결성을 깨닫는다면, 함부로 타인의 삶을 혐오하고 차별할 수 없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야 내 권리가 더욱 보장된다고 여기는 사회는 결국 다 함께 조금씩 부서질 뿐임을 <안녕 커뮤니티>는 솜씨 좋게 드러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타자화된 존재들의 안녕을 묻는 일임을.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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