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목적지까지 정확하게, 약물전달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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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먹기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도 약과 영양제를 먹는데 바쁘다 보면 까먹기 일쑤여서 일주일에 한 번만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아이들 예방접종을 하러 소아과에 가면 주삿바늘이 들어갈 때 우는 모습이 부모 입장에서 안타깝기도 하다. 이런 점을 인지한 제약회사들은 복약 및 투약의 불편한 점들을 개선하고자 개별 약제를 합치는 복합제, 서방형 약제, 경피형 패치 등의 방법을 개발했다. 이렇듯 투약 간격을 늘리거나 인체의 고통을 줄이는 비침습적인 방법 등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혈관 장벽들로 인해 약물이 도달하기 힘든 특정 신체 부위, 효과는 있지만 독성으로 인해 투약이 자유롭지 못한 약물 등 아직 해결 못 한 문제가 많이 남아 있다. 최근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나노입자 기술, DNA 기술을 활용한 약물전달시스템(DDS·Drug Delivery System) 등을 개발 중이다. 향후 제약시장에 혁명을 몰고 올 약물전달시스템이란 과연 무엇일까.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독점한 시장

전달경로에 따라 약물을 분류하면 경구형, 주사, 피부에 바르거나 붙이는 경피제, 흡입제, 점막투여(안약등) 제제 등으로 나눈다. 과거에는 약물의 효과에 중점을 두고 약물의 투약 방법을 개발했다면 최근의 트렌드는 비침습적이고 편리한 방법으로 약물을 전달하는 시스템의 규모가 급성장 중이다. 최신 약물전달시스템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보면 J&J(존슨앤드존슨), 노바티스, 로슈 등 글로벌 회사들이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선점하고 있는 항암제, 항바이러스제 등 시장규모가 큰 약제들을 약물전달시스템을 활용해 신약으로 다시 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제약회사들이 신약시장을 독식하는 건 통상적으로 신약을 개발하기까지 매우 긴 시간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약회사들의 연구개발(R&D) 라인에는 큰 비용이 드는 모험적인 신약개발도 있지만, 이미 개발한 약제에 적합한 약물전달기술을 통해 효능을 보완한 개량신약 개발도 활발하다. 즉 약물전달시스템 산업은 기존에 출시된 약들의 결함을 보완하면서 새롭게 성장해가는 영역이라 하겠다. 약물전달시스템 기술로 기존 약제의 효과가 더 좋아지고 부작용도 감소한다면 제약회사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 최근의 4차 산업기술 혁명 흐름에 발맞춰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어느 정도 기술력이 높아진 한국도 여러 스타트업이 약물전달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최근의 DDS 기술은 유명 걸그룹의 노래 제목처럼 ‘다음 단계(Next level)’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비침습성과 편의성을 뛰어넘어 IT 기술을 접목했는데 몇가지 예를 보면 다음의 표와 같다.

웨이퍼(Wafer) 기술 반도체 웨이퍼같이 약물이 들어 있는 젤 형태의 원판을 체내에 이식하여 일정한 약물이 방출되도록 한다. 악성 뇌종양중 하나인 교모세포종 치료제로 잘 알려져 있으며 최근 웨이퍼의 단단한 구조를 변형한 그물망(Mesh) 형태의 약물도 연구되었다.
마이크로칩(Microchips) 웨이퍼와는 달리 작은 바이오칩을 몸에 삽입하는데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고 미세한 용량도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결합체(Conjugate) 방법 최근 출시된 압타머 기술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약물을 단백질 구조물에 부착시켜 특정 병변조직에서만 작용하게 하거나, 작용시간을 늘리거나, 조직 침투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기존에 투약이 불가능했던 생체장벽들도 이러한 결합기술을 활용하면 과거와 비교하여 현격한 효과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미세구(Microsphere) 고분자성 공모양의 저장체를 만들고 그 안에 약물을 저장하여 서서히 방출하는 기술이다.
삼투막 디바이스(Osmotic device) 삼투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용기 끝에 구멍이 있고 삼투압에 의해 물이 용기 내부로 들어오게 되면 약물이 지속적으로 방출되는 형태이다. 경구약제들도 삼투압을 이용한 서방형 제제들이 있으며 피하에 이식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미세바늘 패치(Microneedle patch) 피부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바늘을 부착하여 통증없이 투약하는 방법
리포좀(Liposome) 약의 친수성, 소수성 성질을 고려하여 친수성/소수성 그룹을 모두 가지는 리포좀 안에 소수성 약물을 담아 전달하는 시스템


스마트 약물전달체 기술도 개발 중

전문적인 용어라 생소할 수 있지만, 반도체 웨이퍼 기술처럼 이미 다른 과학영역에서 개발된 기술이 의학 분야에서도 융합 응용되고 있다. 기술적인 문제로 인체에는 적용하기 힘들던 원천 기술을 점차 인체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높였다. 약물전달시스템의 최근 동향을 보면 위치 추적이 가능하고, 방출 패턴까지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약물전달체 기술도 개발 중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맞춤형 초정밀 약물 투약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코로나19도 약물전달시스템에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최근 오미크론으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정부는 먹는 약제를 허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개발된 주사약제의 경우 입원하거나 병원에 매일 내원해 투약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경구약의 효과는 주사약보다는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만약 DDS를 통해 주사제와 비슷한 효과의 경구약제가 나온다면 코로나19 시대를 끝낼 수도 있는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다.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이전에 코로나19 백신 개발의 최대 화두는 mRNA 전달기술이다. 인체에서 쉽게 분해돼버리는 mRNA를 안전하게 세포까지 전달하는 기술이 핵심기술이기 때문에 제약회사마다 고유의 mRNA 전달시스템을 이용해 백신을 개발했다. mRNA 시스템 전에는 백신을 만든다고 하면 최소 수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했으나 인공지능(AI)을 이용하고, 약물전달시스템 기술도 이용해 획기적으로 시간을 단축했다(긴급승인도 한몫했다).

어찌 됐든 약물전달시스템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존의 난치병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다. 약물전달시스템 기술을 통해 기존에 독성, 혈류장벽, 불안정성 등으로 투약에 제한이 있던 많은 약제의 비약적인 효과 상승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많은 제품이 상용화되길 기대해본다.

<이용주 펜타힐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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