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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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4일 나온 김금숙의 <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20년 미국에서 ‘만화계의 오스카상’이라 부르는 ‘하비상(최고의 국제도서 부문)’을 수상하는 등 나라 바깥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이 호평받은 이유는 만화미학적 완성도와 함께 폭력과 피해자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크다. 가령 작가는 이옥선이 ‘위안소’에서 겪은 첫 강간을 3쪽에 걸친 18칸의 어둠으로 채운다. 피해자가 당한 낱낱의 행위보다 피해자의 마음으로 눈을 돌리게 하려는 시도다.

김금숙 작가의 <풀> 표지 / 보리

김금숙 작가의 <풀> 표지 / 보리

또한 ‘일본군에 의한 인권유린’으로만 피해자의 삶을 서사화하는 방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위안소’ 전과 후의 이옥선의 삶에 드리운 층층의 구조적 폭력을 섬세히 짚어낸다. 이옥선은 식민지 조선에서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났다. 감당할 설움이 많고 복잡했다. 조선인이라서만은 아니었다. 가난해서, 여자라서 울었다.

피해자들에게 ‘고향’은 그저 그립고 아름답기만 한 공간이 아니었다. 일제가 패망하고도 이옥선은 오랫동안 중국에 남아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조국은 성폭력을 겪은 여성을 위로하기보다 부끄러워했다. 간신히 한국에 돌아온 이옥선의 가슴에 새로운 상처를 새겼다. 자신을 자꾸만 주저앉히는 세상에서 이옥선은 삶의 강한 의지로 일어섰다.

<풀>은 그렇게 일어나 평화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이옥선을 상징한다. 여성폭력의 피해자를 ‘꺾인 꽃’으로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외침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김금숙이 ‘나눔의집’에서 이옥선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나눔의집’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거주시설이다. 이옥선을 포함해 현재 4명의 피해자가 있는 이곳이 2020년 3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직원들의 공익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대한 후원금을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쓰지 않고 피해자들을 함부로 대했다는 게 핵심이었다.

공익제보 후 실시한 민관합동조사에 따르면, 88억여원의 후원금 중 피해자에게 직접 쓴 건 2억원 남짓이었다. 공익제보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기울어질 정도로 낡은 침대를 그대로 쓰게 하거나 씹지 못해 부드러운 음식을 드셔야 하는 분들께 일반식을 제공할 정도로 서비스의 질이 충분히 좋지 못했다고 한다. 소중한 역사적 기록인 피해자들의 물품도 함부로 방치하거나 훼손했다. 시설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시민단체들은 나눔의집의 후원금 유용과 허술한 운영 배경에는 이곳을 규모가 더 큰 노인요양시설로 확장하려는 법인의 의도가 있다고 지적한다.

‘나눔의집’ 문제는 현재 답보상태다. 세간의 관심이 식으면서 법인은 툭하면 소송을 걸어대는 방식으로 제보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제보자들이 더 괴로운 건 할머니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을 뿐더러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제보자들은 문제를 드러내기만 하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것이 패착이었다고 말한다. 한국사회는 ‘항일’이나 ‘반일’의 관점과 태도로 ‘위안부’ 문제를 대했지, 피해자의 ‘삶’을 주목하지 않았다고 한탄한다. 공익제보자 중 한명인 학예사 김대월이 나눔의집에 들어와 연 첫 전시의 제목이 <할머니의 내일>이다. 피해자든 운동가든, 한사람의 단면만 보려 하지 말고 두터운 삶을 가진 한 존재로 오롯이 봐달라는 뜻으로 그는 할머니 한사람 한사람의 일상을 소중히 기록해 전시했다. 그러한 시선이 필요할 때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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