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가치는 똑같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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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했다. 국가적 재난 앞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일반인 승객 희생자도 있었지만, 피워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은 어린 학생들이 국민의 마음을 더 침통하게 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방송으로 의사이자 경제학자인 김현철 교수가 한 교회에서 강연하는 걸 듣게 됐다. 그는 에티오피아의 극단적인 영아·소아 사망률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에티오피아에서는 매년 5세 이하의 아이들을 태운 2대의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수학여행을 갈 수 있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에티오피아에서는 수많은 아이가 병마로 죽어가지만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은 없다고 했다.

외과 레지던트를 하던 2000년대 후반에는 암수술을 하는 70대 환자들이 별로 없었다. 일흔이 넘도록 충분히 살았으니 수술을 받으면서 더 사는 게 염치없다고 느낀 탓인지, 아니면 암수술 같은 큰 수술을 견디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해 그랬는지 모르지만 대체로 수술을 꺼리는 분위기였다. 외과의사들도 암 주변의 모든 림프절을 교과서에서 지시하는 것처럼 절제하기보다는 암조직만 확실히 제거한 후 회복이 잘되도록 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 수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에는 여든이 넘어도 수술 후 환자분의 여명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술을 한다. 얼마 전에는 필자도 십이지장암을 앓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자주 발생하는 장내 출혈로 힘들어하는 89세 어르신에게 ‘췌·십이지장 절제술’이라는 외과 수술 중 가장 큰 수술의 하나를 시행한 적이 있다. 어르신이 평소에 워낙 건강해 그런지 수술 후 젊은 사람보다 입원 기간이 약간 길었지만, 잘 회복해 일상생활을 잘하고 있다.

어르신들의 암수술

수술이 충분히 가능한데도 “아내와 상의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70대 초반의 어르신도 있었다. 다음 외래진료에 아내와 함께 왔는데, 아내분이 말하기를 “남편이 대장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췌장에 새로 생긴 암수술은 하기 어렵겠다고 했다. 병원 사회사업실도 있으니 거기에 도움을 받아서라도 완치 가능성을 노리고 수술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내가 나가고 환자분이 다시 진료실에 들어와 “아내가 뭐라고 하던가요?”라고 묻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얼마 전에 뉴스를 보니,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유명한 로펌 변호사의 폐 절제 생검 수술을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당시 흉부외과의사는 절제 생검을 하는 것보다 쐐기 절제술을 하는 것이 환자에게 더 낫겠다고 판단하고는 그렇게 했는데 수술 전 동의를 받지 않아 11억원 손해 배상 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2개의 폐 중 한쪽 전체를 없앤 것도 아니고, 또 쐐기 절제술과 절제 생검의 차이가 실질적으로는 크지 않을 텐데 배상금 액수가 너무 커 놀랐다. 한쪽 폐의 일부를 절제했더라도 변호사 생업을 이어가는 데는 별문제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1억원 이상의 배상금이 나오는 사례는 경험상 드물다. 월 3000만원을 버는 유명 법무법인의 변호사라는 점이 배상금 액수 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목숨의 가치와 효율성

사람 목숨의 가치는 모두 똑같다고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결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라가 가난하면 그 나라 국민 생명의 가치도 낮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면 그 가치도 올라가는 것 같다. 선진국이 되면 될수록 한 사람의 생명 가치가 더 올라가고, 또 그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부가적인 비용 지출도 당연히 늘어난다. 그 선진국에서도 빈부격차와 지위고하에 따라 목숨의 가치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 또한 현실이다.

2022년 1월 3일 한전 하청업체 직원이던 38세 예비신랑 김다운씨가 전신주에서 작업하다가 2만2900v의 전기에 감전된 상태로 몇십분이나 공중에 매달려 있다가 구조됐다. 사고 19일 만에 안타깝게도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작업장은 대부분의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하청업체로 내려가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비용의 폭이 줄어든 것이 안전규정 무시의 가장 큰 원인이었으리라.

장기이식을 하는 의사로서, 뇌사자의 장기 적출을 위해 사설 구급차를 타는 일이 잦다. 그날도 우리 병원에서 계약한 사설 구급차 회사의 구급차를 타고 장기 적출을 위해 출동했다. 필자는 회사 사장인 운전자 옆좌석에 앉고 도와주는 선생님들은 장기를 담을 아이스박스를 들고 뒤에 탔다. 구급차는 구급차답게 신호를 무시하고는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고속도로에 설치한 속도 측정 카메라가 보이면 속도를 줄였다.

“구급차인데 그냥 가도 되지 않나요?”

운전자가 대답했다.

“어휴. 우선 걸리고 나서 이의제기를 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너무 복잡해요. 사무실 직원도 한명밖에 없는데 그것까지 처리하라고는 못 하죠. 그냥 요령껏 안 걸리게 조심해서 가는 게 제일 낫습니다.”

대답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응급환자의 전원 문의를 받고 이내 또 다른 기사들에게 전화를 건다.

“네. 알겠습니다. 곧 기사를 보내겠습니다.”

“어, OO야! A병원 로비에서 기다리라고 했으니까, 그분 B병원까지 모셔다드려라. 갈 때 응급구조사님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아. 그래 수고해라.”

옆자리에 앉아 이를 지켜보며 적잖이 겁이 났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의료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의료현장은 그나마 사정이 더 나은 건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한사람의 생명 가치가 효율보다 더 중요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1인당 국민소득이 지금보다 훨씬 증가하면 우리의 인식도 바뀔 수 있을까?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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