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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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방치’는 무언의 폭력이다

“자식 낳고 키워 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들 한다. 대체로 맞는 말일 테지만, 모두에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스웨덴 작가 오사 게렌발의 만화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이하 <그들의 등>)에서 제니가 자식을 낳고 키우며 경험한 건 아주 달랐다.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반추하게 된 것은 맞지만, 부모 마음을 알게 되지는 않았다. 제니가 알고 깨달은 마음은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만화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의 한 장면 / 우리나비

만화 <그들의 등 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의 한 장면 / 우리나비

‘아기가 태어나자 사람들이 조언이랍시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제니가 들었던 ‘터무니없는 소리’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부모님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해보지 그래요?” 육아로 잠을 못 자던 제니가 어린이건강검진센터에서 들은 말이다. 제니는 생각했다. ‘지금 뭐라는 거야? 부모님한테 뭘 어쩐다고?’

제니 친구들은 친정어머니가 애를 봐줘 실컷 늦잠을 잤다느니, 아버지가 수술을 해야 해서 걱정이라느니, 돌아가신 엄마가 매일매일 그립다느니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제니는 또 생각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기가 막혀서 원!’ 의아할 것이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다지만, 부모님과 저 정도 유대를 맺는 게 스웨덴에선 터무니없고 기가 막힐 일인가? 제니는 대체 왜 저러지? 제니 처지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는 제니가 이상하다.

한번은 제니가 경험을 담아 쓴 연극 대본을 낭독한 적이 있었다. 주로 부모님과의 경험을 담은 대본 낭독이 끝나고 관객들은 평했다. “인물들의 대사가 비현실적이다”, “실제로 그런 엄마는 없다” 등. 제니는 절망한다. 다 사실인데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그가 부모와의 관계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도.

‘정서적 방치’로 인한 트라우마. 아주 나중에서야 밝혀지는, 제니의 아픔에 붙은 이름이다.

<그들의 등>에는 매번 등 돌리는 부모의 모습이 등장한다. 건조하고 깔끔한 성격에 타인의 눈을 의식하되 개인주의적인 부모는 제니를 정서적으로 방치했다. 제니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기는커녕 부모가 자신을 귀찮아하고 있다고만 느꼈다. 성인이 되고 스스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고서 제니는 확실히 알았다. 자신의 부모가 다를 뿐만 아니라 틀렸고, 그들이 준 상처가 자신 안에 누적돼 있다는 것을. 이를 안 제니는 <그들의 등> 끝에서 어린 제니들을 구출하고 보듬어 안는다.

오사 게렌발은 자기의 이야기를 자신을 닮은 인물을 경유해 그리는 작가다. 살아남기 위한, 자신을 유지하고 자신으로서 버티기 위한 투쟁으로서의 만화 그리기다. <그들의 등>은 부모가 준 상처와 싸워 그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투쟁이다. 놀랍게도, 이 특수한 투쟁을 꽤 많은 독자가 보편적이고 구체적으로 받아들인다. 어느 스웨덴 사람의 이야기가 때로 ‘나’의 이야기가 되고, 또 내가 곁에 서고 싶은 어느 ‘싸우는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서로를 구하고 보듬는다. ‘비현실적’이라던, ‘실제가 아니’라던 이야기가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일에 숨은 인간성의 비밀이 나는 늘 궁금하다.

낭독회 관객들을 떠올릴 때마다 확실히 느끼는 게 있다. 비밀이 작품이나 작가 쪽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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