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의 섬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언젠가부터 대한민국이 1위를 놓치지 않는 분야가 몇개 있다. 초고속 인터넷 품질과 속도, 정보통신 활용도나 조선산업 경쟁력, 선박 건조량 등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한국은 정상에 있었다. 디지털로 온 세상이 전환되면서 관련된 많은 산업과 서비스가 세계 1위에 올라 있기도 하다. 불명예스러운 1위도 있다. 그중 가장 외면하고 싶은 건 높은 자살률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은 OECD 평균의 2배가 훨씬 넘는 수치로 하루에 무려 36.1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다 같이 풀어야 할 커다란 숙제다.

만화 <아일랜드 1>의 표지 / 학산문화사

만화 <아일랜드 1>의 표지 / 학산문화사

한국과 더불어 일본도 자살률이 굉장히 높은 국가다. 지속적인 정부의 노력으로 지난 10년간 그 빈도를 줄이고 있는데, 10대와 20대의 자살률은 오히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사회문제는 대중문화에 그대로 반영된다. 고전이 된 소설 <인간 실격>을 지나 이에 영향을 받은 개그만화 <안녕 절망선생>이 떠오르고, 드라마 <언내추럴>과 <주휴 4일로 부탁합니다> 같은 작품에도 안타까운 사연이 등장한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설정은 만화 <아일랜드>이다. 원제는 <자살도(自殺島)>지만 한국어판에서는 제목을 순화했다.

상습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자살도’라 부르는 무인도에 격리한다는 설정은 무척 위험한 아이디어다. 이는 자살을 국가나 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해결방안이 공동체 안으로 그들을 끌어안는 대신 철저히 외면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충분하다.

<아일랜드>는 일본의 현실에 대해 회의하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자살도에 도착한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 이곳에서는 모두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과거에 부자였거나, 권력이 있었거나 하더라도 이 섬에서는 어떠한 어드밴티지도 없다. 오히려 충분히 대접받지 못했던 기술을 가진 이들이 더욱 활약한다. 정해진 규칙이 없는 이곳에서 자살을 결심했던 사람들은 반대로 살기 위해 노력을 시작한다. 집단을 이루고 낚시를 하거나 채집을 하며 작은 사회를 형성한다. 그러면서 잃어버렸던 삶의 의욕을 조금씩 되찾는다. 물론 모든 게 순조롭고 평화롭지만은 않다. 인류의 역사를 축소해놓은 것처럼 그들은 편을 나눠 싸우고 지배하며 또한 복종한다.

섬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등장인물들은 계획을 세워 생활한다. 즉흥적으로 배를 채우는 대신 농사를 지어 미래를 준비한다. 서로의 역할을 나누고, 누군가는 가족이 된다.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단결하기도 한다. 자살도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죽음에 다가갔던 인물들은 자신의 역할이 있기에 삶을 지속할 동기를 얻는다. 편리하고 안전한 문명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아일랜드>는 비록 폭력적인 설정에서 출발했지만, 다행히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소폭 감소했다. 10대와 20대 여성의 자살은 오히려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젊은 여성에게 가하는 사회적 압박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한 대선후보는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자살시도자를 모두 무인도로 보내면 자살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처럼 여성가족부를 없애면 젠더 갈등이 사라진다고 믿는 것일까. 눈앞에 보이지 않도록 치우는 것이 문제해결 방법은 아닐 텐데….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만화로 본 세상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