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의 죽지 않는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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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왜 영원한 삶을 포기했나

내가 속한 합정만화연구학회는 서울 합정 지역을 중심으로 한 만화연구자들의 모임이다. 몇년 전부터 모여 만화와 관련한 여러 프로젝트를 해오다가 지난해부터는 ‘합정만화상’을 만들었다. 한해 동안 연재/출간된 작품 가운데 유의미했던 것들을 꼽고, 추천사를 작성해 블로그에 게시한다. 상금을 주는 것도, 부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합정만화상’은 한해 동안 우리가 빚진 작품들을 기억하고 소소하게 감사를 표하는 방식이다. 2021년 합정만화상으로는 국내 작품 5편과 국외 작품 1편을 선정했다. 국외 작품으로 꼽힌 작품은 <은하의 죽지 않는 아이들에게>(시카와 유키 지음·김동욱 옮김·문학동네)다.

만화 <은하의 죽지 않는 아이들에게>의 표지 / 문학동네

만화 <은하의 죽지 않는 아이들에게>의 표지 / 문학동네

<은하의 죽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그 제목처럼 죽지 않는 아이들인 마키와 파이가 주인공이다. 지구는 오염돼 사람이 더는 살 수 없는 별이 됐고, 떠날 수 있는 이들은 아주 오래전에 지구를 떠나버렸다. 동식물을 제외하고 지구에 남아 있는 건 마키, 파이 그리고 수수께끼의 ‘엄마’ 3명뿐이다. 이들은 불사의 존재다. 고래에 잡아먹혀도, 하이에나에게 물어뜯겨도 죽지 않는다. 뜯겨나간 신체는 다시 재생되고, 끊어진 목숨은 그저 잠깐 잠든 것처럼 다시 시작된다. 영원한 시간 속에 성장을 멈춘 마키와 파이는 죽을 수 있는 생명을 동경하며, 산더미 같은 문화를 남겨놓고 떠난 인간을 궁금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키와 파이 앞에 수수께끼의 우주선이 불시착한다. 피를 흘리며 우주선 바깥으로 겨우 빠져나온 사람은 느닷없이 마키와 파이 앞에서 아이를 낳더니 숨을 거둔다. 마키와 파이는 그토록 궁금해했던 인간을 품에 안고, 엄마 몰래 아기를 기르기로 한다. 죽지 않는 아이들이 양육하는 유한한 인간 아기 ‘미라’와의 이야기는, 모두 예견하다시피 죽음과 맞닿아 있다. 미라는 스스로 시계를 발견하고, 황금 나선을 그린다. 미라는 천재가 아니라 오랫동안 지구에 살아왔던 인류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미 오염될 대로 오염된 지구에서 미라는 오래 살지 못한다. 고작해야 10년이 미라의 수명이다. 병약해지던 미라는 결국 어머니의 무덤 근처에서 이른 죽음을 맞이한다. 미라에게는 불사를 선택할 선택지가 있었지만, 미라는 오로지 인간으로서 죽기를 선택한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그는 단호하게 “나는 인간으로서 살고 인간으로서 죽을 것”이라 말한다. 이 단호함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던 마키와 파이마저 변화시킨다. 여태 멈춰진 시간을 살았던 아이들이 스스로 시곗바늘을 돌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이들은 영원의 세계를 떠나 죽음으로, 동시에 미지와 생명의 미래로 떠날 채비를 한다.

<은하의 죽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작품 전반에 걸쳐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고 질문한다. 놀랍게도 이에 대한 나름의 답 역시 작품 안에 있다. 언제나 별을 보던 파이가 다시 별 사이로 뛰어드는 장면이 그 대답이다. 그 앞에 예견된 건 죽음이고, 그 사이엔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데도 파이는 노래하며 미지의 세계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우리가 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겠을 때, 마키의 설렌 표정을 떠올리면 좋겠다. 모든 인간은 미지에서 왔으며, 미지의 미래로 간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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