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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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은 이름 따위 없이 살 운명이었다. 적당한 크기로 자란 어느 날 도살장에서 고기가 될 수많은 돼지 중 하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작게 태어났다. 젖조차 물지 못하니 평소라면 저절로 폐기될 하자품에 불과했겠지만, 때마침 농장주의 아들이 생일을 맞았다. 농장주는 동물의 여러 쓸모 중 또 하나를 떠올렸다. 어린 돼지는 ‘조지의 친구 데이빗’이 됐다.

네이버웹툰 <데이빗>(d몬 지음) 장면 / 네이버웹툰

네이버웹툰 <데이빗>(d몬 지음) 장면 / 네이버웹툰

얼마 뒤 이 동물의 운명은 또다시 크게 바뀐다. 보통의 돼지에게 허락되지 않은 특별한 능력이 생겨난 것이다. 데이빗이 인간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데이빗은 앵무새처럼 그저 몇마디 흉내만 낸 게 아니었다. 인간의 말로 그의 지성과 품위를 드러냈다. 성장해 대도시로 나간 데이빗은 단숨에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말하는 돼지’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던 인간들은 이내 둘로 갈라졌다. 데이빗이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쪽과 데이빗은 절대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쪽으로 나눠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맞섰다. 그 사이에서 수난을 겪으며 데이빗은 스스로 답을 찾아나간다.

인간다움을 지닌 존재는 누구나 인간이라는 생각은 아름답다. 그 안의 지극한 인간중심성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d몬 작가는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인간사회를 탁월하게 풍자한다. 독자는 전율하며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묻게 된다. 그러나 끝내는 데이빗조차 그 경계는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에만 골몰할 때, 그 경계를 아무리 확장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사람답지 못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만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학살에 앞서 ‘비인간화’가 일어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죽음의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품위를 빼앗을 때 그들을 함부로 죽인다. 수용소 안의 열악한 대우, 강제노동 등은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지우는 장치로 기능한다. 레비의 통찰로부터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학살은 비인간 존재를 비인간 존재로 대한 결과다. 비인간적인 일은 우리가 인간성을 잃어서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데이빗>(d몬 지음) 푸른숲 책 표지 / 푸른숲

<데이빗>(d몬 지음) 푸른숲 책 표지 / 푸른숲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에서 이것은 ‘종차별주의’라는 말로 고쳐쓸 수 있다. 우리는 인간 이외의 모든 존재를 인간의 필요에 맞춰 이용하는 사회체계 속에 살고 있다. 직접행동을 뜻하는 ‘디엑스이(DxE·Direct Action Everywhere)’라는 이름의 시민단체는 바로 이 종차별주의에 저항해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패밀리레스토랑과 마트의 정육 판매대에서 “음식이 아니라 폭력”을 외치고 도살장 앞에서 동물을 실은 트럭을 멈추는 시위를 벌인다.

낯선 이들의 모습을 어떤 이들은 “동물의 권리에 미쳐 인간의 권리를 억압하는 자”라고 묘사한다. 그러나 동물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는 제로섬게임이 아니다. 디엑스이는 “우리 또한 동물 종의 일원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에서 출발해 세계를 다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인간의 말’을 하는 돼지 데이빗은 말할 수 없던 세상, ‘동물의 말’을 하는 이름 없는 돼지들에게 우리가 ‘동물’로서 귀 기울일 때만 알게 될 이 세계의 진짜 모습. 그 세계를 알지 못한 채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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