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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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돌보며 생존한다

지구의 유효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20년 전 개봉한 영화를 처음 봤을 땐 멸망 이후의 세계가 그저 까마득한 미래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 포스트 아포칼립스(멸망 이후의 세계) 장르의 작품을 보면 어쩐지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 같아 두려워진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서사 속 사람들은 기후위기나 핵전쟁 등의 이유로 한 번 멸망한 세계 속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이 세계는 대체로 황폐하고 폭력이 난무한다.

웹툰 <숲속의 담>(다홍 지음)의 장면들 / 네이버 웹툰

웹툰 <숲속의 담>(다홍 지음)의 장면들 / 네이버 웹툰

웹툰 <숲속의 담>(다홍·네이버웹툰)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한다. 여기엔 싱고늄, 바츠, 네리네 3개의 마을이 있다. 이 마을들은 본토와 다리 하나로 연결된 섬에 있는데, 다리가 끊겨 사람들은 본토의 상황을 거의 알지 못한다. 교류가 끊긴 이 섬에서 세계가 이미 멸망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지극히 소수다. 돈 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 이곳을 떠나 다른 행성에 자리 잡았고, 남은 이들은 성차별적이고 불합리한 마을의 규율 속에 일상을 이어나간다. 인류가 더는 발전하지 않는 이 땅에는 ‘담’이 있다. 담은 지금 이 행성에 살아 있는 그 누구보다 훨씬 오래된 사람이다. 부모가 나이 들어 죽고, 동생마저 노인이 돼 죽고, 또 동생의 자녀가 그렇게 될 때까지도 담은 홀로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똑같은 자신을 향해 사람들은 괴물이라 손가락질하고, 담은 그런 사람을 피해 숲으로 들어간다.

그런 그가 세상 밖으로 나온 건 다시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이 흐른 후다. 마을 사람의 지속적인 구타로 숲에 쫓겨 들어온 ‘미쉬’, 길을 잃고 우연히 만난 ‘율리’를 통해 담은 사람을 갑작스레 만나게 된다. 율리를 찾으려 숲에 들어온 ‘플로’와 ‘레나’는 담과 미쉬를 숲에서 데리고 나온다. 플로와 레나조차 마을에서 쫓겨난 이들이지만, 갈 곳 없는 이들을 거둬 자신만의 피난처를 만들었다. 플로와 레나는 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방을 내주고 빵을 나눈다.

<숲속의 담>은 황폐한 폭력의 땅에서 돌봄의 의미를 섬세하게 조명하는 SF 서사 작품이다. 플로와 레나가 그저 착해 다른 이를 거뒀던 건 아니다. 마을에서 쫓겨나 둘밖에 남지 않았던 때, 앞도 보이지 않고 막막하던 이들 앞에 구원자처럼 나타난 것은 아직 아기였던 율리다. 생존하기도 버거운 세계에서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건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율리를 돌봄으로써 플로와 레나는 일상을 회복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은 담·미쉬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오래 묻어둔 마음의 상처마저 돌아보기 시작한다.

이들은 돌봄을 통해 ‘생존’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자신을 회복하는 길이 된다. 일반적으로 ‘생존’이라 하면, 홀로 살아남는 승자를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오히려 살아남는 일이야말로 혼자 할 수 없는 일인인지도 모른다. ‘생존’을 구성하는 한자 존(存)은 ‘있다’라는 뜻으로 주로 쓰이지만, ‘보살피다’ ‘살피다’는 의미도 가진다. 이런 맥락에서 <숲속의 담>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삶을 다르게 풀어내는 작품이다. 누구나 고단한 세상살이, 서로의 삶을 살피고 위로하는 것이야말로 ‘생존’의 길이라 말하는 이 작품의 상상력이 반갑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살 수 있다.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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