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로스트-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걷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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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자기 안의 그림자를 직시하며 양지를 향해 떠나는 여행자와 같다.” 스탠리 스킨과 천상원의 공저 <상담자의 마음>의 한 구절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책은 아니다. 저자들도 실존 인물이 아니라 <닥터 프로스트>의 등장인물이다. 그중 천상원은 “모든 상담자는 자신의 그림자를 직시하며 걷는 사람들”이라며 어린 백남봉에게 심리학을 공부해 보라고 권유했고, 남봉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감정을 모르는 소년 남봉은 심리학 박사 프로스트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러니 해당 구절은 프로스트와 <닥터 프로스트>의 원점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닥터 프로스트>(이종범 지음) 중 한 장면 / 네이버 웹툰

<닥터 프로스트>(이종범 지음) 중 한 장면 / 네이버 웹툰

2013년에 연재된 시즌2에서 등장했던 이 구절은 수차례 되새겨진다. 프로스트에게 이 말은 트라우마 재현 치료의 마침표와 같다. 시즌3는 성인 프로스트가 트라우마 직후의 어린 남봉을 껴안으며 기억 일부를 되찾자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끝난다. “자기 안의 그림자를 직시”하기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은 자기 안에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렇게 직시의 첫걸음을 뗀 프로스트는 시즌4에서 문장을 몸소 완성해나간다.

하지만 “자신의 그림자를 직시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직시라는 어려운 일을 해내고 또 앞으로 나아간다는 더 어려운 일을 해내는 일은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프로스트에게는 천상원이라는 은사가 가장 먼저 함께해 줬고, 또 은사의 책이 이정표가 됐다. 이제는 조교였고 제자이자 동료인 성아를 비롯해 여러 인물이 손을 내민다. 그들과 함께한다는 감각, 그들과 더불어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 프로스트의 “그림자를 직시하며 나아가기”를 가능하게 만든다.

<닥터 프로스트>의 안타고니스트 문성현은 프로스트의 ‘데칼코마니’지만 사람이 없다는 점이 판이하다. 오로지 혼자라는 생각, 그런 자신에 대한 과한 확신은 문성현이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한다. 사람에 대한 혐오가 동력인 그는 대중이 혐오할 만한 대상을 찾고 더 폭력적으로 혐오하도록 부추긴다. 어떤 대상에 대한 혐오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두 요소, 즉 대상의 위험성과 스스로의 정의감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작업을 통해 문성현은 인류의 음지를 지향한다.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걷는 일은 광원을 등에 업을 때 가능하다. 프로스트에게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사람이야말로 빛이다. 문성현은 자신의 감정에 몰두한 나머지 타인에게 등을 내주지 못하며, 따라서 자신의 그림자도 볼 수 없다. 프로스트는 감정이 없었지만, 타인들과 함께하며 감정을 되찾고, 자신의 그림자를 직시하며 걸을 수 있게 됐다.

<닥터 프로스트>는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 10년간 형식과 톤을 바꿔가며, 또 인물을 성장시켜 가며 차근차근 걸었다.

문성현의 방식을 닮은 빠르고 쉬운 폭력적 쾌감으로 혐오를 부추기는 일부 웹툰이 조회수 상위를 차지하는 시절이다. 그에 반해 시즌3까지 조회수 상위권이던 <닥터 프로스트>는 가장 재미있고 의미 깊은 시즌4에서 중위권의 조회수로 연재를 마쳤다. 느리고 어려우며 뭉클한 배움을 선호하지 않는 시대라 해석해야 할까? 아닐 것이다. 중요하지도 않다. <상담자의 마음>이 프로스트의 이정표가 됐듯, 전체의 조회수가 아니라 ‘함께함’의 질이 가장 중한 법이므로 <닥터 프로스트>를 이정표 삼아 걸어갈 독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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