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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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건져올린 건 ‘타인의 지지’였다

<쉼터에 살았다>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생활툰’의 형식으로 전한다. ‘하람’은 22세에 청소년 단기 쉼터에 입소한다(19~24세의 후기청소년도 입소 가능). 하람은 깊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학대당했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도망쳤지만 하람은 삶을 잇기 쉽지 않다. 택할 수 있는 거주지는 몸 하나 누일 공간과 책상 하나만 허락되는 고시원. 이미 웹툰 한작품을 연재했을 정도로 실력 있는 만화가지만 당장의 생계비를 위해 최저시급의 일자리를 전전하다 보면 작업에 몰두할 힘도 시간도 내기 어렵다. 꾸준히 심리상담을 받지만 하람은 극한의 무기력에 잠긴다. 엉망으로 방치된 방에서 몸으로 바퀴벌레가 떨어지던 날 하람은 쉼터에 입소하기로 마음먹는다. 무기력에서 억지로라도 자신을 건져올릴 장치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웹툰 <쉼터에 살았다>(하람 지음) / 리디북스

웹툰 <쉼터에 살았다>(하람 지음) / 리디북스

이 작품은 입소를 결심하게 된 때부터 퇴소 후의 짧은 근황까지 시간순에 따라 전개되는데, 쉼터 생활 안내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쉼터의 삶을 세세히 전하지만 핵심은 쉼터 생활 그 자체가 아니다. 하람은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고, 그것을 해내기로 한다. “내가 당했던 모든 것이 가정폭력이고 그건 잘못됐다”는 사실을 파고들기로 한 것이다. <쉼터에서 살았다>는 사과하지 않는 ‘부모’라는 세계와 대결하는 이야기이고 죽음 충동으로 자신을 내몰던 힘을 버티고 ‘살아남는’ 이야기다. 그것이 이루어진 배경이 왜 쉼터의 삶이었을까. 인간의 내적 힘이란 물적 조건과 사회적 관계 안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람이 쉼터에서 얻은 것은 당장의 식사와 잠자리만이 아니다. 사람들이다. 삶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정서적으로 상호작용하고 내가 특별하고 이상하고 혼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또래 속에서 하람은 안정감을 찾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이야기를 만화로 꼭 그리라는 지지를 얻은 것이다. 하람이 자기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기로 한 건 자기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누군가의 고통을 보여주는 것이 곧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위로는 고통을 해석하는 힘이 만들어낸다. 고통을 내 삶에서 뿌리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얼굴을 마주 보고 이리저리 씨름하며 이것을 내가 이해하고 다룰 만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깨달음은 타인의 지지가 있을 때 세상을 향해 말을 걸 용기로 탈바꿈한다.

작가는 만화 플랫폼 딜리헙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가해지는 학대를 참고 있다가 만화 덕분에 쉼터의 존재를 알고 처음으로 그 학대에 반항을 해봤다거나 하는 댓글이나 메시지를 작품을 그려나가는 동안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이야기가 수신자를 제대로 찾은 셈이다. 도망칠 곳이 있다는 사실이 용기를 주었지만, 슬픈 사실은 쉼터도 온전한 ‘쉼터’가 되진 못한다는 점이다. 하람은 자해를 해서 쉼터에서 쫓겨난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때였지만, 쉼터 입장에서 그것은 규정 위반일 뿐이다. 규칙을 잘 따르면 상이, 위반하면 벌칙이 주어지는 쉼터는 통제의 효율성이 우선되는 곳이다. 쉼터를 전전하거나 쉼터에서조차 도망치는 청소년이 많은 이유다. 하람의 삶이 보여주듯 한 사람의 삶은 집만으로 해결되지 않지만, 집이 최소한의 출발점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기본권으로서의 청소년 주거권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확산하길 바란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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