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좌의 우르나-소속감에 홀린 인간, ‘괴물’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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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국가 레즈모어의 섬 리즐에 자리 잡은 케니티 기지. 보급대와 함께 그곳에 막 당도한 레즈모어 신병 우르나는 소총의 명사수다. 그가 맡은 임무는 야만족 즈드의 ‘만약(蠻躍)’을 저지하는 것. 우르나의 배속 첫날부터 즈드는 만약을 시도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는데, 우르나의 눈에 비친 즈드는 인간의 치아가 알알이 박힌 잇몸 모양의 괴생물이었다. 그리고 만약이란 스키점프대 모양의 유적 ‘치르모의 날개’를 미끄러져 도약해 날아오르는 행위였다. 즈드는 보급대원들을 모두 처참하게 죽여 고기방패로 삼는 양동 작전을 펼치며 한 개체의 만약을 시도한다. 날아오른 새와 같은 즈드의 만약을 향해 우르나는 총을 쏘고, 두 번째 총알로 만약을 저지하는 데 성공한다.

<총좌의 우르나 2>(이즈 토오루 지음) 앞표지(사진 왼쪽)와 뒤표지.우르나의 귀걸이형 인식표와 잇몸 괴물로 인식되는 즈드

<총좌의 우르나 2>(이즈 토오루 지음) 앞표지(사진 왼쪽)와 뒤표지.우르나의 귀걸이형 인식표와 잇몸 괴물로 인식되는 즈드

2019년 7권으로 완결된 이즈 토오루의 <총좌의 우르나> 1권은 이렇게 시작했다. 개성적이고 유려한 작화로 묘사된, 턱이 접힌 현실적 외모의 여주인공이 우선 낯설지만 곧이어 등장한 기괴한 즈드의 외양은 경악스럽다. 어떻게 보아도 적일 수밖에 없을 즈드는, 그러나 2권부터 달리 인식된다. 너무도 현실적이라 스포일러를 각오하고 논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3권 이후로도 반전이 거듭되기에 2권 중반까지의 내용 일부를 누설해도 작품의 매력을 잃게 할 리 없다고 믿고 저지르는 일이다.
2권의 핵심 반전은 즈드가 사실은 인간이란 것이다. 그들은 잇몸 괴물이 아니라 레즈모어인과 다른 풍습과 문화를 지닌 인간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기괴한 잇몸으로 보이는 것은 우르나와 케니티 분대원들 귀에 달린 ‘악마의 구슬’ 때문이었다. “공감을 절단하고, 멸시를, 몰이해를, 혐오를 병사의 마음에 배로 심어주는 장치.” 사실은 즈드 편인 케니티의 민간 연구원 라트프마의 말대로라면, 감각을 간섭하고 왜곡하는 이 장치에 의해 적군 즈드의 형상이 일그러진 결과가 바로 괴이한 잇몸이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악마의 구슬’의 원래 이름이 ‘인식표’라는 데 있다. 군인의 목에 매달린 인식표는 군인임을 인식하도록 하는 표식이자 개개인의 군인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표식이다. 자기 인식의 장치인 인식표를, 레즈모어의 과학은 적군에 대한 인식까지 생산하는 장치로 진일보시켰다. 인식표로 인해 우르나는 즈드를 같은 인간이 아닌 잇몸 괴물로 인식하며, ‘비인간’을 향해 더 쉽게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첨단과학의 인식표만이 그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의 인식표가 가진 기능의 본질을 <총좌의 우르나>가 영리하게 가시화했다고 봐야 맞다. 부상에 대비해 해당 군인의 혈액형을 표시하고 사망에 대비해 해당 군인의 신분을 표시하는 것이 핵심 기능인 것 같은 인식표이지만, 본질적으로 소속감의 장치다. 인식표를 찬 채 즈드를 저격하기 위해 총을 든 ‘총좌의 우르나’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나’를 인식하는 소속감은 피아의 구분을 이끌어내고 ‘국가의 나’가 ‘적국의 너’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게 만든다. 실제 전쟁에서 적군의 인식표는 거꾸로 전리품이 된다.

슬픈 것은 총좌나 군대에서만 인식표가 기능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의 나’ 혹은 ‘어느 집단의 나’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인식표에 홀려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잊은 익명 씨는, 다른 소속의 타인을 괴물로 보고 총을 쏜다.
<총좌의 우르나>는 소속감에 젖은 총질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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