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잠자는 사자’ 췌장의 코털 건드려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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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우가 쌓이고, 면역억제제가 더 발달하고, 감염예방 전략이 정교해지면서 췌장이식도 더 이상 실험적인 치료가 아닙니다. 인슐린 의존성 당뇨환자들은 상황에 맞게 췌장이식을 할 수도, 현재의 인슐린 치료가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식을 시행하는 외과의사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환자와 상의해 최선의 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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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은 현대의학의 꽃입니다. 3세기 코스마스와 다미안이라는 쌍둥이 의사가 병에 걸린 사람의 다리를 잘라내고, 에티오피아인의 다리를 붙여 온전하게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병에 걸린 몸 일부를 건강한 사람의 것과 바꿔주면 되지 않겠냐는 사람들의 소망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소망은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이루어집니다. 우리 몸에 있는 면역체계가 다른 사람의 장기가 몸에 들어오면 그 장기를 공격해 급성 거부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면역억제제라는 것이 개발되기 전에는 장기이식은 매우 실험적인 치료였습니다. 면역억제제가 개발되고 또 임상에 쓰이기 시작한 이후로 장기이식은 말기장기부전으로 생명이 꺼져가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희망이 됐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생체 간이식 수술 기술은 전 세계에서 가장 수준이 높아 미국과 같은 의료선진국에서도 기술을 위해 우리나라에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장과 췌장이식은 간, 심장, 폐이식과는 달리 당장 생명이 위급한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수술이 아닙니다. 신장은 투석이라는 방법이 있고, 췌장이식이 필요한 인슐린 의존성 당뇨환자들은 인슐린을 자가주사하면서 혈당을 조절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장이식과 췌장이식은 생명이 위급한 환자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성적 질환으로 삶의 질이 황폐해진 사람들의 삶의 질을 좋게 하는 수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신장이식과 췌장이식도 이식한 사람들을 장기간 살펴보면 투석을 하거나 인슐린을 맞는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게 해준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인슐린 의존성 당뇨환자들의 희망

생소한 이식이라고 해서 췌장이식의 역사가 짧은 것은 아닙니다. 최초의 췌장이식은 1966년 미국 미네소타 대학병원에서 켈리와 릴리하이란 의사에 의해 행해졌습니다. 벌써 55년이나 됐군요. 당시 인슐린이 몸에서 분비되지 않는 1형 당뇨로 인해 신장이 망가진 28세 여성에게 뇌사자의 신장과 췌장이 동시에 이식됐고, 수술 후 6일간 인슐린을 맞지 않아도 혈당이 잘 조절됐지만, 그후 거부반응과 감염 등으로 환자는 두달 후쯤 사망하고 맙니다.

사실 췌장이란 장기는 외과의사들에게는 잠자는 사자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외과의사들이 건드리기 싫어하는 장기지요. 췌장은 혈관 내로는 인슐린과 글루카곤이라는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내고, 또 췌장에 붙어 있는 십이지장으로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모두 분해할 수 있는 소화효소를 분비합니다. 우리 몸도 단백질과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췌장에서 나오는 소화효소가 장내로만 분비되는 것이 아니라 몸 안쪽으로 새어버린다면, 우리 몸도 소화시킬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위험천만한 장기를 이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할 수 있나요? 어려운 수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는 수술도 아니니 췌장이식은 외과의사들에게 위험부담은 크지만 얻는 것은 적은 수술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노하우가 쌓이고, 면역억제제가 더 발달하고, 감염을 예방하는 전략들이 더 정교해지면서 췌장이식도 이제는 더 이상 실험적인 치료가 아닌 필요한 환자분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수술이 됐습니다.

우선 당뇨로 인해 신장까지 망가져 투석하는 분들에게는 단순히 신장만 이식하는 것보다 신장과 췌장을 같이 이식하는 것이 환자의 장기 생존율을 훨씬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당뇨환자들이 다 췌장이식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고,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1형 당뇨환자 중에서 투석하는 분들이 일차적인 대상이 됩니다. 또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슐린이 필요한 2형 당뇨환자 중 투석하는 분들도 췌장이식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 당뇨환자들은 인슐린이 췌장에서는 분비되기는 하지만, 그 분비능력이 떨어지는 소위 ‘1.5형’ 환자들이 많기 때문에 췌장이식의 대상자가 서구에 비해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 외과교수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 외과교수

그런데 인슐린 의존성이 있는 투석환자 모두가 신·췌장 동시이식을 빨리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신장이식 대기자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한명의 뇌사자에게서 기증되는 두개의 신장 중 한개의 신장이 췌장이식 대기자들에게 배정될 확률이 매우 낮습니다. 그래서 신·췌장 동시이식의 경우는 이식을 신청하고 대기하는 기간이 평균 4~5년이 넘어갑니다. 2019년 국내 장기이식센터들의 기록을 보면 국내 80개 기관에서 신장이식을 시행한 반면 불과 7개의 기관만 췌장이식을 시행했습니다. 즉 췌장이식을 하는 기관은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췌장만 이식을 받는 경우는 대기기간이 6개월을 넘어가는 경우가 드뭅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당뇨 때문에 신장이 망가진 분들이 뇌사자 신장이 배정되면 먼저 신장이식을 하고 추후에 췌장이식을 하는 방식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혹시 생체 신장기증자가 있을 경우, 췌장뇌사자가 발생할 때까지 대기했다가 췌장뇌사자가 발생했을 때 신장은 생체기증자에게서, 췌장은 뇌사기증자에게서 동시에 수술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면역억제제 부작용 고려해야

말기신장병으로 신장이식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췌장이식을 시행하는 것은 대부분의 의사나 환자들에게 거부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식한 신장 때문에라도 면역억제제는 복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인슐린 의존성 당뇨가 있지만, 아직 신장기능이 상대적으로 온전한 환자들의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도 췌장이식을 시행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인슐린은 끊고 환자는 당뇨에서는 해방될지 모르지만,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면역억제제라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감염의 위험을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암의 발생이나 신장기능 자체를 떨어뜨리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러한 환자들에게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우선 신장기능이 좋더라도 반드시 췌장이식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저혈당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는 자다가 저혈당에 빠지면 그 상태로 사망할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췌장이식을 해야 합니다. 드물게 췌장이식이 응급한 생명을 구하는 경우가 됩니다. 비슷하게 인슐린을 최선을 다해 조절해 맞는데도 불구하고 저혈당과 고혈당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도 면역억제제의 부작용을 무릅쓰고라도 췌장이식을 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른 인슐린 의존성 당뇨환자들은 상황에 맞게 필요하면 할 수도, 현재의 인슐린 치료가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식을 시행하는 외과의사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환자와 잘 상의해 최선의 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2015년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 온 이후 70건 이상의 췌장이식이 시행됐습니다. 이식 후 1년 동안 이식 장기가 제 기능을 해 인슐린에서 해방된 환자들이 95% 이상입니다. 이제는 이식이 널리 알려져 인슐린 의존성 당뇨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 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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