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복서-승패 이상의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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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올림픽은 특별했다.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승패를 뛰어넘는 다양한 서사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양궁으로 출전한 김우진 선수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내가 준비해온 것들을 전부 펼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기분은 좋다”라고 답변했다. 마지막 세트에 8점을 쏜 것에 대해서도 “내가 쏜 거다, 8점을. 누군가가 쏜 게 아니다. 활시위를 당겨 내가 쏜 화살이고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잘못 쏜 거다”라며 냉정히 평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가 하면 높이뛰기에 출전해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한국신기록을 세운 우상혁 선수는 “진짜 이거는 후회 없는 경기가 맞고요. 진짜 저는 행복합니다”라고 인터뷰했다.

웹툰 <더 복서>(정지훈 작가)의 한 장면/네이버웹툰 제공

웹툰 <더 복서>(정지훈 작가)의 한 장면/네이버웹툰 제공

경기를 시작하면 한쪽은 지고, 또 한쪽은 이기고야 만다. 스포츠는 승부를 알 수 없고, 선수들의 뒤에는 엄청난 노력이 뒷받침돼 있으며, 노력하더라도 운과 컨디션에 좌우되기도 한다. 통상적인 스포츠 만화는 노력과 성장을 중심으로 스포츠 서사를 풀어내지만, 스포츠 선수들이 껴안고 있는 현실은 비단 성장 드라마에 그치지 않는다. 노력은 일상이고, 패배나 기권도 결국 그들의 삶 안에 녹아들어 있다.

웹툰 <더 복서>(네이버웹툰 연재·정지훈 작가)는 이러한 점에 착안해 복싱 선수들의 복잡한 사연을 풀어내는 작품이다. 이 만화의 대표적 등장인물인 ‘유’는 압도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데뷔하자마자 챔피언 벨트를 거머쥔다. 링 위의 승리자는 ‘유’이지만, 이 작품은 ‘유’의 욕망이나 서사를 담기보다 상대 선수의 삶을 깊숙이 표현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다케다 유토와의 대결이다. 재능이라곤 하나 없이 오로지 상상을 초월한 노력만으로 챔피언 벨트를 따낸 유토의 배경에는 그가 노력해야만 했던 서사가 겹겹이 쌓여 있다. 그러나 유토에게 희망을 걸었던 이들도 성장해 이제 그들은 유토가 자신이 희망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란다. 유토는 유와의 대결에서 패배하지만, 그 패배는 유토에게 해방과 자유가 된다.

<더 복서>는 링 위에 올라선 대전 상대의 모습을 “마치 링 안에서 두명의 사람이 서로 만나 자신의 삶이 무엇이었는지를, 자신이 누구인지를 있는 그대로 서로에게 말해주는 것만 같다”(37화)고 표현한다. ‘유’와 주먹을 겨누는 선수들은 캐릭터, 재능, 과학, 노력, 운 등 다양한 특징을 갖고 있지만 하나같이 그에게 패배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경기에서의 패배는 그들 삶에 꼭 필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 만화는 승리보다는 패배의 의미를 비추고, 나아가 사람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쫓는다.

이 작품은 이렇게 묻는다. “오직 정점에 오를 소수의 강자만을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36화) 메달은 극소수에게 주어지지만, 관중은 메달만이 아니라 선수들을 본다. 어떤 선수들은 고리타분하게 이어져온 관습을 거부하고(노르웨이 여자 비치 핸드볼팀), 어떤 선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 경기에 기권한다(기계체조의 시몬 바일스 선수). 올림픽의 속내가 평등하지만은 않고, 스포츠계 역시 곪은 부분이 있지만 경기장에 나선 선수들의 에너지는 그 모든 걸 깜빡 잊게 할 만큼이나 반짝거린다. <더 복서>의 명대사를 빌리자면, 거기엔 “승패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있다.”(34화)

<조경숙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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