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알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종말 앞에서 낭만 즐기는 자영업자의 비밀

세상이 물에 조금씩 잠기면서 인류의 마지막이 다가온다. 하지만 요코하마 인근의 작은 마을 사람들은 절박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처럼 남은 날들도 일상을 즐기며 지낸다. 그중에는 카페를 운영하는 ‘알파’도 있다. 알파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카페 알파’의 유일한 직원이며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 한다. 이는 아시나노 히토시 작가가 12년간 연재한 만화 <카페 알파>(원제 요코하마 매물 기행)의 이야기다. <카페 알파>는 치유계의 대표적인 작품인데 커다란 서사를 따르기보다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통해 편안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뜻한다. 힐링물이라고도 부른다.

<카페 알파>(아시나노 히토시 지음) 1권 표지 / 학산문화사

<카페 알파>(아시나노 히토시 지음) 1권 표지 / 학산문화사

그런데 하필 이런 시기에 <카페 알파>를 읽은 자영업자에게는 전혀 힐링이 되지 않았다. 인류를 멸종시키려 높아지는 수위가 코로나19 유행처럼 보였다. 그 부근에서는 꽤 유명하다고 스스로 자부하지만, 손님이라고는 단골 몇명이 전부이며, 준비한 커피의 80%는 본인이 마시고 있는 모습에 자영업자는 여유를 느낄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 이것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만화 속의 자영업자들은 어떻게 그리 낭만적인지 궁금했다.

만화 속에는 손님의 어린시절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전국에서 재료를 구하고, 전설 속 물고기를 잡으러 태풍을 헤치고 낚싯배를 타는 초밥 요리사가 있다. 맛있는 음식 한접시를 대접받고 무릎을 꿇는 건물주도 있고, 가족을 버리고 최고의 요리비법을 찾아 수행을 떠나는 아버지와 새로 들어온 직원에게 그 비싸다는 소고기를 얼마든지 요리 연습에 써도 좋다는 관리자도 있다. 만화라서 그런 것을 알면서도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런 꿈 같은 스토리를 조금은 기대했다. 대신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고 영업제한으로 준비했던 재료를 버리는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심야식당>을 읽고 작품 속에 나오는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는 이들을 여럿 보았고, 실제로 유사한 형태의 술집이 제법 생기던 시기가 있었다. 그다지 고급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간단한 음식을 그때그때 요구에 따라 만들어주고, 많지 않은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교감하는 그런 콘셉트의 식당을 운영자나 손님 모두 낭만적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심야식당>이 끝내 보여주지 않는 것은 매입매출장부다. 노가리에 생맥주를 마시러 온 손님과 오너가 몇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는 곧 망할 가게에만 있다. 어쩌면 코로나19로 그런 여유가 생기긴 했다.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못 먹던 회를 먹은 적이 있다. 한입 먹으니 혀 위에서 발레리나의 우아한 안무가 느껴지고, 멀리서 지켜보던 셰프가 살짝 미소짓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왠지 그 초밥을 만든 요리사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내가 장사를 시작하고서야 내가 먹던 가격에 감동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실의 자영업이란 만화 속처럼 꿈과 희망을 연료 삼아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고지서를 견디기 위해 강도 높은 노동으로 버티다 추락하는 것이다.

<카페 알파>의 여유로움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알파는 사실 로봇이고, 카페의 오너인 하츠세노씨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츠세노씨는 건물주이며 세계여행 중이다.

<황순욱 초영세 만화플랫폼 운영자>

만화로 본 세상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