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디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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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원, 그의 디데이는 언제인가

만화와 사회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만화 작품 속에는 저자와 독자가 공유하는 사회가 녹아 있다. 그렇다고 만화가 사회를 반영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만화는 사회에 대해 ‘내부자’로서 발언한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비판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깨우침의 기회가 된다.

<각자의 디데이>(오묘 지음, 네이버웹툰) 중 도서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장면 / 네이버 웹툰

<각자의 디데이>(오묘 지음, 네이버웹툰) 중 도서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장면 / 네이버 웹툰

만화와 사회의 복잡한 관계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한국 만화에는 한국사회의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도 담겨 있다고. 우선 작가가 살아간 사회의 지금, 즉 역사적 과거가 켜켜이 쌓인 현재가 담겼다. 한편 미래(未來)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이건만, 그것은 상상에 의해, 혹은 기대와 욕망에 끌려 작품 속에 담긴다. 그래서 성소수자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고, GL(Girls Love)이나 백합이란 장르도 없던 1970년대에 <하얀 돛배>(민애니·2021년 복간) 같은 두 소녀의 사랑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만 그 사랑에는 사랑의 묘약이라는 비현실적 상상이 필요했는데, 1970년대 사회에서 동성애가 판타지와 다름없었음을 반영한다.

지금은 소녀들의 사랑을 어떻게 그릴까? GL이 이를 담아내는 최전선이겠지만, 보다 대중적인 로맨스 장르에서 예를 찾아보려 한다. 로맨스 장르가 GL이나 BL(Boys Love)과 달리 이성애 로맨스를 중심으로 하는 경향이 있으며, 바로 그런 면에서 현재 사회의 이성애 중심성을 반영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완결된 <각자의 디데이>(오묘·네이버웹툰)는 고교생 남녀커플 진파란과 연노랑의 로맨스가 주축인 작품이지만, 다른 인물의 결 다른 사랑도 비중 있게 다룬다. 그중 김이로를 짝사랑하는 도서원은 현재 시점에서 동성애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작품은 여러 회차에 걸쳐 서원이 이로를 향해 품은 마음이 지금의 크기까지 이른 과정을 보여준다. 더없이 로맨틱한 마음의 모양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가운데 서원의 마음을 알거나 눈치챈 다른 인물들은 예전의 만화와는 달리 ‘동성’애에 집중하지 않는다. 염려도, 참견도, 혐오도 없다.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전제하며 그 특수성을 사건화하던 방식보다 진일보한 묘사다. 사건은 여자가 여자를 향해 마음을 품었다는 점이 아니라 서원이 이로를 향해 마음을 품었다는 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작품 속 사회는 이를 이해할 만큼은 성숙해 있다.

다만 여타 인물들과 서원이 다른 지점이 한가지 있다. 작품에서 이성애 로맨스를 담당하는 인물들은 제목처럼 ‘각자의 디데이’에 맞춰 어떤 식으로든 직접적인 고백의 단계를 거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절당할 용기뿐이다. 하지만 서원은 이로에게 고백하지 않고 “졸업하면 잊히는 같은 학교 친구”로 남으려 한다. 이것은 그저 개인의 선택일까? 아니면 한국사회의 어떤 지점을 반영하는 것일까? 혹은 어떤 변화를 요청하는 것인가?

서원에게만은 오지 않은 그의 디데이에 대해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미래는 이렇게 그려지지 않은 것으로 <각자의 디데이>에 담겨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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