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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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간화되고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

지난 5월 16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살아온 14세 소년 ‘함자’의 부고를 알렸다. 함자는 8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함자에게는 엄마와 아빠와 형과 동생이 있었다. 그들은 함자가 죽기 전 모두 세상에서 사라졌다. 2009년에는 동생이, 2012년에는 형이, 2014년에는 아빠가, 그리고 2021년에는 엄마가 살해당했다. 범인은 이스라엘군이었다. 도미노가 쓰러지듯 가족이 죽어나는 모습을 보며 함자는 깊은 분노와 공포와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함자의 비극은 가자지구에서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없다.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표지글논그림밭 제공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표지글논그림밭 제공

서울의 60%쯤 되는 가자지구에는 200만명가량이 산다. 비인간적 봉쇄조치와 잦은 공습 때문에 80%가 사회적 지원이나 국제단체의 구호품에 의존한다. 2007년 6월부터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완전히 고립시켰다. 육지는 물론 바닷길도 막혀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이란 말로 불린다. 지난 10일부터 가자지구는 또다시 이스라엘의 대대적 공습에 시달리고 있다. 함자의 엄마는 이 공습으로 사망했다. 어떤 언론은 이 사태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무력충돌’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무력’끼리의 ‘충돌’인가?

공습 8일째를 기준으로 팔레스타인인 212명이 숨지고, 1500여명이 다쳤다. 물론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도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쏜다. 그런데 같은 날까지 집계된 이스라엘 사망자는 10명이었다. 현격한 차이다. 하마스가 쏘는 로켓포는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 아이언돔(Iron Dome)에 막혀 번번이 격추되기 때문이다. 반면 이스라엘의 정밀폭격은 가자지구를 초토화한다. 병원이고 언론사고 가리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사망자 중 61명이 어린이다.

그저 충돌로만 부를 수 없는 이유는 힘의 차이 때문만이 아니다. 지난 5월 10일, 첫 로켓포를 쏜 것은 하마스였다. 그러나 그 이전인 7일, 이스라엘 경찰이 라마단 기간에 무슬림의 성지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이 있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동예루살렘의 셰이크 자라 정착촌을 강제로 몰아내려는 이스라엘에 항의해왔다. 거슬러 올라가면 1948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점령’이 있다.

충돌과 점령 사이에서 고민하는 독자를 위해 조 사코의 작품을 소개한다. 만화로 저널리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그는 팔레스타인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록을 남겼다.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이다. 1956년 칸 유니스와 라파 지역에서 자행된 대량학살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현재를 말하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은 그래픽노블 최초로 ‘진실을 말하는 기자들’에게 주는 리덴아워상을 받았다. 비망록이라 번역됐으나 원제는 ‘각주(footnote)’다. 역사의 본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의 증언을 역사화하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다.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의 체험을 기록한 프리모 레비는 수용소가 비인간화를 위해 고안된 시설임을 포착한다. 인간이 인간을 양심의 가책 없이 죽이기 위해서는 그의 인간됨을 먼저 지워야 한다. 지금 비인간화되고 있는 존재는 누구인가. 들어야 한다. 각주 처리된 존재들의 목소리를.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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