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가족 간의 사랑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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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이 극의 원고를 당신에게 바치오. …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로 이 글을 쓰도록 해준, 당신의 사랑과 다정함에 감사하는 뜻으로 이 글을 바치오.”

오닐이 「밤으로의 긴 여로」를 통해 전달하려 했던 것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다. 사진은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 한 장면. / 경향자료

오닐이 「밤으로의 긴 여로」를 통해 전달하려 했던 것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다. 사진은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 한 장면. / 경향자료

미국 극작가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맨 앞에 나오는 헌사다. 1941년 결혼기념일에 아내 칼로타에게 바친 내용이다. 오닐은 아내에게 이 작품을 자신이 죽은 다음 25년 동안 발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오닐의 아내는 오닐이 세상을 떠난 3년 후인 1956년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 등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닐은 왜 이런 유언을 남겼을까. 묵은 슬픔을 눈물과 피로 써야 했지만 차마 세상에 드러낼 수는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오닐 자신의 생생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연극으로 보지 못하고 대본으로만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는 데는 시간이 적잖이 들었다. 작품 속 가족 이야기를 마주하기가 힘들었고, 또 자꾸 내 가족 이야기를 떠오르게 했다. <밤으로의 긴 여로>를 쓰기 시작했던 51세의 오닐처럼 우리나라 대다수 오십대에게 가족은 두겹으로 이뤄진 삶의 울타리다. 태어나면서 운명으로 주어진 가족이 한겹이라면, 내가 선택한 가족이 다른 한겹이다. 이 작품은 오닐의 첫 번째 울타리였던 가족을 그린 희곡이다. 작품 속 인물인 막내아들 에드먼드는 오닐 자신인 것으로 보인다.

노벨상 작가 오닐의 자전적 이야기

어머니 메리는 수녀원 여학교를 다니며 피아니스트가 될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 아버지 티론을 만나 결혼을 했다. 배우인 남편을 만나 미국 전역 싸구려 호텔을 집 없이 떠돌았다. 메리는 에드먼드를 낳은 후 심하게 아플 때 의사가 권한 모르핀에 중독됐다. 가족은 인색한 아버지가 돌팔이 의사를 불러서 일어난 일이라고 원망했다. 특히 형 제이미는 에드먼드가 태어나 어머니가 모르핀을 시작한 거라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비극은 또 있었다. 메리가 첫째 제이미와 둘째 유진을 친정에 맡기고 남편 티론에게 가 있는 동안 유진이 홍역으로 죽었다. 메리는 홍역에 걸린 제이미가 동생을 시샘해 일부러 동생 방으로 들어갔다고 의심했다. 거기다 지금 두가지 불행이 진행되고 있다. 가족은 메리가 모르핀을 다시 시작할까봐 걱정한다. 메리의 기척 하나하나에 잔뜩 예민해져 있다. 메리가 모르핀을 다시 시작한 게 점차 분명해진다. 게다가 에드먼드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 에드먼드는 결국 폐병 진단을 받는다.

메리는 현재에 살고 있지 않다. 과거를 헤매는 유령이다. 끊임없이 젊고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거부한다. 가족에게 그건 상처다. 자신의 존재가 거부되기 때문이다. 메리가 행복했던 때가 자신과 결혼하기 전이라고 티론은 추측하고, 에드먼드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이라고 생각한다.

티론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바람에 어머니와 4명의 아이는 억척스럽게 살아야 했다. 티론은 연극배우로 명성을 얻었지만, 싸구려 흥행작에만 매달림으로써 경력을 마감해야 했다.

민음사

민음사

티론의 성격은 인색했다. 하지만 땅은 악착같이 사 모았다. 티론의 어머니는 양로원에서 죽는 것을 두려워했다. 티론 역시 인생의 마지막을 양로원에서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아들의 폐병을 그토록 걱정하던 티론이 에드먼드의 요양소로 가장 값싼 곳을 고른 것은 아이러니했다.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밤으로의 긴 여로>의 가족은 서로에게 가해자고 피해자다. 남에게는 하지 않을 가장 아픈 말을 건네지만 이내 서둘러 사과하고, 다시 같은 곳을 찌르지만 그 상처에 다시 자신이 아파한다.

아이를 낳고서야 이해한 엄마의 마음

<밤으로의 긴 여로>는 오닐의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오닐의 실제 가족에서 아버지는 떠돌이 배우였고, 어머니는 약물 중독자였다. 첫째 형은 알코올 중독으로 죽었고, 둘째 형 역시 어려서 죽었다. 오닐이 왜 눈물과 피로 묵은 슬픔을 기억하고 기록해 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오닐이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 했던 것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다. 허물을 덮어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용서일 거다. 이 용서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게 연민과 이해다. 연민이 가련하게 여기는 거라면, 이해는 너그러이 헤아리는 거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형은 형대로 어쩔 수 없는 상처로부터 고통받는 피해자들이다. 가련함과 너그러움으로 가족 구성원을 선선히 받아들이는 용서는 곧 사랑이지 않을까.

“인간이 되는 바람에 항상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고, 진정으로 누구를 원하지도, 누가 진정으로 원하는 대상이 되지도 못하고, 어디 속하지도 못하고, 늘 조금은 죽음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시인으로 나오는 에드먼드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에 대해 말한다. 인간의 조건 중 하나는 외로움이다. 우리가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것도 다 이 외로움 때문이다. 모든 가족이 외로움을 덜어내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주진 않는다. 가정은 폭력이나 학대 같은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가족 간의 사랑을 여기서 일방적으로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 사랑은 서로에 대한 연민과 이해와 용서를 필요로 한다는 오닐의 암시를 생각해보려는 거다. 가족을 이루기로 결심했다면, 연민과 이해와 용서라는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게 <밤으로의 긴 여로>가 안겨주는 현재적 의미가 아닐까. 이러한 마음의 태도를 갖는 데는 물론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어릴 적 엄마에게 많이 야단맞으며 컸다. 엄마는 예민하고 엄격했다. 거리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결혼한 후 엄마와 다시 사귀게 됐다. 내가 아이를 낳고서야 엄마가 셋이나 되는 아이를 시집과 친정에서 먼 타지인 부산에서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돌아보게 됐다. 게다가 처음에는 가까운 친구들조차 없었으니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엄마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생각해 봤다고 해서 우리 모녀간의 거리감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를 이해하려고 한 것으로 보아 나도 나이가 든 셈이다. 이제 남은 내 삶에서 나는 엄마의 삶을 얼마나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삶이 오닐의 말처럼 여로(旅路)라면, 나의 이 여행 끝에선 엄마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서 있길 소망한다.

<성지연 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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