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슬픔 이후 그 삶이 너무 낯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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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부고가 날아온다. 꽃을 올리거나 절을 하고 나면, 푸석한 얼굴로 친구인 상주가 가족들에게 소개한다. 묵례를 건네고 나와서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 끼어 앉는다. 서로의 부모 안부를 묻는다. 너나없이 연로한 부모는 어딘가 아프다. 그 자리의 누군가를 상주의 자리에서 다시 만난다.

누군가와 사별의 슬픔을 피할 방법은 없다. 다만 달라진 삶으로 돌아갈 때 그 삶이 너무 낯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영화 <향>의 스틸사진 / 푸른영상

누군가와 사별의 슬픔을 피할 방법은 없다. 다만 달라진 삶으로 돌아갈 때 그 삶이 너무 낯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영화 <향>의 스틸사진 / 푸른영상

50대는 그런 나이다. 잊고 살아도 죽음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죽음으로 누군가를 잃는 것 역시 피할 수 없다. 여기에 고스란히 남는 것이 슬픔이다. 작가 론 마라스코와 브라이언 셔프가 2010년에 내놓은 <슬픔의 위안>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에 대한 책이다.

마라스코와 셔프는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 속 소외감을 느끼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 역시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슬픔에 빠진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할까봐 침묵을 지키며 혼자만의 섬에 틀어박힌다. 마라스코와 셔프는 슬픔에 빠진 사람들의 그 침묵에 다리를 놓겠다고 말한다.

슬픔에 빠진 사람이 느끼는 소외감

“삶은 사소한 것들이다. 그런데 슬픔은 그 사소한 것들을 비틀어서 떼어내 버린다. 죽음은 사소한 것들을 베어내 버리고 난 뒤 그 자리를 공허감 대신 인식 가능한 고통의 무게로 채운다.”

죽음은 가장 사소한 것들로부터 가장 큰 고통을 만들어낸다. 어떤 할아버지에게 40년을 함께 산 아내가 매일 아침 내주던 커피, 어떤 남편에게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보이던 아내의 모습, 어떤 아빠가 딸에게 자주 했던 말. 이런 평범한 것들은 잃게 되면 가장 고통스러운 것들이 된다.

슬픈 사람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슬픔 주위로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든다. 긴장과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데 이건 슬픔에 빠진 사람을 슬픔만큼 힘들게 한다. 마라스코와 셔프는 슬픔의 당사자에게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라고 권한다. 또 주위 친지는 슬픔의 당사자가 혼자 있고 싶을 때를 존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는 항상 머리 위에 떨어지는 모루가 있다. 모루는 대장장이가 쇠를 단련할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어리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그럭저럭 지내다 예상치 못한 감정에 휘둘려 만신창이가 된다는 거다. 영화의 한 장면, 우연히 흘러나오는 음악,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물건, 심지어는 삶의 멋진 순간조차 떠나간 사람과 함께 즐기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모두 모루가 된다. 모루는 잠들지 못하는 밤, 혹은 잠들었다 일찍 깬 새벽 4시 반에 찾아오기도 한다.

슬픔에 젖은 다른 사람은 또 다른 모루다. 그러나 영혼을 가장 많이 변화시키는 모루이기도 하다. 슬픈 사람은 슬픈 사람을 알아본다. 그래서 슬픔은 공감 능력을 넓힌다. 셰익스피어 <리어왕>의 주인공 리어왕은 몰락을 겪으며 불쌍하고 헐벗은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기 시작한다.

현암사

현암사

슬픔에 대처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한 대면’이다. 로웬스타인 부부는 테러에 자식을 잃었다. 이 부부는 문에 자신들 이름 대신 ‘툰더가스’라고 붙여 놓았다. 무슨 뜻인지 묻자 아들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 로커비의 농장 이름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했다.

나를 서늘하게 한 것은 툰더가스에 담긴 ‘바람 저편에’라는 의미다. 바람 저편에 살고 있을 아들을 기억하려는 걸까. 로웬스타인 부부는 아들의 비극에서 도망가는 대신 그것을 정직하게 마주한다. ‘불쾌한 진실’을 멀리하기 위해 ‘진실 여과기’를 만들어내는 대신 슬픔과 기쁨의 삶을 다 함께 껴안는 것이다.

나쁜 것을 피하려고 만드는 진실 여과기가 유쾌한 진실까지 걸러내 버리면, 고통과 함께 기쁨까지 느끼지 못하게 된다. 마라스코와 셔프는 이 진실 여과기를 대신해 말하기를 권한다. 심리치료도 좋고, 자신에게 털어놓는 것도 좋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정직한 대면이라고 해서 괴로움을 되새김질하라는 말은 아니다. 마라스코와 셔프는 ‘온건한 부인(否認)’을 권한다. 정직함으로 고문을 당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문제를 통째로 피하라는 게 아니라 슬픔이라는 고통스러운 작업 사이사이 숨을 고르고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슬픔에 대처하는 아홉가지 위안

슬픔에 대한 구체적인 처방도 있다. 마라스코와 셔프는 슬픔에 대처하는 아홉가지 위안을 제시한다. 휴식, 스포츠, 자연, 탐닉, 연대, 냉소, 일상, 독서, 정의가 그것이다. 내가 슬픔에 처했을 때 이런 위안들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실제로 상심이 정말 깊었을 때는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무언가를 할 생각이 난 것은 그나마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르고 나서였다.

그래도 슬픔에 처했을 때 이런 위안 중 하나라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조언은 슬픔의 당사자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좋은 처방이다. 휴식을 정말 주려면 위로의 말보다는 실질적 도움을 주라는 조언이 그렇다. 한 코미디언이 말한 이야기다. 남편을 떠나보낸 여성은 방문객들이 기도를 해주겠다고 하자 기도는 자신이 할 테니 설거지를 해달라고 했다. 바로 설거지 같은 게 실질적인 도움이라는 얘기다.

짝, 가족, 친구, 집단, 국가가 슬픔을 위로하는 연대의 다섯개의 원이라는 조언도 그렇다. 비극이 일어나 이 울타리 중 하나가 터지면 사람들은 안전을 찾아 다른 원으로 도망친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을 때 내가 따듯한 울타리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짝이나 가족이나 친구나 집단이나 국가의 구성원으로 그 자리에 내가 있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이 깊은 만큼 슬픔도 깊다. 마라스코와 셔프는 사별의 슬픔을 이겨내려면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서 부서져 내린 조각에 자신을 접합시켜 온전한 무언가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에서 시작되어 살아 있는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는 슬픔의 궤적이다. 마라스코와 셔프는 말한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 … 슬픔은 떠난 사람을 사랑했기에 치러야 할 계산서다.”

슬픔을 피할 방법은 없다. 다만 달라진 삶으로 돌아갈 때 그 삶이 너무 낯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고 슬픔은 모두 다 다르다. 누군가를 위로할 때 마음속에 품었던 말들을 모두 전하지 못하는 건 그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라고 다를까. 슬픔은 그때마다 처음 보는 모습으로 다가올 거다. 그때 삶에는 슬픔만이 아니라 사랑과 기쁨과 행복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싶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달라진 삶으로 천천히 돌아가고 싶다.

<성지연 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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