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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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절망의 탈출구는 철학이나 유머

찰리 채플린 지음·류현 옮김·김영사

찰리 채플린 지음·류현 옮김·김영사

책은 세 번 읽어야 한다고 들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에 지은이를 읽고, 끝으로 스스로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모든 독서는 자기를 알아가고 자신을 규명하는 행위다. 한발짝 더 들어가면 자서전을 읽고 쓰는 것이야말로 개인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형성하는 적극적 작업이 될 것이다. 각각의 ‘내’가 펼쳐온 인생 역정이 ‘우리’의 공동체로 모여들 때 개인사는 삶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 비범한 인물들을 수발한 자서전 중에서 으뜸은 찰리 채플린의 몫이다. 예전 영어 장문 독해에도 단골로 나올 만큼 어법과 표현이 최상급인데다 파란만장한 체험과 경험에서 길어 올린 통찰과 지혜는 시대의 현인으로 손색이 없다.

그가 태어난 1889년은 해가 지지 않는다던 영국의 ‘빅 벤’이 정오를 가리키던 때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는 태평했다지만 아버지와 헤어진 모자 가정의 생활은 비참했다. 대영제국의 전성기에 빈부격차는 악화일로였다. 노래를 부르다 목소리가 갈라진 어머니를 대신해 첫 무대에 섰던 당시 채플린은 다섯 살이었다. 어두운 지하 단칸방조차 감당할 수 없었던 가난은 가족을 빈민구호소로 떠밀었다. 뿔뿔이 헤어진 식구가 합쳤다가 다시 구호소로 돌아가는 생활이 반복됐다. 와중에 어머니는 현실을 감당하지 못해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꼬마 적부터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던 채플린은 마침내 배우의 꿈을 이뤘다. 14세에 연극의 배역을 맡고 주급을 받게 되면서 인생의 한 문턱을 넘어선 것이다. 괜찮은 연기자에서 세기의 톱스타로 행로가 바뀐 것은 미국의 영화사에 스카우트되면서다. 여기서 그만의 캐릭터가 탄생했다. 헐렁한 바지, 꽉 끼는 상의, 커다란 구두에 작은 모자, 그리고 짧은 콧수염으로 형상화한 ‘떠돌이 찰리’가 창조됐다. 보자마자 포복절도할 정도로 웃기지만 시나브로 관객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인물형이다. 어느 봄날 오후, 도망치는 양을 쫓는 광경에 깔깔 웃다가 잡힌 양이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엉엉 울었던 어린 채플린은 삶에 담긴 복합적 진실을 일찌감치 깨닫지 않았을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그의 말에 육중한 질량감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탄탄대로를 걸을 것만 같았던 채플린의 커리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불어 닥친 반공주의와 매카시즘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었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로 연합국의 승리에 기여한 공적은 묻히고 미국 언론과 국민의 적대감을 사는 배우가 됐다. 할리우드가 채플린의 공로를 인정하고 특별상을 수여하기까지는 20여년이 흘러야 했다. 성과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그래서 팬터마임으로 세계인과 소통하려 했던 그가 말년에 정리한 인생관은 특별하지 않다. 변덕스러운 것이 운명이고 인간이기에 어떤 구상이나 철학보다는 늘 일어나는 문제에 맞서는 싸움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스터 채플린! 너무 힘겨운 생의 짐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요? “실망과 근심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탈출구는 철학이나 유머에 의지하는 것이다.”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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