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나만의 방’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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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후에는, 여성은 보호받는 성이기를 그만둘 것이라고 말입니다. 논리적으로, 그들은 한때 그들에게 거부되었던 모든 활동과 능력 발휘에 참여할 것입니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1929년 펴낸 <자기만의 방>에서 한 말이다. 울프가 거의 100년 후인 2020년을 지켜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여성이 이젠 모든 활동과 능력 발휘에 참여하고 있는 걸까.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 / 경향자료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 / 경향자료

19세기 후반부터 영국에서는 여성참정권 운동이 거셌다. 그 결과 1928년에는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이 주어졌다. 2016년 개봉한 영화 <서프러제트>는 당시 격렬했던 영국에서의 여성참정권 운동을 다룬다.

<자기만의 방>은 1928년 10월에 케임브리지대학 뉴넘칼리지와 거튼칼리지에서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여성의 권리 요구가 뜨겁게 분출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셈이다. 뉴넘칼리지와 거튼칼리지는 여성을 위해 설립된 대학이었다. 울프가 다룬 주제는 ‘여성과 픽션’이었다.

남성 심리에 대한 여성의 공헌

울프는 결론부터 내놓는다.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리고는 옥스브리지와 퍼남이라는 가상의 대학을 방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울프는 옥스브리지에서 오찬회에 참석했는데, 호화로운 음식과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반면에 여자대학인 퍼남에서의 정찬은 빈약했다.

중세부터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에 퍼부어진 엄청난 투자에 비하면 여자대학의 형편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울프는 이게 다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돈을 벌지 못해서였다고 개탄했다. 그중 누구라도 퍼남에 3만파운드만 남겨줬다면, 새고기 요리와 포도주를 곁들인 멋진 식사를 하지 않았겠냐고 반문했다.

울프는 여성이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로 확대해 주는 거울의 역할을 맡아 왔다고 봤다. 인생은 여성이나 남성 모두에게 어렵다. 그런데 인류의 절반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자신감이 북돋아지겠냐는 거였다.

울프는 이런 남성 심리에 대한 여성의 공헌이 여성 자신이 지불하는 식사계산서로 중단됐다고 말했다. 당당하게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숙식을 해결했으니 더 이상 남성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통과된 날, 울프는 숙모의 유산을 상속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정된 수입은 울프에게 마음의 변화를 가져다줬다. 울프는 자신을 헤칠 수 없으므로 이제 어떤 남자도 미워하지 않았다. 두려움과 신랄함은 연민과 아량으로 바뀌었고,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는 자유를 찾았다.

울프는 여성과 픽션의 관계를 역사 속에서 찾았다. 고대 아테네의 연극무대부터 셰익스피어의 주인공까지 남성이 쓴 ‘픽션 속 여성’은 남성과 같거나 더 위대하게 그려졌다. 그러나 실제의 여성은 거의 부재했다.

울프는 여성이 왜 글을 쓰지 않았는지를 물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울프는 주디스라는 가상의 셰익스피어 여동생을 만들어냈다. 16세기에 태어난 주디스는 놀랄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 겨울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디스는 오빠 셰익스피어만큼 교육을 받지 못했고, 오빠에게 주어진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울프는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그것을 발휘하지 못해 미쳐버린 무명의 제인 오스틴과 같은 여성들이 역사 속에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에서는 18세기 말엽에 와서야 중산층 여성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19세기 초엽에 이르면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 <제인 에어>를 쓴 샤로트 브론테 등이 나타났다.

남성 작가에 영향 미친 성차별 역사

민음사

민음사

울프는 오스틴, 브론테 자매가 공동의 거실에서 창작했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런 조건은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인 에어>에서 울프가 찾아낸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단절은 그 사례였다. 울프는 이 단절이 <제인 에어>의 흐름을 일그러뜨렸다고 봤다.

울프가 아쉬워했던 건 이것이었다. 이들에게 돈이 주어졌더라면, 더 다양한 지식과 실제적 경험과 더 많은 교제가 주어졌더라면, 이들의 천재적 재능이 더 활짝 피어났을 거라고 울프는 생각했다.

울프는 성차별의 역사가 남성 작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남성의 시선으로 실제 여성의 모습을 잡아내기 어렵다는 게 하나라면, 여성의 시선 없이 남성이 스스로의 모습을 전체로 볼 수 없다는 게 다른 하나였다. 울프는 누구나 자신이 볼 수 없는 ‘뒤통수에 있는 동전 크기의 반점’이 있기 때문에 다른 성만이 그걸 이야기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울프는 누구에게나 여성성과 남성성이 있고, 정상적이고 편안한 존재 상태란 그 둘이 조화를 이루며 살고 영적으로 협동할 때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울프가 보기에 셰익스피어는 양성적이었다. 마음속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발휘해 작품을 창작했다는 거였다. 한쪽 성의 측면에서만 창작할 경우 남성과 여성의 온전한 모습을 담을 수 없다는 거였다.

100년 후의 여성인 내가 울프에게 100년 후를 전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여성은 충분히 경제적으로 자립적이며 권리와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50년 동안 남녀평등에서의 점진적 성과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울프가 생각했던 100년이 충분히 긴 시간은 아니다. 여성의 임금은 여전히 남성보다 낮고, 일하는 직장에서 유리천장도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선 최근 여성의 안전을 요구한 강남역 시위, 성추행과 성폭행을 고발한 ‘미투’ 운동 등이 뜨거웠다.

젊은 여성들이 주도하는 이런 시위와 운동을 보면서 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제까지 살아오는 데 여성이라는 사실이 결코 적잖은 영향을 끼쳤음에도 여태 여성문제를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래전 건성으로 읽었던 <자기만의 방>을 다시 꼼꼼히 보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자기만의 방>은 서양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학 교양 교육의 필독서가 됐다고 한다. 자기만의 방이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만을 갖는 건 아닐 거다. 정신적 독립으로서의 의미 또한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50대를 맞이한 여성인 내게 정신적 독립으로서의 나만의 방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오랜만에 숙제다운 숙제를 받았다.

<성지연(국문학 박사·전 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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