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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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 사랑을 통한 신분계급의 화해

영국의 여성 작가로 우선 떠올리게 되는 이름은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다. 거기에 조지 엘리엇까지 더하면 19세기 영국 여성 작가의 명단이 채워지는 듯싶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그린 여성 작가의 계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울프는 의도치 않게(어쩌면 의도적으로) 한 작가를 제외했는데, 브론테 자매와 동시대를 살았던 엘리자베스 개스켈이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인데 영국에서도 20세기 중반까지 이름 대신 ‘개스켈 부인’으로 불렸다고 하니까 작가로서 걸맞은 대우를 받은 건 아니었다.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이미경 옮김·문학과지성사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이미경 옮김·문학과지성사

유니테리언 교회 목사의 아내였던 개스켈은 네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남편 내조와 자녀 양육에 많은 시간을 쓸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당대의 많은 여성처럼 ‘집안의 천사’ 역할에만 머물지 않았다. 선구적인 여권주의자로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회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6편의 장편소설 가운데 첫 소설 <메리 바턴>과 네 번째 <남과 북>은 노동자들의 현실에 주목한 ‘산업소설’로서 특히 주목을 끈다.

흔히 여성 장르로 분류되는 가정소설은 실제로 대부분의 작가가 여성이었지만, 여성 작가가 소위 남성 장르인 산업소설을 쓴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다고 <남과 북>의 성취가 희소성에만 빚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과 함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19세기 중반 영국사회의 변화상을 가장 잘 포착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변화를 담을 수 있었던 건 개스켈이 결혼해 남편과 정착한 곳이 맨체스터였다는 사실에 빚지고 있다. 맨체스터는 영국 북부의 대표적 산업도시였고, 개스켈은 이 도시의 사업가와 노동자를 자연스레 교회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남과 북>의 여주인공 마거릿은 남부의 시골 교구 목사의 딸이지만 아버지가 신앙적 갈등으로 목사직을 그만두면서 북부의 도시 밀턴(맨체스터가 모델이다)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곳에서 아버지로부터 교습을 받는 사업가 손턴을 만나지만 두 사람은 서로 부정적인 첫인상을 갖는다. 아직 전통적인 신분의식을 갖고 있던 마거릿은 상인이나 사업가를 혐오했는데 그들은 벼락부자가 된 하층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손턴은 자수성가한 인물로 아버지가 빚과 불명예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열네 살 때부터 절약과 노동으로 가장 노릇을 대신했고, 그런 모습이 투자자의 눈에 띄어 유망한 사업가가 된 인물이었다. 손턴에게 마거릿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오만한 아가씨로 비쳤다.

소설의 서사는 마치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처럼 두 사람의 ‘오만과 편견’이 해소되고 사랑을 확인하면서 결혼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의 화해가 계급적인 화해의 뜻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마거릿은 노동자 부녀와 만나면서 이들에 대한 동정심을 갖게 되고, 처음에 노동자들의 요구에 냉혹하게 맞섰던 손턴도 노동자들과의 대치 상황에서 자기 대신 돌을 맞고 쓰러진 마거릿의 희생에 감동을 받아 차츰 그들의 현실에 공감하게 된다.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많은 유산을 상속받은 마거릿이 손턴이 사업가로서 재기하게끔 도와주는 결말은 개스켈이 상상한 산업자본주의의 유토피아가 어떤 것인가를 엿보게 한다.

<이현우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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