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언니전지현과 나-디지털 세계에 투영된 현실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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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언니전지현과 나(People in Elancia)

제작연도 2020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86분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박윤진

출연 박윤진

개봉 2020년 12월 3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호우주의보

호우주의보

1999년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 게임 일랜시아가 탄생했다. 나름 선전했던 게임의 인기는 다른 경쟁작들에 밀려 급속히 시들해졌고, 2008년 이후에는 더 이상 업데이트 및 관리가 되지 않는 사실상 버려진 게임이 되었다. 하지만 서버는 유지되었고 아직도 이곳에 찾는 소수의 사람이 있다. 화려함과 스케일로 압도하는 게임들이 넘쳐나는 와중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이고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17년째 일랜시아를 놓지 못하고 있는 감독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에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보기로 했다. “일랜시아 왜 하세요?”

‘내언니전지현’은 감독이자 주인공인 박윤진이 일랜시아 속의 캐릭터에게 부여한 이름이다. 처음 게임을 시작할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연예인이 전지현이었던 이유란다. (남동생의 캐릭터 이름은 ‘내형은권상우’다.) ‘나’는 당연히 감독 스스로를 지칭한다. 결국 두 개의 세계에서 다른 이름으로 사는 하나의 객체를 스스로가 기록한 영상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보는 이를 압도한다. 투박한 편집과 기교로 전개되는 화면은 관객을 방심하게 만들고, 그 틈을 노려 쏟아지는 인터뷰이들의 애증과 진심이 가득한 소회는 잠시도 딴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게임에 문외한인 사람들이라 해도 영화 내내 가득한 엉뚱함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존재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것들

제작사의 관리와 업데이트가 멈추며 게임 속 가상세계는 무법천지로 변해갔다. 캐릭터의 레벨을 상승시키기 위한 편법들이 당연시됐고, 악의적 버그를 심어놓은 사람들 때문에 접속 자체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많은 사람이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꾸준히 이곳을 찾았지만, 누구도 거부하거나 대항하지 못했다. 평범한 유저일 뿐인 그들의 능력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뚜렷한 오류와 부조리들은 어느새 묵묵히 받아들여야 할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영화는 요소요소에서 현실과 게임 속 풍경을 중첩시킨다. 발버둥 쳐도 능력과 노력으로는 개선할 수 없는 것들을 실감하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위안과 희망을 찾는 디지털 세상 속 그들의 모습은 유감스럽게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추억과 평안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나마 가장 행복했던 때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차라리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이곳에서만 접할 수 있는 위로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단다. 그래서 떠날 수 없단다. 각자 형태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곳의 소중함을 공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행복은 ‘평등’이라고 단언한다. 특별한 재력이나 능력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바람 역시 영화 가득 느껴진다. 그 어떤 항변이나 절규보다 절절하게 와닿는다.

독특한 소재와 제작방식으로 완성된 영화

소재만큼 영화의 제작과 개선 과정도 보통의 영화들과 달랐다. 영화학과를 다니던 감독은 언제 없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위태로운 게임에 대한 추억을 하루라도 빨리 영화로 남기고 싶었다. 졸업작품을 준비하며 비로소 그 계획을 실천하기로 작정하지만 정작 지도교수들의 반응은 애초 관객층이 협소하다는 이유로 냉담했다. 낙심한 그는 학교를 빠지고 대신 영상제작교육단체인 미디액트를 수강하며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그 결과물로 2019년 후반 40분짜리 단편으로 첫 번째 <내언니전지현과 나>가 탄생했다. 이후 꾸준한 편집과 보완작업을 통해 71분짜리 장편으로 새로운 두 번째 버전이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지난 5월 개최된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공개되며 많은 화제를 낳았는데 이후 게임 제작사에서 연락이 오고 유저들이 그렇게나 염원했던 간담회가 성사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 개봉하는 작품은 넥슨 관계자와의 만남, 개발자 인터뷰, 유저 간담회 등의 뒷이야기까지 추가해 86분으로 새롭게 편집한 버전이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그동안 사회문제나 종교, 정치적 이슈에 편중되어 제작되어왔던 한국 다큐멘터리 시장에 사실상 처음 등장한 팬덤 문화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문화시장의 막강한 이슈, 팬덤 문화

호우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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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Fandom)’은 열광자 또는 광신자를 뜻하는 ‘Fanatic’에서 파생된 팬(Fan)에 상태, 지위, 영토를 뜻하는 접미사 ‘-dom’을 붙여 만들어진 단어다. 사전적으로는 공통적인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공감과 우정의 감정을 함께하는 특성으로 구성한 하위문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꾸준히 존재했을 테지만 단어에 합당한 구체적 사례의 기록은 19세기 말부터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별나게 보며 폄하하는 시선도 없지 않았지만, 다양한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지금은 전문적 식견의 새로운 형태로 대접하고 있기도 하다.

당연히 이를 다룬 영화들도 많다. 과거에는 특정 팬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관찰자적 접근이 많았던 데 비해 최근에는 팬덤 내에 속해 있는 구성원 스스로가 대상을 향한 애정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경우도 많다.

형태도 기록물 형태를 취하는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원작의 영상과 음악 등을 편집·합성해 새로운 영상물로서 만드는 매드 무비(Mad Movie), 아예 새로운 의미와 창의를 더하면서도 전문가의 기술에 버금가는 완성도로 만들어지는 팬 무비(Fan Movie)의 형태까지 다양하다.

영화매체 자체가 팬덤의 중요한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스타워즈>는 대표적인 상징이 된 작품. 오리지널 이후 발표된 함량 미달의 속편들과 외전 그리고 이를 빌미로 생산된 무수한 상품들에 대한 지속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명성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은 초자연적인 팬덤의 힘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이밖에도 <빽 투 더 퓨쳐>, <13일의 금요일>,

<마이 리틀 포니> 등 무수한 영화와 영상물들이 팬들의 지지와 사랑으로 상품성과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신작 영화들도 팬덤을 흥행성공의 중요한 관건으로 인식하고 마케팅의 중요한 포인트로 삼고 있지만 애초 자발성을 전제로 한 팬덤을 이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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