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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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년 전 아이들 앞에 나타난 성모마리아

제목 파티마의 기적(Fatima)

제작연도 2020년

제작국 미국, 포르투갈

상영시간 113분

장르 드라마

감독 마코 폰테코보

출연 하비 케이틀, 스테파니 길, 고란 비스닉 외

개봉일 2020년 12월 3일

등급 12세 관람가

㈜스톰픽쳐스 코리아

㈜스톰픽쳐스 코리아

1917년의 일이니까 벌써(!) 100년이 넘었다. 100년 전이라고 하지만, 그때 문명은 꽤 진보한 상태였다. 그냥 구전만은 아니고 수많은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적’의 순간은 영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은 스틸사진이다. 그날 있었던 사건은 믿는 자와 불신자의 회고담 속에서 재현될 수밖에 없다. 물론 누락되고 고의로 이야기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파티마에서 양치기하던 아이들-말 그대로 아이들이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루치아가 열 살이었고, 남자아이 프란치스코가 여덟 살, 막내 격인 히야친타가 일곱 살이었다. 그들은 사촌지간이었다. 5월 13일, 파티마의 ‘코바 다 이리아’라는 곳 담벼락 옆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은 천둥 번개가 두 차례 친 뒤, 그들 앞에 나타난 성모마리아를 만난다. 성모마리아는 앞으로 매달 13일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약속하며 “열심히 묵주기도를 하라”고 당부한다. 성모발현 이야기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포르투갈을 휩쓴 성모발현 소문

당시 1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휩싸여 있던 포르투갈 정부당국은 이 ‘루머’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다. 성모는 나타나 축복만 한 것이 아니라 뭔가 미래와 관련한 예언도 내놓았다는 이야기가 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모가 예언을 내놨다는 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사실이었다. 무려 로마 바티칸이 보증하고 있다. 성모예언의 내용은 지금도 정리가 되어 교황청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성모가 “세상에 알려도 된다고 할 때까지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던 제3예언도 지난 2000년 5월 13일, 성모발현 83년 만에 공개됐다. 그 내용이 무엇일까를 두고 불타올랐던 음모론 떡밥은 식었지만.

영화는 사건을 충실하게 재현한 느낌이다. 파티마의 기적은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는데,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클립 등을 보면 아무래도 복음 충만 분위기가 강하다. 실제 세 아이의 사진을 보면 영락없는 시골에서 학교 문턱도 구경 못 한 티가 좔좔 흐르지만, 1950년대 영화 속 루치아나 아이들은 ‘베이비붐 세대 부모가 지은 교외주택에 살며 일요일엔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 순한 아이들’ 같은 외모를 하고 있다.

2020년 버전의 영화도 어느 정도 그런 측면은 있다. 루치아 역을 맡은 소녀는 낙관주의랄까, 신심이 넘친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냐고 다그치는 엄마나 주교 앞에서도 당당하게 미소로 응답한다. ‘종교적 신심 뿜뿜’으로 만든 영화인 듯싶지만, 영화에선 (무려!) 하비 케이틀이 한참 세월이 흐른 1989년에 이 사건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을 담은 책을 준비하면서 그때까지도 수녀로 생존해 있던 루치아를 찾아가 대화를 하는 장면을 얼개로 하고 있다. 주로 듣는 위치라 하비 케이틀이 분한 니콜 교수의 생각은 질문 중에 간접적으로 노출된다. 리처드 도킨스처럼 전투적인 무신론이라기보다 ‘역사 이전의 종교’, 즉 인간의 근본적 본성 중 하나로 종교를 인정하는 마이클 도킨스와 같은 유연한 회의주의(skepticism)에 가까운 입장쯤으로 보인다.

천주교가 파티마의 기적을 승인한 까닭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니콜 교수와 수녀 루치아가 믿음을 두고 어떻게 규정할까 논쟁하는 대목이다. ‘이해의 끝에 믿음은 시작된다’는 테제와 ‘진실탐구가 곧 믿음’이라는 ‘신념’이 충돌한다. 천주교에서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일이라 뭐라 덧붙이기는 그렇지만, 진짜로 그 일이 일어났을까 회의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가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틈새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덕목일 것 같다.

굳이 뇌과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에 대해 안다. 이미 수많은 실험을 통해 우리가 틀림없이 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기억들은 견고한 기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변형되고 누군가의 암시에 의해서 쉽게 조작될 수 있는 불안정한(fragile) 것이라는 것을. 목격한 여인에 대한 루치아의 강렬한 ‘신념’은 다른 두 아이도 전염시켰을 것이며, 5개월 뒤인 10월 13일에는 파티마의 언덕에 모여든 수만명의 군중까지 일순 휩쓸려 비 온 뒤 갠 하늘에서 태양이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패닉에 휩싸이게 했다.

교황청이 이 기적을 공식추인해준 덕분에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한번 도전해볼 만한 주제다. 103년 전 파티마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여전히 궁금하다.

종말론의 단골 소재 파티마 제3예언 알린 고토 벤

경향자료

경향자료

독실한 천주교 신자와는 별도로, ‘파티마의 기적’을 대중적으로 알린 공헌을 한 인사가 있다. 일본의 저술가 고토 벤(五島勉)이다. 그의 책을 처음 읽은 게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니 40년 전쯤인데, 그는 올해 6월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 2018년 1월 일본주간지 ‘문예춘추’가 그를 인터뷰했다. 주로 알려진 것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관련한 그의 여러 저작이다. 그의 저작에서 또 하나의 축이 바로 이 파티마의 기적, 그리고 그때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제3예언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책을 썼을 때는 이 예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을 때다. 지금에 와서 회상해보면 그래도 그 내용의 핵심 부분은 흘러나왔던 것 같다. 과거 언론계에서 ‘후라이 기사’라고 불리는 종류의 글이 있었다. 그건 몇조각 안 되는 팩트에 상상력을 덧붙여 생생한 이야기로 가공하는 것이다. 당시 고토 벤이 갖고 있던 단편적인 정보는 ‘사람들이 죽은 가운데 교황이 홀로 바티칸을 걸어나온다’는 정도로 추정된다. 그는 그걸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연결시켜 중동전쟁에서 시작되는 제3차 세계대전, 그리고 지구 종말의 시작이라고 거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 ‘문예춘추’ 인터뷰를 보면 주간지 기자였던 그가 일종의 돈벌이수단, 그러니까 사이드 잡으로 책을 썼다고 솔직히(!) 말하고 있다. “1999년 7월에 지구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틀리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해선 “당시 책에다 ‘희망’을 거론하는 식으로 예언이 틀리길 기대한다고 적기는 했지만, 어쨌든 일부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도록 한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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