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런(RUN)
제작연도 2020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90분
장르 미스터리
감독 아니쉬 차간티
출연 사라 폴슨, 키에라 앨런, 사라 손 외
상영시간 90분
개봉 2020년 11월 20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런(run),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의 한 장면이다. 돌을 던지다 자전거를 타고 쫓아오는 못된 아이들을 피해 달리던 장애인 소년의 의족이 부서지고, 멀쩡하게 잘 달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풀숲을 지나 죄수들의 노역 현장을 거쳐 마을 중심가까지. 이게 가능한 걸까. 아니면 주인공의 머릿속에서만 벌어지는 소망적 사고?
영화 <서치>(2018)를 만든 아니쉬 차간티의 두 번째 영화제목이 <런>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번에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까 궁금했다. 실리콘밸리의 한국계 가정 소녀의 실종 이야기를 다룬 <서치>는 스크린 대부분을 컴퓨터 화면과 CCTV로 채우면서 화제를 모았다.
<서치>로 전 세계 주목을 끈 감독의 신작
<서치>의 경우도 스토리텔링의 형식만 달랐을 뿐 이야기의 구조는 전통적인 스릴러 장르였다. 그리고 이번에 공개한 차기작 <런>은? 역시 마찬가지다. 감독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놀라운 이야기의 힘을 믿는 것 같다. 영화의 첫 장면. 응급상황에 부산하게 움직이는 의사들 사이를 카메라가 비집고 들어가면 나오는 것은 이제 막 태어난 앙상한 어린아이다. 그리고 엄마. 자기 아이를 만나러 가는 엄마의 배경은 의료진들의 숙연한 모양새다. 이 장면의 연출과 관련해서는 신 바이 신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기뻐하지 않는 의료진’의 얼굴은 노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 엄마(영화의 크레딧에도 엄마(mother)로 표기되어 있다)의 표정 변화를 이끄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라 의료진의 몸짓에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하반신 마비 장애인 청소년이 된 클로이. 워싱턴주 시애틀 교외의 외딴 시골에 엄마와 살고 있다. 오매불망 기다리는 것은 대입허락 레터지만 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자신만의 신념에 갇혀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그들이 먹는 것 대부분은 어머니가 뒤뜰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다. 이 어머니가 가진 신념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클로이는 어느 날 어머니가 가져온 약병에서 어머니의 이름을 발견하고 의혹을 품는다. 저 약이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처방받은 것이라니.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어머니의 시도는 집요하다. “요새는 약병에 처방전을 붙인다”라고 둘러댔다가 딸 이름으로 받은 것처럼 스티커도 위조했다.
클로이는 자신의 운명과 관련한 뭔가 커다란 은폐된 진실의 끄트머리를 이제 막 잡은 참이었다. 하필이면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창밖의 어머니 동태를 살펴보면서 클로이는 아무 번호나 눌러 자신이 먹었던 약의 성분에 대해 구글 검색을 해달라고 한다. 무심코 상대방이 알려주는 검색 정보는 그 약이 동물의약품이라는 것이다. 이건 도대체 뭐지?
영화의 중의적 해석 가능성
영화를 보면서 계속 염두에 뒀던 것은 서스펜스·스릴러 영화의 주관적 시선을 뒤집을 수 ㅍ있는 단서가 제공되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신념체계나 인간관계가 단절될 때 인간의 시야는 좁혀지게 마련이다. 한국공포영화에서 신분 상승 내지는 추락의 메타포로 사용되던 계단이라는 공간적 배치도. 이 영화에서도 그런 중의적 의미의 연출이 없진 않다. 클로이가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는 좁은 방으로 뒷걸음질 쳐 들어간다. 퇴로가 없는. 자신이 설정한 상상의 세계에 갇히는 터닝포인트가 되는 은유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객은 중의적이지 않고 직선적으로 영화가 설명하는 사건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게 되는 의문은 이것이다. 어머니(다이엔)는 무엇을 위해서 세상과 유폐된 채 ‘딸’과 둘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가 지키고자 하는 신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에필로그처럼 첨부된 ‘딸’의 복수 내지 앙갚음의 의미는? 그러나 또한 대부분의 관객은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떠올랐던 의문은 잊어버리고 일상의 세계로 복귀하게 될 것이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영화제목은 왜 ‘런’이었을까. 현실세계에서 포레스트 검프가 뛰는 장면과 같은 기적은 결코 없음을 우리는 안다. 인터넷 밈까지 된 그 영화의 유명한 장면 역시 일종의 은유다. 여기서 ‘런’은 메타포다. 문자 그대로 달리기가 아니라 탈주이자 벗어남이다. 성장기의 모든 존재가 본능적으로 갈망하는 것 아니던가.
“<서치>는 어떨까.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건 ‘분명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장르가 탄생한 것이지만, 과연 아니쉬 차간티 감독은 이 재기발랄한 첫 영화를 넘어서는 영화적 혁신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원히트 원더’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2년 전 <서치> 리뷰 기사 말미에 쓴 말이다. 원히트 원더, 그러니까 영화 <런>은 <서치>만큼 주목받기는 어려운 영화가 될까.
영화사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서치>는 생각 이상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다. 역시 보도자료를 인용하자면 <서치>는 ‘제작비 대비 75배의 월드와이드 흥행을 기록’했으며, ‘국내에서는 295만 관객을 동원하며 <나를 찾아줘>(2014)가 지니고 있었던 외화 스릴러 흥행 1위의 타이틀을 탈환’하기도 했다(탈환이라니, 전에도 1위를 기록한 적 있다는 말일까).’
지난 20세기 말부터 영화 역사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영화들이 평가받는 수단이 ‘제작비 대비 흥행’이다.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시원이 된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1998)도 마찬가지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부분을 컴퓨터 화면과 CCTV로 채운 <서치>의 경우, <블레어 위치>보다 더 저예산이지 않았나 싶다.
영화사 측은 <런> 보도자료에서 “11월 20일 전 세계 최초 개봉”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외국의 리뷰를 보면 아직 한국에는 진출하지 않은 훌루(Hulu)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공개되었던 모양이다.
홍보전략을 보면 영화에서 어머니 역을 맡은 사라 폴슨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글래스>, <오션스 8>(2018)과 같은 영화에도 출연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TV스크린에서 주목을 받는 배우다. <아메리칸 호러스토리>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클로이 역의 키에라 앨런의 연기를 주목했다. 인터뷰를 보니 감독도 그랬던 모양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