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권위는 법복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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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 연방대법관은 1993년 대법관 취임 직후부터 검은 법복 위에 리본이나 레이스 칼라(collar·목둘레 장식)를 걸쳐 입었다. 일종의 파격이었다. 그는 대법원 다수 의견, 소수 의견 어느 쪽에 속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양새의 칼라를 걸쳤다. ‘법복 위 칼라’ 패션은 생전 여성·소수자 인권을 대변하는 판결을 내던 긴즈버그 대법관의 상징물이 됐다.

지난 9월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 연방대법관의 영정이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회 의사당에 안치되어 있다. / EPA연합뉴스

지난 9월 별세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 연방대법관의 영정이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회 의사당에 안치되어 있다. / EPA연합뉴스

우리나라 법원에선 이런 광경을 볼 수 없다. 철저히 규격화되어 있는 법복 규정 때문이다. 재판에 임하는 판사들은 대법관에서 배석판사에 이르기까지 같은 모양의 법복을 입는다. 법복 위에 뭔가 걸치는 건 언감생심이고, 타이 핀을 끼거나 귀걸이를 거는 정도가 ‘차별화’의 거의 전부다.

법복에 관한 규정이 처음부터 엄격했던 건 아니었다. 대한제국 시기 반포된 ‘평리원 이하 각 재판소 사법관 및 주사 재판정복규칙(1906년)’을 보면 사법관은 둥근 주황색 목둘레에 좁은 소매의 흑색 도표에 검은 사모, 붉은색 허리띠, 검은빛의 사슴 가죽으로 목을 길게 만든 장화 모양의 신발 ‘화자’를 신게 되어 있었지만 정작 법복을 반드시 착용했단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해방 직후엔 법복에 관한 규정이 없어 법관들이 두루마기나 양복 등 일상복을 입고 재판에 임했다.

‘규제’가 생겨나기 시작한 건 정부 수립 이후부터다. 1953년 ‘판사, 검사, 변호사, 법원 서기 복제규칙’이 생겼다. 대한민국 최초의 법복과 법모는 모두 검은색이었다. 법복 앞가슴과 법모 앞쪽엔 무궁화 무늬 안에 각각 작은 무궁화와 태극장을 새겼다. 1966년 ‘법관복에 관한 규칙’이 제정되면서 “법관은 법정에서 법관복을 입는다”라는 규정이 생겼다. 법모가 없어진 대신 넥타이 착용 조항이 신설돼 이때부터 법관들은 지급받은 넥타이를 매야 했다.

현행 ‘법관, 사법보좌관 및 법원사무관 등의 법복에 관한 규칙’은 법복의 모습을 세세히 규정하고 있다. 검은색 옷감 위에 법원 상징 문양이 있는 검자주색 양단을 댄 모습이다. 앞단 양옆엔 각각 3개의 수직 주름이 잡혀 있고, 길이는 발목과 무릎의 중간 정도쯤이다. 소매 길이는 소매를 살짝 덮는 길이에 배래는 두루마기 소매처럼 곡선이고, 목덜미 중심엔 한국 전통매듭이 붙어 있다.

남성 법관은 법원 상징 문양이 새겨진 짙은 회색 넥타이, 여성 법관은 옅은 은회색 에스코트 타이를 받는다. 이 넥타이는 여름에도 매야 한다. 대법원 규칙상 법원사무관 등은 하절기에 넥타이를 착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이 있지만, 법관은 예외규정이 없어서다. 법관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 못생긴 넥타이를 벗지 못하는 이유다. 보다 못한 대한변호사협회는 2009년 “대통령과 장관들도 노타이로 국무회의를 하는데 사법부만 복식을 고집할 이유가 있느냐”며 복장 간소화를 권했지만. 대법원은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법관이 법복을 뒤집어 입든, 청바지를 입든 국민에겐 중요한 일이 아니다. 법정의 권위를 세우는 힘은 좋은 재판에서 나오지, 법복에서 나오는 건 아니라서다. 국민이 사법부에 기대하는 건 빈틈없이 갖춰 입은 법복이 아니라 자신의 재판을 한번이라도 더 보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백인성 변호사(KBS 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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