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의사와 기본소득」 책 출간한 프리랜서 의사 정상훈씨 “기본소득, 삶을 다채롭게 한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최근 <동네 의사와 기본소득>이라는 책을 출간한 정상훈씨(49). 지난해까지 네팔에서 의료 구호활동을 하다 돌아와 지금 프리랜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동네 의원의 의사들이 휴가를 간 사이 대신 진료를 봐준다. 코로나19로 일거리가 줄었지만 지금도 한달에 며칠씩은 의뢰가 온다. 그렇게 일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한달 월급 정도를 받는다. 정씨는 이 보수를 ‘기본소득’ 삼아 책을 쓸 수 있었다.

「동네 의사와 기본소득」의 저자 정상훈씨가 11월 9일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동네 의사와 기본소득」의 저자 정상훈씨가 11월 9일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처음에는 그도 기본소득 회의론자였다. 대체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소득을 준다니 황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10년 사이 생각이 바뀌었고, 지금은 국민 모두에게 월 6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을 주장하는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계기가 있었다. 국제구호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하면서다. 아르메니아와 레바논 등지에서 의료구호활동을 하면서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한국의 진료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본소득으로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고통을 감내하면서 생계 때문에 치료를 미룰 필요가 없을 터였다.

그는 지난 11월 9일 주간경향과 만나 “의사면허 덕에 삶에 닥친 사고와 우연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것엔 감사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에서 소수에 불과하다”면서 “삶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지금 기본소득은 사고나 우연이 가족과 생명을 포기하는 극단의 상황으로 가는 걸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진료하면서 만났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기본소득의 구체성을 더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 등 소수자와 취약계층의 삶에 주목했다. 성소수자는 코로나19보다 경제적 고립에 의한 ‘사회적 죽음’에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기본소득은 이들이 차별과 혐오에도 생존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다.

기본소득은 다른 복지제도와 달리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일을 적게 하면서도 생활하기 충분한 소득이 있다면, 돈으로 평가받지 못한 일들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다. 마을 가꾸기나 정치활동, 해외구호활동은 물론 소소한 창작활동도 시작할 수 있다. 삶은 훨씬 느긋해지고, 다채로워진다.

기본소득 재원은 시민배당과 토지배당, 탄소배당, 데이터배당으로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시민배당은 모든 시민이 소득의 15%를 ‘시민재분배기여금’으로 낸 후 돌려받는 것이다. 탄소배당은 탄소 1톤당 10만원의 탄소세를 부과해 재분배하는 것이다. 그는 “기후위기라는 명분이 있어서 탄소배당이 가장 설득력 있지만 사회의 공통부에 기반해 모두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참여해 분배받는다는 점에서 시민배당이 기본소득의 정신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이 있다면 코로나19로 감염 확산의 위험이 있는데도 억지로 일터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다음이 보장되지 않은 재난기본소득보다 훨씬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정씨는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면 나 혼자 잘한다고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이라면서 “감염병 위기가 자주 돌아올 것이 예상되는 지금 불안감과 공포는 모두의 연대로 극복할 수 있고, 그 계기가 기본소득일 수 있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주목! 이 사람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