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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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나에게 힘을 주는 ‘보약’

1995년 봄, 생방송 프로그램에 가수 김광석을 섭외하라는 ‘명령’이 나에게 떨어졌다. 당시 나는 갓 개국한 케이블TV 방송국의 1년차 AD였다. 케이블TV 방송은 그해 봄, 처음 시작됐고, 나는 한 해 전 불교TV 공채시험에 합격해 입사했다.

[내 인생의 노래]김광석 ‘일어나’

신문사에서 방송국으로 옮겨 두 번째 직장이었다. 직업이 방송국 PD로 바뀌었지만, 방송과 연예 분야에 관한 한 문외한이었다. 첫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아주 큰 텔레비전을 샀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섭렵하겠다는, 당찬 의지였다. 그때까지 쇼 프로그램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가수 김광석의 존재조차 잘 알지 못했다. 김광석에게 전화하니 대학로의 한 소극장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급하게 대학로를 찾아갔다. 사전에 파악한 지식은 거의 없었다. 그의 노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지하에 공연장이 있었다. 2층 사무실로 들어갔다. 누군가 한 명이 앉아 기타를 치고 있었다. 약간 어두웠다.

“김광석을 만나러 왔는데요.”

“제가 김광석인데요.”

결례를 했다. 그를 앞에 두고 몰라보다니. 아마 그는 자기를 몰라보는, 나 같은 사람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이 한창 인기를 끌 때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유행했는데, 나는 그와 그의 노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하는 만큼 진면목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섭외에 흔쾌히 응했다. 사찰에서는 붓다의 출가일인 음력 2월 8일부터 열반일인 음력 2월 15일까지를 불교도 경건주간으로 정해 행사를 갖는다. 경건주간 행사 때 서울 조계사 앞마당에서 김광석은 노래를 부르고, 불교TV는 위성생중계를 하기로 돼 있었다.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자, 그가 노래를 정했다. ‘일어나’였다. 그의 노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어서 순순히 그 노래로 결정했다.

섭외를 마치고 생방송 때까지 나는 선곡이 잘못됐다고 후회했다. 법당 안에서는 법회를 경건하게 하고 있을 터였다. 법당 밖이라고 하나 절마당에서 경쾌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혹시 나중에 제작국장이나 제작부장한테서 꾸지람을 듣지 않을까 걱정했다.

현장에서 생방송을 진행하고 방송이 끝났을 때, 오히려 나는 주위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노래가 행사와 잘 어울렸다고 한다. 첫 생방송으로 정신이 없어 그때 어떤 분위기였는지 스스로 평가하기 힘들었다. 방송국으로서는 개국 이후 처음으로 한 위성생중계였을 것이다. 이후 한 1년 동안 나는 동기생들 사이에 ‘위성생중계 전문’ AD로 불렸다. 위성생중계가 있기만 하면 차출됐다.

나의 첫 생방송에 와서 노래를 불러주었던 김광석은 안타깝게도 그다음 해 고인이 됐다. 뒤늦게야 나는 그의 ‘광팬’이 됐다.

그다음 해 급성 간염으로 병원에 한동안 입원한 적이 있었다. 하루아침에 건강을 잃으니 모든 것이 힘들었다. 그때 ‘일어나’라는 노래를 자주 들었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불교에서는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는 말이 있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한 말이다. 당시 김광석의 노래가 힘이 되어 땅을 짚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가끔 힘이 들면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애송이 PD 시절부터 기자 시절까지 이 노래는 나에게 늘 힘을 주는 ‘보약’이 됐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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