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아 ‘그러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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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질 때는 위로를, 들떠 있을 때는 차분함을

음악을 이곳저곳에서 수집해 듣는 편이다. 카페나 식당에서 귀에 꽂히는 노래가 나오면 노래를 인식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켠다. 그때그때 확인한 뒤 노래를 스트리밍 목록에 수집해둔다. 어떤 뮤지션인지 자연스레 찾아보게 된다. 지금은 카페에서 문소문의 ‘내 유언은 썰렁한 농담’이 흘러나와 앱으로 확인한 뒤 저장했다. 처음 알게 된 가수다.

[내 인생의 노래]선우정아 ‘그러려니’

잔잔한 재즈풍의 노래가 여럿 모였다. 재즈를 잘 모르는데 수집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어떤 노래를 가장 많이 들었을지도 궁금해졌다. 음악 스트리밍 앱을 켜 ‘감상 이력’을 찾아봤다. 정작 옛 연인을 그리워하는 가요가 수집한 노래를 제치고 재생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다. 20~30대 남성이라면 언제쯤 집중적으로 들었을지 어림짐작할 수 있는 노래들이다. 대부분 뒤늦은 후회를 호소하는 지질한 남성 화자의 노래라고 해야 하나.

김동률의 ‘답장’(나 그때로 다시 돌아가 네 앞에 선다면 하고 싶은 말 너무나 많지만·573회)과 015B의 ‘1월부터 6월까지’(결국 그녀에게 상처만 줬네요 진짜 내 맘 그게 아닌데·512회)가 최상위권이었다. 앞의 두 곡과 분위기가 다른 요조와 김진표의 ‘좋아해’(정신없이 살다가도 거짓말처럼 막 보고 싶고 그래·373회)가 뒤를 이었다.

고단한 일상에서 즐겨 듣는 노래는 조금 다르다. 선우정아의 ‘그러려니’는 이동하며, 기사 쓰며, 누워서 반복 재생해 듣는 노래다. 지난 11월 3일 기준으로 음악 스트리밍 앱에서 435회 재생해 들었다. ‘그러려니’도 2년 전 어느 가을날, 카페에서 우연히 듣고 음악 스트리밍 앱에 저장했다. 그날 선우정아를 알게 됐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깔리는 전주부터 멜로디는 서정적이다. 피아노 선율은 5분 27초 동안 반복된다.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로 시작하는 노랫말은 담담하다. 기분이 처질 때는 위로를, 살짝 들떠 있을 때는 차분함을 준다. 선우정아는 이 노래를 두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일상적인 슬픔은 삭히게 된다. 누구에게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유난 떨지 않아야 하는 게 미덕으로 요구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곡은 슬픔에 겨워 마음껏 고조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미련이 없다는 말은 되돌리기 어렵다는 걸 받아들인다는 뜻일 거다”라고도 썼다.

한때 ‘그러려니’는 휴대전화 통화 연결음이었다. 내게 전화를 건 40~50대 남성 취재원 두 명이 “노래가 좋네요”라고 운을 뗀 뒤 “통화 연결음 제목이랑 가수가 누구예요?”라고 물어왔다. 평소 무뚝뚝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이들이었다. 나는 신나서 “선우정아의 ‘그러려니’라는 노래예요. 노래 차분하면서 슬프지만 듣기 좋죠?”라고 답했다. 그들이 나중에 노래를 찾아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선우정아와 ‘그러려니’의 외연을 넓힌 것 같아 뿌듯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선우정아의 ‘구애’(당신을 사랑한다 했잖아요, 안 들려요? 왜 못 들은 척해요)나 ‘이혼’(잘못된 건 하나니까 편하고 오래된 사랑), ‘Ready·레디’(다 가식이었나 우리가 나눈 그 마음은)도 자주 듣는다. 모두 어딘지 모르게 헛헛한 가을에 꼭 어울리는 노래다. 선우정아 유튜브 채널에 올라오는 온라인 공연 ‘재즈 박스’도 즐겨 듣는다. 요즘 같은 시절 즐길 수 있는 값진 비대면 콘서트이니 모두 한 번씩 들어보시길.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간다
끊어진 연에 미련은 없더라도
그리운 마음은 막지 못해
잘 지내니
문득 떠오른 너에게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겠지
대답을 들을 수 없으니
쓸쓸히 음 음
그러려니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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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오늘을 생각한다
아동학대, 나아진 게 없다
지난 6월 10일 경기 수원시청 앞에서 수원시 장안구의 한 민간어린이집에서 벌어진 집단 아동학대 관련 기자회견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가해자들의 범죄행위에 치를 떨면서, 피해 아동 보호자들이 지친 마음과 몸을 이끌고 기자회견을 하게 만드는 망가진 시스템에 분노한다. 만 2세 반 어린이 13명에게 2명의 교사가 상습 폭력을 가했다. 경찰이 확보한 35일 치 CCTV에서 350건의 학대 행위가 발견됐고, 가해 교사 2명과 원장이 상습 아동학대와 방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러나 피해 가족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원장은 아무런 행정 처분 없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고, 가해 교사 2명은 자진 사직했기에 자격정지 등 처분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수원시는 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다 했다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 가족들은 수원시 행태가 마치 2차 가해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아동들은 여전히 불안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자다가 몇 번씩 잠에서 깨는 한 어린이는 “꿀향기반 선생님들이 자기를 데리러 올까봐 무섭다”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작은 소리에도 몸을 움찔하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지난 1월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 신고, 언론 보도가 이어졌지만 5개월 동안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만 2세 어린 아기들을 밀치고, 넘어뜨리고, 머리채를 끌어당기고, 냅다 던져버리는 영상을 보며 엄마·아빠들의 마음은 지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