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두렵지 않아
언제나 나에게 니가 있는데
니 생각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강해지는 걸
넌 나의 변치 않는 영웅이잖아
You’re my hero x 4
이젠 피하지 않아
세상에 당당히 서는 거야
망설임에 갇혔던
내 모습을 이제 찾아준 너
넌 나의 변치 않는 영웅이잖아
You’re my hero x 4
문학경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인천에 연고를 둔 SK와이번스를 응원했다. “야구장 갈래?” 그는 이따금 가족을 꼬드겼다.
“경기 보다 먹을 거 떨어지면 서운하잖아.” 과일을 깎고 주전부리를 잔뜩 쌌다. 우리는 항상 외야로 갔다. 아버지가 널찍한 시야로 경기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항상 한칸 떨어져 앉았다. 9회 말까지 조용히 야구만 보았다.
나도 자연스레 와이번스 팬이 됐다. 친구들과 갈 때면 자리선정부터 달랐다. 응원석에 자리를 잡고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한번은 응원단상에 올라 춤을 추고 피자 몇판을 받았다. 옆 관중들과 나눠먹었던 기억이 난다. 맥주 빨리 마시기 게임에도 참가했다. 물론 우리는 콜라로 대신했다. 덕아웃과 구장 내부를 구경할 기회도 있었다. 구단이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 개념을 도입하던 때였다.
고등학생이던 2007년. SK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상대는 두산베어스. 꼭 현장에서 경기를 보고 싶었다. 어렵게 10월의 토요일 낮 잠실에서 열리는 5차전 표를 구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던 내게 서울에 가는 건 꽤 큰 일이었다.
경기 당일 친구와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공기가 찼지만 볕이 좋은 날이었다. 상대팀에서 유독 병살타가 많이 나왔다. 결과는 4 대 0, SK의 승리였다. 경기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응원가를 부른 기억이 생생하다. 결국 6차전 끝에 SK가 우승했다.
그 무렵 귓가에 맴돈 노래가 있다. 밴드 드왑(DeWarp)의 ‘You’re my hero’다. 4번 타자 이호준 선수가 타석에 등장할 때마다 흘러나왔다. 내 유니폼에는 ‘소년장사’ 최정 선수의 이름과 등번호를 새겼는데, 정작 이 노래가 뇌리에 콕 박혔다. 발랄한 느낌에 여성 보컬이 매력적이다. “넌 나의 변치 않는 영웅이잖아.” 노랫말도 ‘거포’에게 어울렸다. 테마송의 주인공이 이적한 뒤에도 노래는 나의 재생목록에 남았다. 야구의 재미를 알려주신 부모님에게도, 지금 그 재미를 함께 나누고 있는 사람에게도 선물하고픈 노래다.
대학에 가고 난 뒤에도, 직장인이 돼서도 종종 야구장을 찾았다. 놀이터, 휴식처 같은 곳. 때론 오붓한 데이트 장소였다.
이제는 돈 번다고 몇만원 하는 테이블석도 덥석 예약한다. 콜라 아닌 맥주를 마신다. 같이 야구를 보러가던 단짝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어쩌다 나는 OB베어스 어린이회원 출신이라는 두산베어스 골수팬과 산다. 정작 아버지는 야구에 흥미가 떨어졌다고 한다. 응원팀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대부분의 경기를 관중 없이 치렀다. 방역단계가 낮아진 7월 말에야 첫 관중을 맞았다. 거리 두기로 몇석 풀리지 않은 표는 금방 동이 났다. 하나 남은 테이블석을 구해 잠실구장에 갔다. 두산 골수팬과 나는 한 테이블에서도 거리를 두고 앉았다. 경기 내내 마스크를 썼다. 물과 음료만 허용됐다. 게다가 SK 경기도 아니었다. 그래도 좋았다.
나의 팀은 올해 가을야구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노래로 ‘왕조 시절’을 떠올린다. 내년에는 코로나19 상황도, 팀 분위기도 변화가 있기를. 나의 작은 영웅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