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했는데 웬 명예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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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헌법재판소에서 흔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라 칭하는 형법 제307조 1항이 위헌인지에 대한 공개 변론이 열렸다. 우리 형법은 진실을 말한 경우에도 타인의 사회적 평판을 훼손하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고 본다. 다만 이것이 공익만을 위한 것이라면 처벌하지 않는데 위 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오픈넷과 사단법인 두루 관계자들이 10월 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위헌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단법인 오픈넷과 사단법인 두루 관계자들이 10월 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위헌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용어부터 정리하자. 형법 제307조 1항에서 말하는 ‘사실’은 ‘진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판단, 즉 ‘의견’과 배치되는 개념으로 증명이 가능한 표현을 의미한다. 즉 사실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진실한 사실’과 ‘허위 사실’이 존재하기에 명예훼손죄는 허위이든 진실이든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만 성립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라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실무에서 형법 제307조 1항으로 처벌되는 경우는 말하는 내용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진실한 사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를 편의상 ‘진실적시 명예훼손죄’라고 하겠다.

진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론자들은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면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도 처벌하지 않을 것을 권고했다는 점을 주된 근거로 든다. 실제로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국가가 많지 않고, 유엔 인권위 권고 역시 ‘진실적시’뿐 아니라 명예훼손죄 자체를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명예훼손에 대한 대응은 처벌이 아닌 공론장에서의 토론으로 할 것이고, 개인의 명예훼손은 형법상 처벌 대상이 아니라 민사상 손해배상의 대상이라 보는 것이다.

다만 이런 논의가 한국에서 적용될 때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언론 등에 의해 명예가 훼손된 개인이 항변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즉 공론장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나마 형법이 개인의 명예를 보호해주는 면이 있다. 특히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적 특수상황, 의혹 제기를 업으로 하는 이들의 증가 등을 고려하면 ‘진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에 따른 부작용은 더 늘어날 수 있다.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다. 누군가 인터넷에서 명예훼손 글을 올리면, 현재는 위법이므로 그 글을 쓴 사람을 찾을 수 있지만, 위법이 아니라면 글쓴이를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민사적 해결은 어려워진다. 간통죄 폐지 이후 간통을 입증하기 어려워진 것과 비슷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을 완화해야 할 것인데, 이 경우 개인의 신상을 수사기관이 아닌 원고에게 주는 데서 생기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모든 근대국가는 진실은 처벌이 아닌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드러날 것이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형성됐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는 무엇보다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면서도 그 안에 살아가는 개인이 안전하고 행복하려면 개인의 반론권이 보장되는 공론장,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은 실효성 있는 민사재판 제도의 도입, 무엇보다 어떤 사실 하나만으로 개인을 매장하지 않는 관용의 태도가 필요하다. 법의 폐지 여부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길, 그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가 저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지 반성과 고찰이 있길 바란다.

<박기태 법무법인 한중 소속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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