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GONE)-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사회의 ‘낙태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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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문제를 다루고 있는 수신지 작가의 <곤(GONE)>은 지난해 5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만화 속 대한민국은 ‘낙태죄’가 합헌 결정이 내려진 뒤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곤>이 시작한 시점에서 현실 세계의 대한민국은 ‘낙태죄’가 위헌 결정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한 여성과 낙태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도록 한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곤(GONE)」의 한 장면

「곤(GONE)」의 한 장면

당시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고 보았다.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판단이었다. 그에 따라 정부에게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개정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그때 수신지 작가는 이러한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인구감소가 계속되자, 정부는 사문화되었던 ‘낙태죄’를 적극적으로 적용해 여성을 처벌하기로 한다. ‘낙태죄’를 저지른 여성을 색출하기 위해 IAT라는 검사가 개발된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검사에 응해야 하며, 낙태 경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무조건 처벌이다. ‘낙태죄’가 생긴 1953년 이후 한 번이라도 인공임신중절을 한 여성은 누구나 감옥에 가야 한다. 이러한 정책이 시행되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여성들이 사라진다(gone).

도시에서 떨어진 농촌지역의 노년 여성과 인터뷰를 하다 보면 ‘낙태’의 경험을 듣는 일이 어렵지 않다. 정부가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을 추진하던 시절에는 소위 ‘낙태버스’라는 것이 시골 마을을 순회했다. 도시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당시 한국 가임여성의 35%가 낙태를 한 번 이상 경험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작가는 IAT 양성반응을 보인 여성의 과반수가 50대 이상이라는 설정으로 보여준다)

작가의 상상력은 예언이 되었다. 정부가 10월 7일 ‘임신 14주’까지의 낙태만 허용하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기 때문이다. 임신 14주는 자신이 임신했는지 모를 수도 있는 기간이다. 임신 15∼24주에는 강간에 의한 임신, 임산부의 건강 위험 등 현행 모자보건법이 규정한 조건과 함께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도 낙태가 가능하기는 했다. 문제는 허용가능한 조건을 늘리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국가가 여성을 무엇으로 보느냐가 문제다. 국가는 여성들이 놓인 삶의 조건을 살피고, 전인적 결정을 내릴 수 있게 지원하려는 입장에 선 것이 아니라 출생률만을 염두에 두고 여성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강력하게 낙태를 금지하는 국가일수록 여성들은 더 많이 낙태로 내몰린다. ‘낙태죄’의 존재는 태아의 생명을 소중히 하는 사회가 아니라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사회라는 방증일 뿐이다. <곤>에서 또 하나 통렬한 지점은 노년 여성들이 잡혀들어가기 시작하자 보육 대란이 일어난다는 설정이다. 사회화되어야 할 돌봄 영역이 노년 여성들의 무급 노동으로 채워져 있음을 꼬집는 것이다. 아이를 낳아도 제대로 키우는 데에는 애쓰지 않는 나라다. 출생률 증가? 바랄 걸 바라야 한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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