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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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쿠르상 수상한 로맹 가리의 또 다른 정체성

한 작가에게 평생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공쿠르상을 두 번 수상한 전무후무한 작가로 프랑스문학사에 기록된 로맹 가리. 그렇지만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1956년 공쿠르상은 <하늘의 뿌리>의 작가 로맹 가리에게 주어졌지만, 1975년에는 <자기 앞의 생>의 작가 에밀 아자르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에밀 아자르가 실상은 로맹 가리였다는 사실이 공개되는 건 1980년에 그가 권총 자살을 한 이후다. 유서처럼 남긴 글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에서 에밀 아자르에 얽힌 비밀을 모두 털어놓는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들의 저작권자임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지음·용경식 옮김·문학동네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지음·용경식 옮김·문학동네

그렇게 하여 에밀 아자르라는 가면이 제거된 것인가? 일견 그렇지만 작가로서 로맹 가리의 ‘일인다역’(그는 여러 개의 필명을 갖고 있었다)은 한편으로 작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그는 로맹 가리의 작품과 에밀 아자르의 작품을 구분해서 썼다. 달리 말하면 <자기 앞의 생>은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는 발표될 수 없는, 쓰일 수 없는 소설이었다. 단순한 변장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정체성이었다고 할까.

로맹 가리에게 소설이란 항상 새로운 변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강력한 수단이었고, 그는 아자르라는 이름과 함께 작가로서 새롭게 탄생하는 경험을 한다. 전성기가 지난 로맹 가리가 쇠락해가는 작가였다면, 젊은 에밀 아자르는 신생의 작가였다. 이러한 완벽한 분리 덕분에 로맹 가리의 작품을 혹평한 비평가가 아자르의 작품은 치켜세우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로맹 가리 자신은 그러한 상황을 은근히 즐기기도 했다. 때문에 <자기 앞의 생>의 작가가 누구인가를 물을 때 여전히 우리는 로맹 가리에 앞서 에밀 아자르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 저자가 밝혀진 뒤에도 아자르는 가면 이상의 무게감을 갖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로맹 가리의 어떤 작품들보다 먼저 <자기 앞의 생>을 읽었기에 내게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의 작품이 대부분 한국어로 번역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독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작품은 <자기 앞의 생>이다. 로맹 가리라는 이름을 굳이 참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자르와 <자기 앞의 생>은 독자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럼에도 <자기 앞의 생>에 대해 로맹 가리가 어떤 ‘지분’을 갖는다면, 그것은 주인공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모델과 관련해서다.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에서 로맹 가리는 그 두 인물이 아들 디에고와 그를 돌봐준 스페인 가정부를 모델로 했다고 밝힌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성장해가는 모모와 창녀들의 아이를 맡아서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 사이의 혈육을 넘어선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린 <자기 앞의 생>은 로맹 가리 시점에서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 작품으로 탈바꿈한다. 영화배우 진 세버그와의 사이에서 얻은 유일한 혈육인 디에고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로서의 죄책감을 담은 소설로 읽히기 때문인데, 모모를 맡겼다가 11년 만에 찾아온 아버지 유세프 카디르에게서 로맹 가리의 모습이 중첩돼 읽히는 건 불가피하다. 그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아내를 살해하고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가 아들 모모를 찾아왔지만,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심장병으로 급사한다. 로맹 가리가 <자기 앞의 생>을 아들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난 건 5년 뒤였다.

<이현우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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