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까지 치달은 학교 폭력에 대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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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393호에 실린 내 칼럼(“학교 폭력으로 시작한 웹툰 두 편의 차이”)에 이어지는 보론이다. 지난 칼럼은 학교 폭력을 다루는 정도(正道)가 있는 것처럼 읽힐 여지가 있었다. 직접적 폭력 행위를 표현하지 않으며 피해자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는 <연의 편지> 쪽을 그렇지 않은 <외모지상주의>보다 상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들은 각기 다른 길을 통해 답을 모색한다. 학교 폭력이란 무거운 주제를 안고서 답에 이르지 못할 길을 걷는 학원물도 더러 있지만, 이은재의 연작 <TEN>과 <ONE>의 길은 분명 답을 향해 있다.

이은재 작가의 <ONE> / 다음웹툰

이은재 작가의 / 다음웹툰

<외모지상주의>가 학교 폭력을 볼거리로 만들고, <연의 편지>가 그것을 주인공의 성장을 향한 아픈 계기로 배치했다면, 이은재의 연작은 학교 폭력을 서사의 중핵으로 하여 정면 승부한다. 폭력을 적나라하게 그림으로써 학교 폭력을 둘러싼 행위자들과 구조의 문제를 동시에 가시화한다.

김현은 <TEN>의 학교 폭력 피해자다. 매일같이 김현을 때리고 그 횟수만큼 돈을 던져주는 현유학은 국회의원 아들이라는 배경을 업고 일진 행세를 한다. 급기야 김현의 어머니가 임종하던 날까지 현유학은 그를 괴롭힌다. 장례 후에도 괴롭힘은 여전하다. 김현도 이제는 저항해보려 하지만 그 작은 저항이 현유학 패거리 중 한명을 크게 다치게 하고 만다.

매우 현실적으로 학교 폭력을 묘사하고 고발하는 것처럼 보이던 <TEN>은 이 시점부터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야기로 기어를 전환한다. 단 한 번의 저항 행위가 낳은 사고로, 김현은 소년원 대신 ‘무명고’로 전학을 가게 된다. “폭력이 모든 걸 정화시킨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하지만 현실의 학교를 빗댄 공간임에 분명한 무명고의 교훈이다. 이곳에서는 학교 폭력 가해자들의 갱생을 위해 무제한에 가까운 폭력이 허용된다. 그리고 폭력으로 정점에 오를 때에야 이 학교를 ‘졸업’할 수 있다.

<TEN>의 한 장면 / 다음웹툰

의 한 장면 / 다음웹툰

김현은 살아남기 위해 룸메이트 김성빈에게 복싱을 배우고, ‘힘’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지닌 강한 친구들과 함께 졸업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학교의 갱생 수단으로서의 폭력, 폭력에 탐닉하고 힘의 논리에 물든 ‘일진’ 유(類)의 무명고 학생들의 출구 없는 폭력, 그리고 김현 무리의 반(反)폭력으로서의 폭력이 그 여정 속에서 논쟁되고 저울질된다. 그 자체로 폭력인 학교, 힘에 대한 헛된 환상, 더 나아가 폭력을 관음하는 독자들의 시선까지도 <TEN>은 가상의 폭력을 경유해 고발한다.

이어진 <ONE>은 우등생 주인공 김의겸이 화풀이처럼 빠져드는 대항 폭력까지 논쟁의 장에 올려놓는다. 동시에 김의겸의 화의 원인인 가정 폭력을 학교 폭력과 중첩해 그려냄으로써 청소년들의 삶에 도사린 이중·삼중의 폭력을 가시화한다. <TEN>에서 폭력의 악무한을 돌파한 주인공들이 카메오처럼 등장해 김의겸과는 다른 선택이 가능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요컨대 <ONE>은 폭력에 대한 작가의 궁리가 <TEN>과 다른 방식, 다른 강조점을 통해 구현된 작품이다.

<ONE>과 <TEN>의 학교 폭력 재현과 표현, 서사화 역시 단 하나의 정답은 아니다. 더 긴 지면에서 섬세하게 따져봐야 할 사안도 적으나마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작가의 진지한 접근, 자신이 그리고 있는 주제의 무거움에 대한 자각 등은 학교 폭력을 다룬 작품들 사이에서 도드라지는 예다. 그가 극한까지 밀고나간 폭력에 대한 사유는 가히 학교 폭력에 대한 만화적 사고실험이라 할 만하다.

<조익상 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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